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우 기자
현장에서
끝내 참지 못한 한 카메라기자가 소리쳤다. “그림이 안 되니 서로 이야기 좀 하세요.”
당황한 이회택 기술위원장이 맞은편을 보고 큰소리 쳤다. “어이 진국이(김진국 기획실장), 이야기 좀 해봐.”
21일 오전 11시 대한축구협회 이사회가 열린 축구회관 5층 대회의실. 어색한 침묵이 실내를 압도했다. 23명의 이사들은 침묵 속에서 이사회를 맞았다. 지난 10여년간 축구협회의 핵심에 있던 조중연 상근부회장은 전날 사의를 표명했고, 이제 그가 주재하는 마지막 이사회였다.
축구 선수와 감독 출신으로 협회 전무와 부회장을 역임하며 월드컵 4강의 영광을 연출했던 조 부회장. 그의 표정 역시 뭐라 말하기 힘든 착잡함이 그대로 드러났다. 때론 정몽준 협회 회장의 분신으로, 쏟아지는 비판적 여론의 방패막이로, 그리고 축구 전문가로 살아온 10년 세월.
최근 사상 초유의 축구협회에 대한 국정감사의 당사자로 국회의원들로부터 추궁을 한몸에 받은 조 부회장이었다. 협회 운영의 불투명성과 경기인과의 대화부족이 항상 지적됐다. 조 부회장은 최근 안면근육 이상을 일으켜 청심환을 복용하며 협회에 출근해야 했다.
“이제 그만 나가주시죠.” 기자들에게 자리를 비켜주길 바라는 조 부회장의 목소리는 사그라들고 있었다.
바로 직전, 같은 장소에서 딕 아드보카트 감독은 기자회견을 자청해 축구대표팀 운영 청사진을 시원시원하게 밝혔다. “11월 대표팀이 소집되면 선수들과 많은 토론을 나눌 것입니다. 그들과 많은 이야기를 통해 서로를 이해할 것입니다.”
축구판에서 그렇게 한 사람은 사라지고, 또 한 사람은 스타로 떠오르고 있었다. 그 둘의 차이는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대화 노력이 아닌가 생각됐다.
이길우 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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