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현대 선수들이 26일(현지시각) 2016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세리머니에서 환호하고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5년 전 알사드(카타르)에 패하면서 4만 이상의 우리 팬들이 절망하는 모습을 봤다. 이후 한번도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잊은 적이 없다. 우리 ‘엠지비’(Mad Green Boys:전북 현대 서포터스) 팬들에게 트로피를 바치고 싶다.”
한때 ‘강희대제’로 불렸으나 이 별명이 자신에게는 과분하다며 ‘(전북 완주군) 봉동 이장’을 자처했던 최강희(57) 전북 현대 감독. 2005년 전북 지휘봉을 처음 잡고 이듬해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첫 우승을 차지한 그가 26일 10년 만에 다시 팀을 정상에 올려놓은 뒤 한 말이다. 최 감독은 “올 시즌 선수들과 와신상담했고, 올해가 정말 어려운 해였는데 선수들이 잘해줬다. 우리가 어려울 때 성원을 보내준 팬들”이라며 이렇게 감사를 표했다.
전북은 이날 아랍에미리트 알아인 하자 빈 자예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6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결승 2차전에서 전반 30분 터진 한교원의 선제골 등에 힘입어 알아인과 1-1로 비겨 합계 전적 3-2로 앞서며 우승상금 300만달러(35억3300만원)를 거머쥐었다. 2011년 홈에서 알사드에 져 준우승에 그친 한도 풀었다. K리그 팀으로는 2012년 울산 현대 이후 4년 만의 정상 등극이며 통산 5번째이다. 올해 K리그 클래식 챔피언 FC서울과 함께 대한민국 대표구단으로 평가받는 전북이 중국·일본·아랍 등 명문클럽들을 잇따라 제치고 아시아 클럽축구 정상에 우뚝 선 원동력은 무엇일까?
최강희 감독이 2016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우승트로피를 들고 좋아하고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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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공 10년’의 결정판 최 감독은 2002~2003 시즌 개편된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최초로 우승컵을 2회 들어올린 감독이 돼 명장의 반열에 올라섰다. 한준희 <한국방송>(KBS) 해설위원은 “국내는 물론 외국 클럽축구를 보더라도 한 감독이 이렇게 오래 10년씩이나 한 팀을 이끌며 꾸준히 팀을 향상시킨 사례는 찾기 힘들다”며 그의 업적을 높게 평가했다. 최 감독은 K리그에서 지도자 최초로 4차례(2009, 2011, 2014, 2015년) 정상에 올랐다. 축구협회(FA)컵에서는 2005년 한번 우승한 바 있다.
최 감독이 표방한 축구는 ‘닥치고 공격’. ‘골을 내주지 않으려고 수비 위주의 플레이를 하다 보면 경기 내용이 나빠진다’는 철학에서 그는 앞서 있을 때도 끊임없이 선수들에게 닥공을 주문했고, 이런 전략은 좋은 성적으로 이어졌다. 이재성(24)과 김보경(27), 그리고 국내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꼽히는 로페즈(26)와 레오나르도(30)는 중원의 핵이자 닥공의 중심축으로 올 시즌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이번에 오마르에게 대회 최우수선수(MVP)는 내줬지만, 레오나르도는 결승 1차전에서 2골을 폭발시키는 등 전북 우승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최 감독은 이동국 등 다른 구단에서 밀린 선수들을 영입해 다시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도록 하는 등 선수들에 대한 ‘굳은 신뢰’로 탁월한 지도능력도 보여줬다. 그의 이런 능력 발휘는 다른 구단과 달리 매년 좋은 선수 영입에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은 모기업 현대자동차의 적극적인 지원 때문에 가능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준희 해설위원은 “이철근 단장이 팀 발전을 위해 10년 플랜을 세운 것으로 아는데 그런 힘도 작용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동국과 김신욱이 우승트로피를 들고 팬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하고 있다. 알아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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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의 힘 알아인과의 결승 2차전에 나온 전북 선발 11명의 평균연령은 30.5살. 주전 원톱으로 출격한 이동국은 37살이었고, 30살 이상은 중앙수비 조성환(34)과 김형일(32), 왼쪽풀백 박원재(32)등 7명이나 됐다. 이 때문에 최 감독이 ‘노인정 11’을 가동한다고 농담조로 얘기했다고 전해진다. 이날 한교원의 선제골에 보이지 않게 기여한 이동국은 경기 뒤 “울컥했다. 참으려 했는데 나도 몰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며 “언젠가부터 월드컵에 다시 나가는 것보다 챔피언스리그 우승이 중요한 목표가 됐고, 팀 동료들과 1년 동안 준비해 성과를 이뤄냈다”고 좋아했다.
노장 수비수들은 이날 카이오-오마르 압둘라흐만-아스프리야 등으로 이어지는 알아인 빠른 공격을 육탄으로 막아내며 우승에 견인차가 됐다. 오른쪽 풀백인 최철순(29)은 수비형 미드필더로 이동해 오마르를 전담으로 따라붙어 꽁꽁 묶으며 경기 최우수선수에 선정되기도 했다. 골키퍼 권순태(32)는 이날 골이나 다름없는 알아인 슈팅을 여러차례 선방하며 사실상 최우수선수 노릇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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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알 마드리드와 한번 붙어봐!” 전북은 이번 우승으로 12월8일부터 18일까지 일본 요코하마 등지에서 열리는 2016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월드컵에 아시아 챔피언 자격으로 출전한다. 12월11일(오후 4시) 북중미 챔피언 클럽 아메리카(멕시코)와 격돌하는데, 이기면 유럽 챔피언 레알 마드리드(스페인)과 만나기 때문에 선수들 기대감도 크다. 최철순은 “형들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끝판왕이라는데 막으러 가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최강희 감독은 “레알 마드리드와 한번 붙어봐야 하지 않겠나”며 “홀가분한 마음으로 준비하면 의외의 성적도 거둘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경무 선임기자
kkm100@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