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에 토종 아포짓 바람이 분다.
2022 순천·도드람컵 프로배구대회(코보컵)에서 아포짓 스파이커(오른쪽 공격수)의 맹활약이 이어지고 있다. 그간 외국인 선수에 밀려 조연에 그쳤던 선수들이 주연으로 뛰고 있는데, 각자 비주전·방출 설움 등을 털어내며 ‘인생 경기’를 펼치는 모양새다.
홍민기(29·삼성화재)는 24일 전남 순천 팔마체육관에서 열린 남자부 B조 2차전 오케이(OK)금융그룹과 경기에서 양 팀 최다 득점(22점)과 트리플크라운(블로킹 5개·서브 에이스 3개·후위 공격 6점)을 달성했다. 컵대회라서 공식 기록은 아니지만, 프로 데뷔 이후 첫 트리플크라운이다.
방출 아픔을 겪었던 홍민기도 아포짓의 설움을 대표하는 선수다. 2017∼2018시즌 현대캐피탈에서 프로 데뷔했지만, 그는 아포짓 대신 미들블로커(센터)로 뛰어야 했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홍민기는 이렇다 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2020∼2021시즌엔 팀에서 방출돼 부산시체육회에서 뛰었다.
고난 끝에 삼성화재로 프로 무대에 복귀한 그는 올 시즌을 앞두고 아포짓으로 돌아왔다. 15년 만에 팀에 돌아온 김상우 삼성화재 감독 결정이었다. 이번 대회에서 아포짓 ‘1옵션’ 정수용이 부상으로 빠지자 홍민기에게 기회가 찾아왔고, 홍민기는 천금 같은 이 시간을 놓치지 않았다. 김 감독은 “정규리그에서도 홍민기를 아포짓으로 기용할 것”이라고 했다.
다른 팀에서도 토종 아포짓의 활약이 이어지고 있다. 국가대표 아포짓 임동혁(23·대한항공)은 22일 오케이금융그룹과 경기에서 공격 성공률 91.67%를 기록하는 등 맹활약하고 있다. 대표팀 차출 뒤에도 전혀 지치지 않은 기색이다.
지난 시즌까지 아웃사이드 히터(왼쪽 공격수)로 뛰었던 서재덕(33·한국전력) 역시 이번 대회에서 아포짓으로 나와 23일 현대캐피탈과 경기에서 경기 최다 득점(23득점)을 올리며 팀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이강원(32·우리카드)도 23일 케이비(KB)손해보험과 경기에서 경기 최다 득점(24득점)을 내며 쏠쏠한 활약을 펼쳤다.
이처럼 토종 아포짓이 ‘반전 활약’을 펼치는 건 V리그와 코보컵의 차이 때문이다. 리그에선 수비 대신 공격에만 집중하는 아포짓을 대부분 외국인 선수가 맡는다. 하지만 코보컵은 국내 선수들끼리 치르기 때문에, 토종 아포짓이 깜짝 활약을 펼칠 기회가 생긴다. 이번 대회가 ‘재발견’의 연속인 이유다. 앞서 여자부 때도 아포짓으로 출전한 문지윤(22·GS칼텍스)이 대회 최우수선수(MVP)에 뽑히며 깜짝 스타로 떠올랐다.
다만 이들의 활약이 리그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여전히 리그엔 외국인 선수라는 큰 벽이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각 구단도 선수의 리시브 능력을 키워 아웃사이드 히터로 기용하는 등 출전시간 확보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