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남원 전 아이비케이 기업은행 감독. KOVO 제공
감독과 갈등을 빚은 선수와 코치가 팀을 무단으로 이탈했다. 구단은 성적 부진과 팀 내 불화 책임을 물어 감독과 단장을 경질했다. 하지만 팀을 이탈한 코치는 감독대행으로 복귀해 팀을 지휘한다. 여자배구 아이비케이(IBK) 기업은행이 빠진 난맥상이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16일 페퍼저축은행 방문 경기였다. 이날 경기 뒤 세터 조송화(28)가 팀을 이탈해 훈련에 불참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조송화를 지도했던 김사니(40) 코치도 함께 팀을 이탈했다는 소식이 연이어 전해졌다. 서남원(54) 감독과의 갈등이 문제였다. 팀 내 불화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에 기업은행은 21일 공식 입장문을 내 “서남원 감독에 대해 팀 내 불화, 성적 부진 등 최근 사태의 책임을 묻고 팀 쇄신 차원에서 감독뿐 아니라 (윤재섭) 배구단 단장까지 동시 경질하기로 했다”며 “향후 감독 선임 등 팀 정비, 기강 확립, 선수들 영향 최소화 방안을 마련하여 조기 정상화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막상 팀을 이탈한 선수와 코치에 대한 징계가 명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더욱이 조송화에 대해서는 “상응한 조처를 할 것”이라고 했지만, 김사니 코치에 대해서는 “팀의 정상화를 위해 힘써주라고 당부했다”며 사의를 반려했다. 김 코치는 오히려 감독대행을 맡아 팀을 지휘한다. 감독과 단장은 경질되고, 반기를 든 코치는 영전하는 모양새다.
구단의 이런 대응에 논란은 더욱 커졌다. 서남원 감독도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이에 기업은행은 22일 조송화의 선수 활동을 정지하는 임의해지 조처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한국배구연맹(KOVO)은 이를 반려했다. 규정에 따라 임의해지는 선수만 신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은행이 사태 무마를 위해 주먹구구 대응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김사니 아이비케이 기업은행 감독대행. KOVO 제공
기업은행은 전임 김우재(55) 감독 시절부터 일부 고참 선수들이 파벌을 만들고 김 전 감독 재계약을 막으려 포스트시즌 때 태업을 하는 등 내부 문제가 심각했다는 후문이다. 서남원 감독이 새로 부임했지만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고, 결국 사상 초유의 사태로 이어졌다. 팬들은 기업은행 본사 앞에서 김사니 감독대행과 조송화 퇴출을 요구하는 트럭 시위도 시작했다.
김수지, 김희진, 표승주 등 도쿄올림픽 국가대표 3명을 보유한 인기 구단 기업은행은 올 시즌 강팀으로 분류됐다. 하지만 개막 뒤 리그 7연패를 당하는 등 꼴찌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 감독과 선수단 불화가 드러나고, 소문으로만 존재하던 선수단 파벌 문제까지 떠오르며 논란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여자배구는 ‘원팀’으로 도쿄올림픽 4강에 들었으나 적어도 기업은행만큼은 ‘원팀’이 아니었다. ‘모래알 구단’이었다.
한편 김사니 코치는 23일 흥국생명과 경기 전 기자들과 만나 “팀에 사의를 표한 건 서남원 감독의 폭언 때문이었다. 선수단 내 감독에 대한 항명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