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시청 휠체어컬링 팀의 이재학이 9월30일 경북 의성 의성컬링센터에서 열린 2022 코리아휠체어컬링리그에서 신중하게 스톤을 던지고 있다. 대한장애인컬링협회 제공
지난 9월30일 오전 경상북도 의성군에 있는 의성컬링센터. 휠체어를 탄 여러 명의 선수가 시트(경기장) 위에서 멀리 있는 하우스(4개의 동심원으로 구성된 목표 지점)를 응시하며 작전을 짜고 있었다. 선수들 얼굴에는 사뭇 진지함을 넘어 비장함이 묻어났다. 경기장 밖에는 중간 순위표(승점제)가 붙어 있었다. 김정훈 대한장애인컬링협회 사무국장은 “선수들이 오다가다 순위표를 보면서 승점을 비교해 본다. 예전에는 모이면 사적인 대화를 많이 했는데 요즘에는 승리 방법을 의논하고 있더라”고 전했다.
선발전을 거쳐 4개 실업팀 포함, 8개 팀이 참가한 2022 코리아휠체어컬링 리그전(4인조)은 9월14일부터 시작됐다. 국내 겨울 장애인스포츠에 도입된 첫 리그전이다. 전 세계적으로 단일국가 리그로는 최초이기도 하다. 팀당 총 28경기를 치르고 4개 팀이 플레이오프(11월1일~3일)에 올라 초대 챔피언을 가린다. 대회 기간도 꽤 길고 대회 장소도 “다양한 빙질을 경험하게 하기 위해”(김정훈 사무국장) 강릉, 의성, 의정부, 이천 4곳을 옮겨가며 펼쳐진다.
강릉에 이어 의성 경기까지 끝났고 열흘간의 휴식을 거쳐 11일부터 의정부컬링센터에서 리그를 이어간다. 휴식 기간이라고는 하지만 쉬는 팀은 없다. 김 사무국장은 “팀별로 3일 정도만 쉬고 빙질 적응을 위해 의정부에 먼저 가 있다”고 귀띔했다.
2022 코리아휠체어컬링리그에 참가한 8개 팀의 모습. 대한장애인컬링협회 제공
현재 1위는 경기도장애인체육회(승점 36)다. 남봉광, 백혜진 부부가 포함된 강팀이다. 백혜진은 2022 베이징겨울패럴림픽에도 참가했었다. 후보 선수 없이 4명이 뛰고 있어서 후반기 체력 싸움이 관건이다. 2위는 강원도장애인체육회(승점 28), 3위는 서울시청(승점 27). 서울시청은 의성에서 창원시청(4위·승점 21)과 경기가 아주 뼈아프다. 이기고 있는 와중에 제한 시간(38분·Thinking time)을 초과해 덜컥 몰수패를 당했다.
서울시청 스킵 정준호(41)는 “빙판 위에서 휠이 헛바퀴를 돌아서 시간을 많이 까먹었다. 몰수패는 국내 휠체어컬링 역사상 처음이라고 하는데 그날 이후 밥도 잘 못 먹고 잠도 못 잤다”며 분해했다. 상대팀이었던 창원시청 써드 이재학(46)은 “우리가 경기 도중에 서울팀한테 시간을 좀 보라고 했는데도 안 보더라”며 웃었다. 정준호와 절친인 강원도장애인체육회 스킵 이현출(36)은 “컬링할 때는 두 눈으로 스톤만 보는 게 아니다”라며 정준호를 놀렸다. 몰수패의 충격 탓인지 서울시청은 리그 중간에 멘탈 코칭을 받기로 했다.
