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홍 FC서울 감독이 지난 11월23일 오후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 지에스(GS)챔피언스파크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구리/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거울 보면 늙었어요. 하하하~ 자꾸 서글퍼지죠. 젊어지려고 합니다.”
2002 한·일월드컵 때 거스 히딩크호의 스트라이커로 이름을 떨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지천명’이라는 쉰살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그때 그의 나이 만 34살. 폴란드와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선제골을 넣으며 한국팀의 2-0 승리를 이끌었고 4강 신화의 주역이 됐다. 가까운 듯하면서도 먼 과거의 일이 돼버린 지금, 그는 올해 FC서울 사령탑으로 한 시즌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황새’ 황선홍(48) 감독. 지난 3일 축구협회(FA)컵 우승은 놓쳐 시즌 2관왕에 실패했지만 2016 K리그 클래식 우승이라는 대어를 낚았다. 축구협회컵 결승을 준비 중이던 지난달 23일 그를 FC서울 훈련장인 경기도 구리 지에스(GS) 챔피언스파크에서 만났다.
1994년 미국월드컵 본선과 그해 히로시마아시안게임 때 황 감독은 한국 축구대표팀 간판 골잡이였고, 당시 두 대회를 모두 취재했던 터라 그때 얘기부터 꺼냈다. “저의 흑역사죠. 제가 골을 넣지 못했어요. 다 뒤집어써야죠. 그게 스트라이커가 져야 할 숙명이 아닌가 합니다.” 미국월드컵 본선 조별리그 때 특히 볼리비아와의 2차전에서 황 감독은 수차례 득점 기회를 허공에 날려버리며 팬들로부터 욕을 먹을 대로 먹었다. 히로시마아시안게임 때는 한국팀이 일본과의 8강전에서 두 골을 넣은 그의 활약으로 4강까지 승승장구했으나 우즈베키스탄과 만나 일방적 경기를 펼치고도 상대의 기습 슈팅 단 한방으로 결승골을 헌납하며 졌다. 한국은 금메달 숙원을 또다시 풀지 못했다. “요즘도 당시 화면 나오면 창피합니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너무 경직돼 있었죠. 축구 자체를 즐기지 못한 겁니다.”
과거 이회택, 차범근 등 한국 축구 스트라이커의 계보를 잇는 선수로 명성을 떨쳤던 황 감독은 슈틸리케호의 ‘원톱 부재’에 대해 묻자 자신도 책임을 느낀다고 고민스러워했다. “FC서울도 외국인 스트라이커(아드리아노)밖에 없어요. 대표팀도 마찬가지고. 세계 축구의 흐름이 스트라이커 없이 공격을 하기도 하고, 신체적으로 큰 공격수를 선호하지는 않지만 말입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올해 (토종 골잡이 중) 최고는 정조국(광주FC)이 아닌가”라고 반문한 뒤 “저는 김신욱(전북 현대)이 무섭던데, 다들 힘들어하니까. K리그에서는 상당히 버겁다”고 털어놨다.
황선홍 감독이 지난 6월29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성남FC와의 2016 K리그 클래식 안방경기에서 FC서울 데뷔전을 지휘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용수 감독은 ‘무공해(무조건 공격해) 축구’를 표방하며 리그 돌풍을 일으켰다. 최 감독의 뒤를 이어 지난 6월 FC서울을 맡게 된 황 감독이 추구하는 축구색깔은 무엇일까? “무공해 축구 같은 저를 상징하는 축구 이름을 아직은 만들지는 못했어요. 최 감독이 기술적 측면, 연계 플레이는 잘해왔는데 여기에 속도가 가미되면 팬들이 더 좋아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는 “체력적인 부분에서 시간이 걸리겠지만 공수 전환 속도가 빨라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전술적으로는 3-5-2 시스템을 선호했던 최 감독과 달리 포백을 선호한다. “전술적으로 혼란스런 6개월이었습니다. 포백이나 스리백이나 어떤 것이 좋다, 나쁘다 할 수 없다고 봐요. 스리백이 수비적이고, 포백이 공격적이라고 단정해 말할 수도 없어요. 저는 4-4-2, 4-1-4-1 전술을 써왔는데 공격 쪽에 무게를 두는 편입니다.”
황 감독의 선수 지도 스타일에 대해 “구단과의 관계도, 선수와의 관계도 서로 합리적이어야 한다”며 “선수들과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고 가야 할 방향에 대해 얘기한다. 선수들을 세심하게 관리하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게 만든다”고 했다. 그는 특히 ‘강제’보다 ‘설득’이 중요하다며 “사장, 단장하고도대화가 잘된다”고 했다.
FC서울의 좋은 점에 대해 물었다. “역시 팬층이 다양하다는 겁니다. 1000만 시민이 있어 어딜 가나 알아봐주시니 그런 면이 좋습니다. 지도자로서 그런 팬분들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목표가 생기는 것이죠. 경기에 지면 팬들에게 스트레스도 많이 줘서 죄송하기도 하고….”
FC서울이 전북 현대를 시즌 최종전에서 1-0으로 잡고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한 원동력은 무엇일까? “타이틀이 걸린 경기였잖아요. 우리 팀에 박주영, 고요한, 데얀 등 우승 경험이 있는 선수들이 있었는데 그런 경험을 후배들에게 나눠주며 자신감을 가지고 경기를 하도록 잘 유도한 것 같아요. 두 팀이 서로를 잘 알아서 뭔가 신선한 것이 필요했는데, 윤승원을 원톱 카드로 쓴 것은 그런 맥락입니다. 어느 정도 계산이 돼 있었던 거죠.”
황 감독은 2013년 포항 스틸러스 감독 때는 외국인 선수 한명 없이 이른바 ‘스틸타카’(FC바르셀로나의 패싱게임인 ‘티키타카’를 본뜬 말)로 팀을 정규리그 우승으로 이끈 바 있는데, 두번째 우승으로 지도력을 다시 인정받게 됐다. 그는 선수보다 “관리자이다 보니 감독으로서의 삶이 더 힘들다”고 했다. “축구 굉장히 어려워요.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닙니다. 선수 한명 기용하고 전술 바꾸는 것 놓고 며칠을 고민할 때가 많습니다. 이런 것들에 대해 팬들은 너무 쉽게 얘기하지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야 합니다. 지금도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황선홍 감독은 벌써부터 내년 시즌을 벼른다. “클럽축구 감독 시작하고서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꿈이 많았어요. 우승해서 클럽월드컵에 나가보는 것입니다. 내년엔 꼭 해야죠.”
구리/김경무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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