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스포츠 스포츠일반

“‘엄마 선수’들, 결혼과 출산으로 일생의 꿈 포기하지 맙시다”

등록 2021-12-23 04:59수정 2021-12-23 09:26

[스포츠 미래, 여성이 뛴다]
결혼·출산의 벽을 허무는 선수들

배구 정대영·김해란 등 10명
결혼 뒤에도 선수 생활 이어가
“내 일 하며 자랑스런 엄마 되게”

농구서도 김단비 등 5명 ‘기혼 선수’
펜싱·양궁서도 경력단절 대신 “계속”
“몸 관리 잘 하면 가능하다 생각”
30대 중반에 출산 뒤 다시 코트로 돌아온 흥국생명 리베로 김해란. 한국배구연맹 제공
30대 중반에 출산 뒤 다시 코트로 돌아온 흥국생명 리베로 김해란. 한국배구연맹 제공

한때 여성 스포츠 선수에게 결혼은 은퇴를 의미했다. 합숙 훈련이나 대회, 리그 참가 등을 생각하면 가정과 일을 병행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결혼이 곧 경력 단절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결혼뿐만 아니라 출산 이후에도 현역 생활을 이어가는 이들이 조금씩 생겨난다. 환경이 변하면서 인식도 달라지고 있다.

대표적인 종목이 여자배구다. 여자배구 선수 중에는 기혼자가 꽤 있다. 정대영, 배유나, 임명옥(이상 한국도로공사), 한수지, 오지영(이상 GS칼텍스), 표승주(IBK기업은행), 황연주, 양효진, 김주하(이상 현대건설), 김해란(흥국생명) 등 10명의 선수가 결혼 이후에도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팀 내 주전 선수로 활약 중이며 정대영과 김해란의 경우는 출산 뒤 코트로 돌아온 ‘엄마 선수’이기도 하다.

이숙자 케이비에스엔(KBSN) 배구해설위원은 〈한겨레〉와 통화에서 “예전만 해도 20대 후반이면 노장 분위기였다. 하지만 프로리그(2005년)로 바뀐 뒤 선수생명이 길어졌다”면서 “연봉이 오르고 경제적인 측면도 생각하게 되면서 몸 관리에 더욱 신경 쓰게 됐고 기량, 실력만 된다면 결혼 후에도 얼마든지 운동을 이어갈 수 있다고 인식이 바뀌게 됐다”고 했다.

한국도로공사 센터 정대영(오른쪽)과 똑같이 배구 선수의 길을 걷고 있는 딸 김보민.
한국도로공사 센터 정대영(오른쪽)과 똑같이 배구 선수의 길을 걷고 있는 딸 김보민.

여자배구 선수 중 최초로 육아 휴직(2010년)을 쓴 뒤 현역으로 복귀한 정대영(40)은 “당시 ‘여기서 내가 관두면 어떤 선수도 앞으로 할 수 없을 거야. 내가 지금 해야지만 후배들도 할 수 있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시즌 막판까지 블로킹 선두를 다툴 정도로 현재까지 경쟁력을 갖춘 센터로 활약 중이다. 정대영은 2021~2022시즌에도 블로킹 부문에서 세트당 0.73개로 전체 3위(21일 현재)에 올라 있다.

여자배구 흥국생명 리베로 김해란과 아들 조하율.
여자배구 흥국생명 리베로 김해란과 아들 조하율.

9시즌 연속 디그 1위를 차지하는 등 역대 최고 리베로로 평가받는 김해란(37)은 30대 중반에 출산하고 코트에 복귀했다. 김해란은 “엄마가 되고 난 뒤 아이를 직접 돌보는 것도 좋지만 아직은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잘하는 일을 계속하고 싶었다. 복귀 결심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니었지만 막상 경기에 뛰어보니 ‘몸은 괜찮네!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이어 “아이와 떨어지고 운동을 하다 보면 ‘이래서 일을 그만두는구나’ 싶은 마음도 들지만 몸이 허락하는 한 최선을 다해보겠다”고 했다. 김해란의 메신저 앞 문구는 ‘부끄럽지 않은 엄마 되도록 노력할게’이다.

