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스포츠 축구·해외리그

슈틸리케 감독님, 실수하셨네요

등록 2016-10-14 21:03수정 2016-10-14 21:11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김창금
스포츠팀 기자 kimck@hani.co.kr

월드컵 못 가면 어쩌지?

이번에는 순탄한 것 같았는데 덜커덩거립니다. 한동안 잘나가던 슈틸리케호가 안에서부터 삐걱거립니다. 혹여 ‘9회 연속 월드컵에 못 가면 어때!’라고는 말하지 마세요. 한국 축구는 월드컵에서 떨어지는 순간 산업이나 흥행 측면에서 암흑기에 접어듭니다. 월드컵이 남의 잔치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한겨레> 축구담당 기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울리 슈틸리케 축구대표팀 감독이 설화를 톡톡히 겪고 있습니다. 11일 테헤란에서 열린 이란 원정경기 패배 뒤 한 말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카타르의 세바스티안 소리아 같은 스트라이커가 없다.”

감독이 선수들의 졸전을 두고 세계적인 대선수도 아닌 카타르 공격수 소리아를 빗대 한 말은 충격입니다. 당장 손흥민이 “다른 선수 이름을 거론할 필요까지…”라며 볼멘소리를 했습니다. 국내 언론도 13일치에 슈틸리케 감독에게 십자포화를 날립니다. 한때 ‘갓틸리케’라며 신의 경지에 올랐던 슈틸리케 감독은 ‘탓틸리케’로 남 탓하는 지도자로 급락했습니다.

대표팀 내부에서 터져나온 지진파에 대한축구협회에 비상이 걸립니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란 현지에서 출발하기 전, 또 한국에 도착한 직후 잇따라 해명을 했습니다. “이란전 직전 원톱 공격수인 지동원과 소리아의 저돌성과 적극성을 얘기한 적이 있다. 이란전에서 그 저돌성과 적극성이 나오지 않은 것을 설명하다가 말이 와전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선수들도 “오해는 풀렸다”며 슈틸리케 감독을 신뢰하고 지원했습니다.

감독의 격앙된 표현은 그동안에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를 쓴 거스 히딩크 감독을 보죠. 월드컵을 코앞에 둔 2002년 1월 북중미 골드컵에 참가한 한국이 최약체 쿠바와의 경기에서 한 골도 넣지 못합니다. 그러자 히딩크가 한마디 합니다. “킬러 본능을 가진 선수가 필요하다. 이 나이에 내가 나서리”라며 버럭합니다. 애인까지 원정지에 데려간 히딩크 감독을 밉살스럽게 보던 선수들의 자존심이 팍 꺾였습니다.

허정무 감독도 2008년 6월 남아공올림픽 아시아 3차 예선 도중 “음주 징계 중인 이운재의 부재가 아쉽다”는 식의 표현으로 김용대, 정성룡, 김영광 등 젊은 골키퍼의 가슴에 못을 박았습니다. 나중엔 “그런 일 없다”며 진화에 나섭니다. 앨릭스 퍼거슨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 또한 2011년 10월 리버풀전 무승부 때 “긱스의 실수 때문에 비겼다”고 했고, 조제 모리뉴 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은 첼시 사령탑 시절인 2015년 12월 레스터시티전 패배 때 “내 노력이 배반당했다”며 선수들에게 불화살을 날린 바 있습니다.

언어는 양날의 칼입니다. 잘 쓰면 약이지만, 잘못 쓰면 독입니다. 감독이 언론 인터뷰를 통해 선수단을 장악할 때 언어는 유용합니다. 가령 히딩크 감독이 “진공청소기 김남일”이라고 했을 때 선수는 신이 납니다. 안정환을 두고 “소속팀 벤치에 앉아 있는 선수를 대표팀 주전으로 쓸 수 없다. 고급 수입 승용차를 타고, 소녀 팬들의 환호를 받는 스타 선수는 그 허영과 자만심 때문에 적합하지 않다”고 했을 때 선수는 정신이 번쩍 납니다. 죽어라 뛸 수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다른 팀 선수들과 비교해 자기 팀 선수를 비난하는 것”은 최악의 코멘트입니다. 축구해설가 등 외부의 전문가들이 그렇게 말할 수는 있어도 감독이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은 감독직을 내려놓겠다는 뜻과 다르지 않습니다.

슈틸리케 감독은 한국팀을 계속 지휘하기를 원합니다. 그의 발언은 말 그대로 감정을 억누르지 못한 실수입니다. 과거 세대와 달리 요즘의 선수들은 지도자의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도 잊은 듯합니다. 그렇다고 감독을 교체하자고 하는 것도 대안이 아닙니다. 모든 감정적인 반응은 위험하고, 선수단의 경기력이 하루아침에 달라지지도 않습니다. 지금은 다음달 15일 서울에서 열리는 우즈베키스탄과의 5차전에 모든 힘을 모아야 합니다. 언론도 비판하기보다는 격려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나머지는 모두 슈틸리케 감독의 몫입니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스포츠 많이 보는 기사

신진서, 중국리그 챔피언결정 2차전 기적의 역전승…쑤보얼항저우 우승 1.

신진서, 중국리그 챔피언결정 2차전 기적의 역전승…쑤보얼항저우 우승

역시 이 장면이었어…2024년 최고의 스포츠 사진은 2.

역시 이 장면이었어…2024년 최고의 스포츠 사진은

프로농구 올스타전 ‘부상 변수’에도…‘덩크’ ‘3점슛’ 대결 기대 3.

프로농구 올스타전 ‘부상 변수’에도…‘덩크’ ‘3점슛’ 대결 기대

유승민 “엘리트 체육 소외, 학교체육 되살려 선수·종목 늘리겠다” 4.

유승민 “엘리트 체육 소외, 학교체육 되살려 선수·종목 늘리겠다”

호날두·드록바 넘은 손흥민, 네번째 해트트릭…‘손톱’이 옳았다 5.

호날두·드록바 넘은 손흥민, 네번째 해트트릭…‘손톱’이 옳았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