한국 테니스 남자 대표팀 권순우가 5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실내 테니스경기장에서 열린 2023 데이비스컵 최종본선 진출전 3단식 다비드 고팽과 경기에서 득점한 뒤 포효하고 있다. 연합뉴스
꺾이지 않는 마음과 세 번의 이변. 그렇게 새로운 역사가 탄생했다.
한국 테니스 남자 대표팀이 5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실내 테니스경기장에서 열린 2023 데이비스컵 최종본선 진출전(4단1복식) 둘째 날 복식과 3, 4단식을 잇달아 잡아내며 벨기에를 꺾었다. 전날 기록한 0-2에서 3-2로 리버스 스윕에 성공한 한국은 본선 무대인 16강에 진출했다. 1981년·1982년·2007년·2022년 이후 다섯번째 16강으로, 사상 첫 2년 연속 진출이다.
벼랑 끝이었다. 이날 코트에 선 대표팀은 한 발자국도 물러설 수 없었다. 전날 1, 2단식에서 권순우(61위·당진시청)와 홍성찬(237위·세종시청)이 각각 벨기에 지주 베리스(115위), 다비드 고팽(41위)에게 패한 상황. 남은 경기 중 하나만 놓쳐도 탈락이었다.
희망은 있었다. 하지만 희미했다. 벨기에는 전력에서 한국보다 한 수 위다. 한때 세계 7위(2017년)까지 올랐던 고팽이 있고, 복식 짝 요란 블리겐(복식 53위)과 잔더 질(복식 55위)은 50위대였다. 반면 한국 복식 짝 송민규(KDB산업은행·복식 147위)와 남지성(세종시청·복식 152위)은 150위 안팎이다.
총체적 난국. 그러나 선수들은 드라마를 쓰기 시작했다. 먼저 복식이었다. 이날 송민규-남지성 짝은 접전 끝에 블리겐-질 짝을 2-0(7-6<7-3> 7-6<7-5>)으로 완파했다. 남지성은 경기 뒤 “1주일 정도 방에 매일 모여서 영상 100개가량을 확인하고 분석했다”며 “(덕분에) 훨씬 더 편하고 위기상황에서 긴장이 덜된 것 같다”고 했다.
한국 테니스 남자 대표팀 복식 송민규(오른쪽)-남지성 짝이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실내테니스 경기장에서 열린 2023 데이비스컵 최종본선 진출전 복식 벨기에 요란 블리겐-잔더 질 짝과 경기 중 하이파이브하고 있다. 연합뉴스
에이스도 제 모습을 찾았다. 3단식에서 고팽을 만난 권순우는 2-1(3-6 6-1 6-3) 역전승을 일궜다. 권순우는 “많은 팬분이 응원 와주신 덕분에 이긴 것 같다. 팬분들께 감사드린다”며 “어제 경기는 비록 졌지만 질 거라고 생각은 안 했다. (복식) 형들을 믿었기 때문에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다”고 했다.
마지막 주자로 나선 홍성찬은 드라마를 완성했다. “대한민국”을 연호하는 팬들 속에서 홍성찬은 전날 권순우를 꺾었던 베리스와 2세트 타이브레이크까지 가는 접전을 벌인 끝에 2-0(6-3 7-6<7-4>)으로 승리했다. 16강 진출을 확정한 순간 홍성찬은 코트에 그대로 쓰러졌고, 선수들은 코트로 달려 나와 서로를 얼싸안았다. 세 경기 모두 승자가 순위가 더 낮은 이른바 ‘업셋’이었다.
두 대회 연속 16강에 오른 한국은 오는 9월 데이비스컵 파이널스에서 본선 진출팀들과 자웅을 겨룬다. 한국은 지난해 9월 데이비스컵 파이널스에 출전해 이 대회 우승을 차지한 캐나다를 포함해 세르비아와 스페인 등 강팀과 맞붙었다. 당시 한국은 3패를 기록했지만, 기대 이상 선전을 펼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날 박승규 대표팀 감독은 경기 뒤 기자회견에서 “진짜 끝난 건지 정신이 없어서 어떻게 말해야 될지 모르겠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줘서 고맙고, 선수들이자 후배들인데 너무나 자랑스럽다. 너무나 좋아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대미를 장식한 뒤 울컥하는 모습을 보였던 홍성찬은 “데이비스컵 하면서 늘 지고 작년에도 나만 졌는데 이제 보여줬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