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관중이 5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2022∼2023 V리그 여자부 흥국생명과 지에스칼텍스의 4라운드 첫 경기 때 선수들을 지지하는 문구가 적힌 클래퍼를 들고 있다. 연합뉴스
단장·감독·수석코치가 모두 떠나며 난파선이 된 흥국생명이 새 선장을 선임했다. 하지만 구단의 오락가락 해명 속에 김연경 등 고참 선수들의 폭로가 나온 데다, ‘팬심’마저 싸늘해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흥국생명 배구단은 6일 보도자료를 내 “현 선명여고 감독 김기중(48)을 차기 사령탑으로 선임했다”라며 “현장에서의 풍부한 경험과 지도력을 겸비한 김기중 감독이 적임자라고 판단하여 선임하게 되었다”고 전했다. 구단은 또 “팬과 배구 관계자들께 심려를 끼쳐드려서 죄송하게 생각하며, 김 감독이 빨리 선수단을 추슬러 최상의 경기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을 다 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김 신임 감독은 2018년 흥국생명 수석코치를 맡아 2018∼2019시즌 통합우승, 2020∼2021시즌 챔피언결정전 진출 등에 공헌했다. 박미희 전 흥국생명 감독 밑에서 일하며 팀 내 사정을 잘 알고 있다는 평가다. 김 감독은 “지난 4년간 흥국생명에서 선수들과 동고동락했다. 다시 흥국생명에 돌아와 새로운 도전에 나서게 되었다”라며 “팬들의 열정적인 응원에 보답할 수 있는 좋은 경기를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김기중 흥국생명 신임 감독이 수석코치였던 2019년 3월21일 2018∼2019 V리그 여자부 챔피언결정 1차전 한국도로공사와 경기에서 선수들에게 지시하고 있다. 한국배구연맹 제공
흥국생명은 지난 2일 갑작스럽게 김여일 단장과 권순찬 감독을 경질한 뒤 폭풍우를 맞았다. 더욱이 5일 안방에서 열린 지에스(GS)칼텍스와 경기가 끝난 뒤 감독대행을 맡았던 이영수 전 수석코치마저 자진해서 사임하며 ‘대행의 대행’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일단 이런 파국은 신용준 신임 단장과 김기중 감독이 선임되며 겉보기엔 상황이 일부분 수습되는 모양새다.
문제는 경질 논란으로 생긴 상처가 아물기는커녕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5일 김연경은 지에스칼텍스와 경기가 끝난 뒤 “다음 감독님이 오신다고 해도 신뢰할 수 없다. 회사에서는 회사 말 잘 듣는 감독님을 선호하는 거랑 다름없지 않으냐. 누구를 위해서 선임하고 누구를 위해서 경질이 됐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실제 흥국생명 선수들 사이에서는 김기중 감독에 대한 비토론이 돌고 있다고 알려졌다.
흥국생명 김해란(왼쪽)과 김연경이 5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2022∼2023 V리그 여자부 지에스칼텍스와 경기가 뒤 기자들과 만나 이야기하고 있다. 이준희 기자
더욱이 경질 문제가 이른바 ‘윗선’의 선수 기용 개입 논란으로 확대되는 상황에서는 오히려 팀에 4년 동안 몸담았던 김기중 감독 선임 카드가 악수라는 평가도 많다. 김연경도 말했듯 새로운 감독이 위에서 원하는 대로 팀을 운영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계속 제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앞서 팀 내 최고참인 김해란은 김여일 전 단장이 실제로 선수 기용에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김연경 역시 이에 동조하며 “(윗선에서) 원하는 대로 하다가 경기를 진 적도 있다”고 폭로했다.
흥국생명은 권 전 감독 경질 이유로 팬 여론을 들었지만, 오히려 팬들은 트럭시위를 벌이며 본격적인 항의에 나섰다. 여자배구팬들이 만든 ‘여자배구행복기원단’은 6일 오전부터 서울 장충동 태광산업 본사를 시작으로 광화문 흥국생명 본사와 상암동 등을 돌며 트럭시위를 시작했다. 트럭 전광판에는 “흥국생명 기이한 경질? 모기업 태광산업 입김!”, “선수개입 기용은 명백한 월권, 갑질하는 흥국생명 구단주 아웃(OUT)” 등의 문구가 담겼다.
이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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