2022 코리아휠체어컬링리그 중간 순위(6일 현재). 대한장애인컬링협회 제공
보훈 베테랑스의 리드 김시경. 대한장애인컬링협회 제공
국가대표 태극 마크는 물론이고 상금까지 걸려 있어 가끔 하우스 안에서 큰 소리가 오가기도 한다. 보훈 베테랑스의 리드 김시경(50)은 “우리 팀은 나이가 72살에서 51살까지 갭이 크다. 자기주장들이 강한 편이라 승리 욕심에 목소리가 커지기도 한다”고 했다. “운동이라면 극혐”했는데 테이크아웃(상대 돌을 하우스 밖으로 쳐내는 것)에 반해 마흔한 살이던 2011년부터 휠체어컬링을 시작한 김시경은 “‘왜 이렇게 늦게 시작했을까’ 하는 마음도 든다. 운동하면서 대인관계도 좋아지고 서로 만나 웃을 일도 많아졌다”고 했다. 더불어 “닫힌 마음이 열린 마음이 된다. 아무리 생각이 복잡해도 경기장 안에서는 스톤이 깨지듯 닫혔던 마음이 깨져서 진짜 후련해진다”고 했다.
휠체어컬링은 비장애인 컬링과 달리 스위핑 동작이 없다. 스톤을 놓을 때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만 한다. 중간에 스톤의 방향을 바꾸거나 속도를 조절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버튼 드로우(스톤을 버튼 안에 안착시키는 것)가 그래서 어렵다. 스톤은 손 혹은 딜리버리 스틱을 이용해 던지는 데 손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휠체어를 탄 채로 허리를 굽혀야 해서 선수들 대부분은 스틱을 사용한다. 비장애인 컬링보다 휠체어컬링이 더 힘든 이유다. 그래도 김시경처럼 선수들은 컬링에, 스톤에 흠뻑 빠져있다.
2018년 9월 불의의 패러글라이딩 착지 사고로 척수 장애를 안게 된 패러글라이딩 국가대표 출신의 이재학은 “개인 종목만 하다가 팀 종목을 처음 해봤는데 서로 합을 맞춰가는 과정이 재미있다”고 했다. 그는 “사고 뒤 2년간 병원에만 있었는데 휠체어컬링은 세상과 다시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됐다. 선배들에게 많이 배우고 있고 놀러 온다는 마음으로 컬링장에 나온다”고 덧붙였다. 정준호는 “다른 장애인 종목과 달리 휠체어컬링은 몸 상태가 중요하지 않다. 몸의 제약에서 벗어난다”면서 “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역전할 수 있는 묘미가 있다”고 했다.
정확한 투구를 빌고 있는 휠체어컬링 선수. 대한장애인컬링협회 제공
이번 리그전에는 슛오프 제도를 도입해 긴장감을 더했다. 8엔드 후 동점일 경우 각 팀 지정 선수가 단일 스톤을 던져서 버튼에 가장 가깝게 위치시킨 팀이 승리한다. 김정훈 사무국장은 “지금껏 6차례 슛오프가 나왔는데, 인천 상록수가 창원시청을 슛오프로 이겼을 때는 진짜 우승한 것처럼 기뻐했다”고 밝혔다.
선수들은 리그전에 대해 한목소리로 “고맙다”라는 표현을 썼다. 많은 경기를 치르면서 경험치를 높일 수 있고 동기 부여도 되기 때문이다. 같은 팀과 4차례 붙기 때문에 다음 경기를 위한 전술, 전략 고민도 할 수도 있다. 이현출은 “단기전에 비해 승패 예상을 전혀 할 수가 없다. 8위 팀도 1위 팀을 이길 수 있고 변수도 많다”고 했다. 이재학은 “우리 같은 경우 1~3위 팀을 이기고도 8위 팀에 슛오프로 졌다. 이런 게 휠체어컬링의 묘미”라면서 “얼음판이랑 똑같다. 언제 누가 (경기에서) 미끄러질지 모른다. 끝날 때까지는 절대 끝난 게 아니다”라고 했다. 두 눈과 스틱, 그리고 휠이 만들어내는 얼음판 위 전쟁은 마지막 스톤이 하우스에 안착할 때까지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의성/김양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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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코리아휠체어컬링리그 중간 순위 1위를 달리고 있는 경기도장애인체육회 팀. 대한장애인컬링협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