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우 기자
현장에서
그들은 마치 굶주린 독수리 떼에 던져진 잘 숙성된 고깃덩이 같았다.
11일 오전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 야외 한쪽에는 7개의 탁자가 놓여 있었다. 딕 아드보카트 축구대표팀 감독의 ‘고집’으로 사상 처음 대표팀 전원의 집단 인터뷰가 시작될 장소였다. 약간의 다과와 음료수가 놓인 탁자에는 3명씩 태극전사가 앉고, 기자들이 오고 가며 질의응답하도록 예정됐다.
그러나 22명의 대표선수가 출현하자, 회견장은 순식간에 뒤엉켰다. 120여명의 기자들이 서로 밀치며 맛있는 ‘고기’로 달려든 것이다.
역시 최고 먹잇감은 박지성(24·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몰려든 기자들 때문에 한동안 단독 인터뷰를 하게 된 박지성은 “맨유 선수와 한국 대표의 차이는 단지 몸값”이라고 의미있는 농담까지 던지며 이 시대 최고 스타임을 충분히 과시했다.
‘토종스타’ 박주영은 “기도하는 골 세리머니를 바꿀 의향이 없느냐”는 질문에 “바꿀 생각이 전혀 없다”고 말하며 어머니가 선물한 금팔찌와 자신의 이니셜이 있는 금목걸이를 자랑하기도 했다. 중앙공격수 자리를 다투며 숙소에서 안정환과 한방을 쓰는 이동국은 “정환이 형이 텔레비전 드라마를 전혀 보지 않아 리모컨은 항상 내 손에 있다”고 주변을 웃긴 뒤, “형은 시간만 나면 형수와 통화한다”고 질투 섞인 이야기도 했다.
‘노랑머리’ 이천수는 12일 이란전의 승부를 예측해 달라는 질문에 “스포츠토토 하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예측하냐”며 새로운 골 세리머니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언론도 축구대표팀의 일원이고, 선수들도 자연스럽게 언론과 접촉해야 한다”고 집단 인터뷰 의도를 설명한 아드보카트 감독. 철저한 적자생존의 경쟁을 강조하는 그는 팔짱 낀 채 실내에서 유리창에 투영되는 기자회견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길우 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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