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후 인천 남동아시아드 럭비경기장에서 열린 2022 아시아 럭비 챔피언십 결승전에서 한국과 홍콩의 선수들이 공을 뺏으려고 뒤엉켜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인천/연합뉴스
체중 110~130㎏ 선수들이 몸을 사리지 않고 부닥친다. 직접 경험해 본 이는 알지만, 보통 사람은 스쳐도 ‘충격’을 받는다. 하지만 밟히고 찢기고 눌려도 선수들은 더 힘을 냈다. 관중석에서 나온 ‘대한민국~’ 응원 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찰리 로우 감독이 이끄는 한국 남자럭비대표팀(15인제)이 9일 인천남동아시아드 럭비경기장에서 열린 아시아 럭비챔피언십 결승전에서 홍콩에 21-23으로 져 준우승을 차지했다. 전후반 80분 경기 종료시간을 넘긴 뒤에 상대 필드킥(3점)이 골대를 통과하면서 내준 역전패. 하지만 선수들이 기죽을 필요는 없다. 근래 보기 드문 최고의 명승부를 펼쳤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날 경험과 노련미에서 앞선 홍콩에 전반을 0-15로 뒤졌다. 전반 초반 상대 선수가 위험한 반칙으로 퇴장당했고, 중반께 또 한명의 선수가 10분간 퇴장당해 수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했지만 홍콩은 강했다. 국제 랭킹에서도 홍콩(22위)은 한국(30위)보다 앞선다.
하지만 한국팀은 이전과는 달랐다. 후반 5분 최승덕이 첫 트라이에 성공해 5점을 따낸 한국은 보너스킥까지 챙기면서 7-15로 따라붙었다. 기술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체력과 정신력으로 극복했다.
이후 후반 20분 상대 파울로 얻은 페널티킥을 오지명이 성공해 3점을 더했고, 3분 뒤 주장 김광민의 트라이로 15-15 동점을 만들었다. 기세를 탄 한국은 후반 29분 오지명의 페널티킥 추가 득점으로 첫 역전(18-15)에 성공했다. 대한럭비협회 관계자는 “근래 홍콩과의 경기에서 역전극을 만든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실제 가장 최근인 2019년 대회에서 한국은 영국계 선수들로 구성된 홍콩에 3-64로 졌다.
하지만 위기에 처할수록 홍콩의 노련미가 빛을 발했다. 특히 경기 운영 등 미세한 부분에서 한 수 위였다. 홍콩은 후반 31분 트라이를 성공하며 다시 앞서갔고(20-18), 한국에 페널티킥을 허용해 또 다시 뒤졌지만 경기 종료시간에 얻은 페널티킥을 꽂으며 최후에 웃었다.
로우 감독은 경기 뒤 언론 인터뷰에서 “한 10년은 더 늙은 것 같다. 실수가 있었던 게 아쉽다”며 “팀이 한 단계 올라설 수 있는 발판이 될 것 같다. 굉장히 좋은 경기”라고 평가했다.
한국 15인제 럭비대표팀의 주장 김광민이 9일 오후 인천 남동아시아드 럭비경기장에서 열린 2022 아시아 럭비 챔피언십 결승전에서 홍콩 선수를 따돌리고 트라이에 성공하고 있다. 인천/연합뉴스
실제 한국은 상무를 포함해 실업팀이 4개밖에 되지 않는 등 15인제 럭비팀을 구성할 선수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연습경기라도 하려면 최소 30명 이상이 있어야 한다. 로우 감독은 “60명 등록 선수에서 선수를 뽑아야 한다. 부상도 많은 종목이어서 선수 구성에 어려움이 있다”고 어려운 사정을 말한 바 있다.
그나마 럭비광인 최윤 회장이 협회장으로 취임한 이래 조금씩 전력이 다져지고 있다. 선수들의 신뢰를 받는 로우 감독은 앞서 7인제 럭비대표팀을 9월 남아공에서 열리는 월드컵 본선으로 이끌었다. 이날 트라이에 성공한 주장 김광민은 “이번 경기를 통해 경쟁력을 확인했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대한럭비협회 관계자는 “이날 유료관중이 1002명이 들어왔다. 상반기 코리안리그 때 700여명이 들어왔던 것에 비하면 더 많다. 관중석에서 ‘대한민국~’ 응원 함성도 사상 처음으로 나왔다”고 전했다.
최윤 회장도 경기 뒤 “기적적인 일이다. 여기까지 따라와 준 선수들에게 고맙다. 모레부터 (7인제 팀) 훈련을 시작한다. 7인제 선수들이 승리로 갚아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9일 럭비 아시안컵 결승 전적>
한국 21-23 홍콩
김창금 선임기자
kim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