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근대5종 대표 알렉산더 레순. 위키피디아
“우크라이나의 위기”(마리아 샤라포바), “평화의 증진”(다닐 메드베데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러시아 출신 선수들의 언어에 드러난 소극적 의사 표시다. 여자 테니스계 스타였던 샤라포바는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바라면서도 ‘전쟁’이라는 직접적 표현을 쓰지 못했다. 러시아 국기 등을 쓰지 못한 채 ‘중립’ 자격으로 투어 대회에 출전하는 남자 테니스 세계 1위 메드베데프도 에둘러 자신의 입장을 밝혔을 뿐이다. 물론 이것도 러시아의 엄혹한 형법이 개악되기 이전의 발언이다.
영국의 <비비시>는 러시아의 많은 선수가 전쟁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유를 국가주의 스포츠 훈육 환경과 강력한 법적 제재, 반역자로 몰렸을 경우 치러야 하는 기득권 상실 등으로 분석했다.
일부 스포츠 선수들은 어려서부터 지시하면 따르는 데 익숙하도록 훈련받았으며 질문 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 아주 사소한 것까지 국가가 알아서 처리해주면서 의존형으로 바뀌게 된다. 전쟁 반대 시위에 참여했을 때 과거 15일 구류였던 처벌이 최고 3년으로 늘어났고, 자칫 문제가 커지면 올림픽 성공으로 얻은 부와 명예를 잃을 수도 있다.
이 와중에도 자신의 의사 표현을 명확히 하는 선수도 있다. 비비시는 2016 리우올림픽 근대5종에서 러시아 대표로 금메달을 딴 알렉산더 레순(34)을 소개했다. 옛 소련 시절 벨라루스에서 태어난 그는 2009년부터 러시아 대표선수로 뛰면서 세계챔피언십 정상 제패 4회를 포함해 14번 입상한 간판선수로 활약했다. 하지만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 무작정 스포츠계 은퇴를 선언했다. 새로운 일을 시작했지만 스포츠와는 관계가 없다.
한때 러시아 선수로서 지녔던 자긍심을 버린 그는 비비시와 인터뷰에서 “러시아의 스포츠 선수는 선동의 도구가 되고 있다.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의 생명에 영향을 주는데, 그런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김창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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