배구와 같은 구기 종목인 농구에서는 김단비(신한은행)를 비롯해 김정은, 김소니아(이상 우리은행), 염윤아, 최희진(이상 KB스타즈) 등 5명의 선수가 결혼 후에도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김단비의 경우는 2021~2022시즌 여자농구 올스타 팬 투표에서 당당히 1위에 오르면서 6년 연속 최다득표 주인공이 됐다. 김단비는 “결혼을 해서 1위는 힘들 것 같다”고 했으나 그의 결혼 여부에 상관없이 팬심은 여전했다. 결혼했다고 ‘선수 김단비’의 역량은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배구, 농구 등 단체 구기 종목의 경우 시즌 중에는 6개월여 동안 단체 합숙이 이뤄지지만 최근 들어 기혼 선수들에게는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 출퇴근이 허락되면서 가정생활을 병행할 수 있게 됐다. 이숙자 해설위원은 “선수들은 이제 결혼 후에도 당연히 선수 생활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력과 실력으로 얼마든지 선수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비단 구기 종목뿐만 아니라 펜싱이나 양궁 등의 종목에서도 기혼 선수들의 활약은 이어진다. 2012 런던올림픽 펜싱 사브르 개인전 금메달리스트 김지연은 2017년 결혼 후 남편의 응원을 받으며 도쿄올림픽에 출전해 단체전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올림픽 뒤 출산 등의 계획을 위해 은퇴를 결심했던 그는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까지 은퇴를 미뤄둔 상태다. 펜싱의 경우 ‘엄마 검객’이었던 남현희의 사례도 있는 터라 김지연의 향후 결정이 어찌 변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양궁에서는 런던올림픽 2관왕 기보배가 결혼 이후에도 후배들과 태극마크를 경쟁하고 있다.

여성 스포츠인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온 신정희 아시아하키연맹(AFH) 여성 부회장은 “80, 90년대에는 결혼 이후 선수 생활을 하는 것을 상상도 못 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결혼은 물론이고 출산 이후에도 운동을 이어가는 선수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면서 “결혼, 출산 이후에도 운동을 병행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고 있다는 점이 매우 고무적”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현장에는 여성 지도자가 많이 부족한 편인데 막상 뽑으려고 해도 찾기 힘들다고 한다. 환경이 더 나아지면 경력 단절 없는 여성 지도자들도 더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여자배구 한국도로공사 센터 정대영. 한국배구연맹 제공.
여자배구 한국도로공사 센터 정대영. 한국배구연맹 제공.

출산 이후 10년 넘게 코트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는 정대영이 운동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이렇다.

“결혼과 출산으로 나의 삶을 후회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결혼 때문에 은퇴 고민도 하지 말았으면 하고요. 결혼한다고 실력이 나빠지지는 않으니까요. 결혼으로, 출산으로 일생의 꿈을 포기하지는 말자고요.”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스포츠 많이 보는 기사

손흥민 전반전 활약…토트넘 유로파리그 16강 직행 1.

손흥민 전반전 활약…토트넘 유로파리그 16강 직행

4전5기 조건휘, 우상들 꺾고 정상…“하루에 조재호 강동궁 다 이기다니…” 2.

4전5기 조건휘, 우상들 꺾고 정상…“하루에 조재호 강동궁 다 이기다니…”

김하성, 탬파베이와 2년 419억원…팀 내 최고 연봉 3.

김하성, 탬파베이와 2년 419억원…팀 내 최고 연봉

기세오른 KCC…‘봄농구 경쟁, 지금부터’ 4.

기세오른 KCC…‘봄농구 경쟁, 지금부터’

커제, 엘지배 ‘에티켓 실수’로 패배…‘논란의 룰’로 파행 5.

커제, 엘지배 ‘에티켓 실수’로 패배…‘논란의 룰’로 파행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