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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편 독수리처럼…패럴림픽 향해 세 바퀴 굴려요

등록 2022-12-22 07:00수정 2022-12-22 11:40

[‘찐’한 인터뷰] 휠체어육상 국가대표 윤경찬
장애인 스포츠 중 가장 힘든 종목
특수체육교사로 일하며 밤에 훈련
“제자들에게 내 경험 직접 보여줘”
올 첫 국가대표로 파리대회 활약
“2024년 파리패럴림픽 출전 목표”
휠체어 육상대표 윤경찬이 지난 11월 경기도 안산 와스타디움 바깥에서 박정호 안산시장애인체육회 육상팀 감독과 함께 ‘나홀로’ 훈련하는 모습. 특수체육 교사인 그는 이날도 안산교육지원청에서 근무를 마친 뒤 훈련복으로 갈아입고 훈련에 임했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휠체어 육상대표 윤경찬이 지난 11월 경기도 안산 와스타디움 바깥에서 박정호 안산시장애인체육회 육상팀 감독과 함께 ‘나홀로’ 훈련하는 모습. 특수체육 교사인 그는 이날도 안산교육지원청에서 근무를 마친 뒤 훈련복으로 갈아입고 훈련에 임했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몸으로 하는 것은 다 좋아했다. 축구 선수이기도 했다. 육상 단거리 도 대표도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여름방학을 1주일 앞뒀던 그 여름, 꿈은 산산이 부서졌다. 친구들과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맨 앞에서 가다가 트럭과 부딪혔다. 처음에는 팔만 다쳤나 했다. 아니었다. 그의 척추뼈가 바스러졌다. 병원에 4개월 정도 입원했을 때만 해도 ‘언젠가 회복되겠지’ 싶었다. 하지만 재활 기간이 늘어나면서 점점 깨달았다. ‘아, 일어서기 위한 재활이 아니라 살아가기 위한 재활을 하는구나.’

윤경찬(30)은 그렇게 13살 때부터 휠체어를 탔다. 그날 함께 인라인을 탔던 친구들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줬다.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그들은 늘 윤경찬과 함께였다. 윤경찬은 지난달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친구들이 울산에서 한 전국장애인체전(10월)까지 와서 응원을 해줬다. 친구들 응원 소리에 정신이 더 번쩍 들었다”며 웃었다. 그는 해당 대회 3관왕에 오르며 최우수선수(MVP)로도 선정됐다.

휠체어육상은 장애인 스포츠 중 가장 힘든 종목 중 하나다. 휠체어에 몸을 맡겨 끊임없이 바퀴를 굴려야 한다. 윤경찬이 휠체어육상을 접한 것은 고교 2학년 때였다. 한국체대 특수교육학과에 입학한 뒤에도 계속 이어가다가 2013년 대학 졸업 후에는 운동 자체를 쉬었다. 그러다가 박정호 안산시장애인체육회 육상팀 감독의 권유로 다시 트랙 위로 복귀했다. 7년을 쉬었는데도 그의 성장 속도는 빨랐다. 운동 재시작 뒤 1년 만에 100m 기록을 1초 단축했다. “지는 것을 진짜 싫어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윤경찬은 다른 ‘선수’와는 다르다. 그는 임용고시에 합격한 특수체육교사다. 운동을 다시 시작한 이유도 지금 가르치는 아이들 영향이 컸다. 윤경찬은 “비장애인 선생님이 갖지 못한 경험들이 나에게는 있다. 교단에서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줄까 고민하다가 내가 직접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휠체어 육상대표 윤경찬.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휠체어 육상대표 윤경찬.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그는 지금 안산교육지원청에서 근무하면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운동한다. 직업이 운동선수가 아니라 직업은 따로 있는 운동선수인 셈이다. 휠체어육상 국가대표 신분으로 이천 선수촌에 들어가 체계적인 훈련을 받을 수도 있지만 출퇴근 때문에 안된다. 대신 박정호 감독의 도움을 받으며 제한적인 환경에서 훈련 효과를 최대한 높이려고 한다.

윤경찬은 “남들과는 다른 상황이기 때문에 한정적인 시간에 내가 최대한 몰입해야만 최대한 효율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면서 “평일에는 퇴근하고 저녁에 2시간 집중훈련을 하고 주말에도 훈련한다. 7개월 정도 훈련하고 체전에 나갔는데 성적이 나서, 힘들었던 게 보상을 받은 것 같다. 그래도 아직은 부족하구나, 개인적으로 아직 멀었구나 싶다”고 했다. 체전 참가로 공가를 써서 교육청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다. 물론 그 자신도 체전이 끝나고 몇 날 며칠 밀린 업무를 처리하느라 밤낮으로 바빴다.

윤경찬은 다시 선택하라고 한다면 절대 휠체어육상을 안할 것 같다고 단호히 말한다. “훈련 과정이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약속한 것이 있다. “2028 엘에이(LA)패럴림픽까지 운동하고 관두겠다”고. 그 이후로는 오롯이 선생님 역할만 충실히 하려고 한다. 윤경찬은 “2028년까지 일과 운동의 균형을 맞춰가면서 나 자신한테 절대 부끄럽지 않기 위해 진짜 열심히 할 것”이라고 했다.

휠체어 육상대표 윤경찬.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휠체어 육상대표 윤경찬.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일단 내년 세계선수권에서 입상해서 2024 파리패럴림픽 출전권을 따내는 게 목표다. 그는 올해 첫 국가대표로 발탁돼 지난 6월 파리 장애인육상그랑프리에서 T53 100m 3위, 400m 2위 성적을 냈다. 장애인체육대회 성적이 15초17이었는데 기록을 14초70대로 단축해야만 패럴림픽 시상대에 오를 수 있다. 박정호 감독은 “경찬이는 승부욕이 강하고 자기 자신에 대한 자존감이 굉장히 높아서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면서 “파리패럴림픽 출전권이 걸린 대회까지 200여일 남았는데 너무 간절하게 운동해서 결정적인 순간에 번아웃이 올까 봐 걱정되기도 한다. 완급조절을 해줘야 하는 게 내 몫인 것 같다”고 했다.

인터뷰가 진행됐던 11월 중순, 윤경찬은 바퀴 3개의 휠체어에 의지해 혼자서 오르막길을 계속 오르내리면서 거친 숨을 내내 몰아쉬었다. 그의 동반자는 오로지 그의 그림자밖에 없었다. 그림자와의 싸움은 그렇게 끊임없이 그가 멈출 때까지 이어졌다. 박 감독은 그런 윤경찬을 바라보면서 “꼭 날개 편 독수리가 하늘로 비상하는 것 같지 않으냐”고 했다. 어릴 적 축구 국가대표를 꿈꿨던 ‘윤 선생님’은 이제 휠체어 육상선수 국가대표로 날갯짓하고 있다. 직업 운동선수가 아닌 본업은 따로 있는 운동선수로 체육계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3개의 발로 힘차게 땅을 구르고 있다.

안산/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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