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들이 연습하는 운동장에서 기자들에게 걸어 나오는 이 공보 담당관.
어릴적 꿈이던 축구 선수 대신 선수단 공식 ‘입’노릇
그는 서울 전동초등학교시절 축구선수였다. 다부진 몸매에 날카로운 눈매가 그시절 운동으로 한 몫 했음을 쉽게 알게 해준다. 그러나 공부에 전념하라는 부모님의 다그침에 그는 축구를 접는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 동부건설에 입사해 기획 파트에서 근무하다가 현대건설로 옮겨 지난 94년부터 홍보를 담당했다. 그리고 지난 2002년 2월부터 대한축구협회 홍보실에 근무하며 언론과 함께 생활했다. 이원재(44) 국가대표팀 홍보 담당관.
초등시절 축구선수 대기업 홍보 맡다가 축구협회로 그가 겪은 외국인 감독만도 4명. 코엘류, 본프레레,히딩크, 아드보카트 감독은 한국에 도착하면 우선 그로부터 한국 언론 환경에 대한 브리핑을 받는다. “감독들에게 한국의 신문과 방송, 인터넷 매체에 대해 일단 설명을 합니다. 어떤 감독은 한국 언론에 대해 관심을 갖고 어떤 감독은 무관심합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리야드에서 전지훈련 도중 버스타고 이동하며 옆자리 앉은 그에게 외국인 감독이 한국 언론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갖고 있는지 물었다. “우선 그들에게 한국의 스포츠지에 대해 설명합니다. 마감시간이 여러번이고, 기사도 많이 써야 되기 때문에 질문도 많을 거라고. 그리고 그들의 질문이 시시콜콜하더라도 짜증내지 말라고 부탁합니다.” “그럼 한글을 모르는 외국인 감독들은 한국 신문을 봅니까?” “코엘류 감독이 가장 한국 언론에 대해 관심이 깊었어요. 아침마다 관련 기사를 스크랩해 주면 일일이 보고, 특별히 관심이 가는 기사는 통역에게 부탁해 내용을 파악하곤 했죠. 코엘류 감독 한국 언론에 가장 관심 깊어
본프레레 감독 스크랩 주니 “필요없다”
아드보카트 스포츠지 1면 나오면 통역에 물어와 한국언론으로부터 가장 비판을 거세게 받은 본프레레 감독은 애초부터 한국 언론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어요. 물론 스크랩도 보지 않았어요. 스크랩을 주니 ‘필요없다’며 가지고 오지 말라고 하더군요.” “언론도 국가대표팀의 일원이라며 관심을 보이는 아드보카트 감독은 어떤가요?” “아드보카트 감독은 처음 스크랩을 주니까, ‘한글도 모르는데 일부러 만들어 주지 마세요’라며 정중히 사양하더군요. 헛수고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가끔 스포츠지에 자신의 사진이 1면에 나오면 통역에게 물어 봅답니다. 뭐라고 썼냐고. 대범한 스타일인 것 같아요.” “이동국 노트북 망가졌다며, 김남일이 정조국 핸드폰을…”
신변잡기부터 선수단 분위기까지 기자들 질문에 일일이 답변
김남일 선수가 리야드 연습장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동안 사인보드를 들고 있던 이 공보담당관과 선수단 주치의인 김현철 박사가 익살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그는 전지훈련를 따라 다니는 30여명의 한국 기자들에게 시달린다. 우선 아침에 연습장에 선수단과 모습을 나타내면 그는 기자들에게 둘러 쌓인다. 그는 선수단 일정과 결정 사항, 감독과 선수의 근황 등 자세한 이야기를 한다. 특히 스포츠지 기자들로부터는 조그만 내용까지 이야기해 주길 강요 받는다. 예를 들어, 이동국이 노트북을 가져 왔다가 망가져서 어떻게 수리했다, 선수들이 김치를 한끼에 몇kg 먹었다, 평소 개그맨이었던 김상식이 조용해졌다, 조원희가 보양을 위해 한약을 가져왔다, 김남일이 정조국이 산 핸드폰을 빼았었다…는 등의 신변 잡기부터 부상당한 김영광의 상태, 선수단 숙소 분위기 등 다양한 이야기가 그로부터 나온다. “이 나이에 이것 붙들고 서 있어야 하나?”
“차 기다려요. 그만 합시다.”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보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홍콩 연습장에서 기자들에게 선수단 상황을 설명하는 이원재 공보담당관.
그리고 선수단의 연습이 끝나갈 때부터는 스탠딩 기자회견을 준비한다. 대개 선수 2명이 기자들의 질문을 서서 받고, 가끔 아드보카트 감독도 기자회견을 한다. 그때 그의 역할은 사인보드를 펴고, 뒤에서 이를 붙들고 서 있다. 사인보드엔 대한축구협회 후원사들의 로고가 빼곡히 새겨져 있다. 그리고 가끔 이렇게 이야기 한다. “이 나이에 이것 붙들고 서 있어야 하나?” 반드시 기자회견은 이 사인보드를 배경으로 해야 한다. 기자들의 질문이 길어지면 이를 중단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차 기다려요. 그만 합시다.” 다른 선수들은 버스에 앉아 기다린다. 그들은 언젠가 기자회견할 그때 무슨 이야기 할지를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전지 훈련지에 도착하면 기자들은 그의 변경된 핸드폰 번호부터 확인한다. 그래서 그의 핸드폰은 불이 난다. 한국에서도 하루 핸드폰 배터리를 세번씩 바꾸었는데, 해외 나와서도 여전하다.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보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릴적 꿈이던 축구 선수 대신 선수단 공식 ‘입’노릇을 하는 그는 오늘도 운동장 한 켠에서 기자들의 움직임과 선수단의 동향을 함께 살피고 있다. 홍콩/ 글 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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