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리 슈틸리케 축구대표팀 감독이 26일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시리아와의 월드컵 예선전 대비 팀 훈련 중 생각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태권도 대회에 나온 아이들은 주변에서 울리는 폭발음에 벽이 흔들려도 움찔하지 않는다. 이것이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의 일상이다.”
영국의 <비비시>가 지난주 보도한 ‘전선에 선 시리아 축구’ 특별 기사의 첫 머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내전으로 일상의 삶은 망가졌다. 이날 태권도 체육관을 찾은 시리아올림픽위원회 모와파크 주마 위원장은 “이 체육관에만 170개의 박격포탄이 떨어졌다. 그러나 우리는 숨지 않는다”고 했다.
전쟁의 참화로 수십만명의 사상자를 낸 시리아 사람들한테 유일한 희망은 무엇일까. 이들의 정체성은 어떻게 유지될 수 있는가. <비비시>는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에서 4위(2승2무2패) 시리아 축구대표팀에서 하나의 실마리를 찾고 있다.
시리아 축구대표팀은 내전으로 인해 홈경기를 개최할 수가 없다. 경제 제재로 인한 어려움과 선수단 안전 등의 이유로 시리아는 자국이 아닌 말레이시아에서 홈경기를 펼치고 있다. 아시아축구연맹이 최종예선 10경기에 200만달러를 지원하고 있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코치의 월급은 100달러 정도이다. 7000km 이상 떨어진 이국에서 안방 경기를 치른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그러나 시리아 국민의 자존심은 축구를 통해 드러난다. 비비시는 “축구와 시리아 국민의 관계는 스포츠가 문화나 정치에 얼마나 강력한 것인가를 보여준다”고 했다. 실제 시리아 축구대표팀은 지난해 10월 베이징에서 열린 경기에서 중국을 꺾고 승리를 거뒀다. 6년간의 내전으로 2300만 인구 중 490만의 이재민이 발생한 비극의 나라가 14억 인구의 중국을, 그것도 축구 굴기를 위해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팀을 꺾었을 때의 기쁨은 매우 컸을 것이다.
지난 23일엔 역시 말레이시아 말라카에서 열린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6차전에서 강호 우즈베키스탄을 1-0으로 꺾었다. 5명의 시리아인 응원단 등 관중은 350명 정도였다. 하지만 악조건 속에서도 조 4위로 뛰어올랐다. 조 2위까지 주어지는 월드컵 본선 티켓에 욕심을 낼 만한 상황이다. 2위 한국(3승1무2패)나 3위 우즈베키스탄(3승3패)과는 승점 1~2점 차이가 난다.
28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한국과 시리아의 월드컵 예선 7차전은 두 나라 모두에게 중요하다. 원정 경기에 취약하고, 울리 슈틸리케 감독의 지도력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한국은 안방 경기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앞으로 남은 카타르 원정, 이란 안방, 우즈베키스탄 원정 등 남은 3경기가 까다롭기 때문이다.
시리아 국가의 통합을 상징하는 축구대표팀은 이미 내전으로 상처 입은 시리아 국민의 희망이다. 시리아 축구대표팀의 아이만 하킴 감독은 23일 우즈베키스탄전 승리 뒤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글썽였다. 그는 “이 승리를 시리아 국민한테 바친다”고 했다. 선수들은 정신적으로 무장돼 있다.
둥근 공은 어디로 흐를지 모른다. 내전으로 피폐해진 나라에 한 줄기 희망을 주려는 시리아 선수들은 주로 해외파로 개인기와 역습 능력을 갖췄다. 9회 연속 월드컵 진출을 이루려는 한국 선수단이 바짝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