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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환 “만년하위 선수들 칭찬해주니, 꿈이 현실 되더라”

등록 2011-12-07 11:38수정 2012-11-20 10:15

윤정환(왼쪽) 감독
윤정환(왼쪽) 감독
별별스타 J1 승격 ‘골든골’ 넣은 윤정환 사간 도스 감독
일본 J2리그팀 1년간 조련 창단 14년만에 쾌거 이뤄
“선수들 이름 불러주며 하려는 의욕 끄집어내”
“감독으론 아직 20~30점 세밀한 패스 축구 꿈꾼다”
일본 사가현(규슈) 동쪽 끄트머리의 소도시 도스. 3일 오후 이곳을 연고로 한 사간 도스와 로앗소 구마모토의 일본프로축구 2부(J2)리그 마지막 경기가 열렸다. 베스트어메니티경기장(2만4000석)에는 개장 이래 최다인 2만2532명이 찾았다. 지역주민이 7만명이니 3명 중 1명이 한 시간, 한 장소에 모인 셈이다.

도스 주민들에게 이날은 꼭 기억해야 할 ‘역사적 순간’이었다. 도스는 이날 구마모토와 2-2로 비겨 승점 69(19승12무7패·2위)로 팀 역사상 처음으로 J1리그 승격을 확정했다. 그리고 벤치 맨 앞자리엔 현역 시절 재치있는 패스와 영리한 플레이로 ‘꾀돌이’라 불린 윤정환(38) 감독이 서 있었다.

일본 무대에서 한국인 지도자가 J2리그 팀을 1부로 끌어올린 것은 윤 감독이 처음이다. 게다가 J리그 통틀어 최연소 감독이 일궈낸 업적이어서 더욱 값지다는 평가다.

1997년 창단해 1999년 J2리그에 합류한 도스는 만년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한 팀이다. 2003년 단 3승에 그쳐 해체 위기에 내몰렸고, 2004년엔 리그 탈퇴 권고까지 받았다. 그러나 윤 감독이 지난해 지휘봉을 잡으며 180도 변했다. 윤 감독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침체된 팀 분위기를 되살리는 일. “선수들의 의지, 투지가 없었다. 자신감을 회복하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에 선수들 이름을 부르며 칭찬해주기 시작했다.” 패배의식에 젖어 있던 선수들이 몰라보게 되살아났고, 시즌 내내 돌풍을 일으킨 끝에 마침내 오랜 숙원을 풀어냈다.

일본 언론은 “윤정환 감독의 리더십이 꽃을 피웠다”고 평가했다. 윤 감독은 “역사적인 순간을 만끽하기 위해 많은 관중들이 찾아주셨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는 순간 나도 선수도 관중도 모두 하나가 돼 두손을 번쩍 치켜들었다”며 ‘그날’의 감동을 전했다. 승격의 기쁨이 채 가시지도 않은 5일 유럽 축구기행을 떠난 윤 감독을 전화로 만났다.

사간 도스 팬들이 3일 J1리그 승격에 만세를 부르고 있다.(위) 사간 도스 선수들이 도쿠시마와의 J2리그 37라운드에서 세번째 골을 넣은 뒤 환호하고 있다.(아래)
사간 도스 팬들이 3일 J1리그 승격에 만세를 부르고 있다.(위) 사간 도스 선수들이 도쿠시마와의 J2리그 37라운드에서 세번째 골을 넣은 뒤 환호하고 있다.(아래)

-내년부터 J1리그를 누비게 됐다.

“꿈같은 일이 현실이 됐다. 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다. 기쁨보다 부담이 앞선다. 마라톤에 비유하자면 이제 막 반환점을 돌았을 뿐이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고 더 신중해야 한다.”

-1부리그, 자신있나?

“지도자로서 처음 겪는 세계다. 벽이 높다는 것도 잘 안다. 일단 10위권 안에 들자는 생각으로 임할 것이다.”

-하위권 팀을 정상으로 올린 비결은?

“우리는 실력이 좋은 선수들로 꾸려진 팀은 아니다. 그래서 하고자 하는 분위기와 의욕을 만들었다. ‘이렇게 해야 이긴다’며 동기 부여를 많이 한 것이 효과를 본 것 같다.”

-전술적으로 평가하자면?

“빠르고 세밀한 패스 플레이 위주로 한다. 돌파력 있고 체력이 강한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측면 플레이에 내세운 게 주효한 것 같다.”

-주변에서 사람들이 좀 알아보나?

“올 시즌 거치면서 더 많이 알려졌다. 나도 깜짝 놀랐다. 동네에선 유명인이다. 하하.”

-연봉도 많이 오를 것 같다.

“많이 주면 좋겠지만…. 재정이 그리 좋은 팀은 아니다. 구단에서는 많이 생각해 준다고 하는데, 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J2리그는 어느 수준인가?

“뛰어본 선수들은 안다. 결코 낮은 수준의 리그가 아니다. K리그 중하위권 수준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도스에는 현재 한국 올림픽대표팀 김민우를 비롯해 김병석, 김명휘 등 3명의 한국 선수가 뛰고 있다.

-11월 한국 올림픽대표팀 차출 때 김민우를 보내지 않았는데.

“홍명보 감독에게 미안할 뿐이다. 묘하게도 (3위까지 주어지는) 승격을 위해 막판 치열하게 순위 경쟁을 벌일 때였다.”

-한국 감독으로 일본 선수들을 다루기 어려울 것 같다.

“작년에 한번은 팀의 기둥급 선수가 자기 입으로 휘슬을 불어 갑자기 훈련을 중단시킨 적이 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참고 선수를 불러서 차분하게 왜 그랬는지를 물었다. 그리고 최대한 선수의 입장을 존중해줬다. 그랬더니 태도가 급변해 나를 존중하기 시작했다. 그 선수는 올 시즌 전 경기에 출전해 득점왕까지 받았다.”

-지도자로서 좌우명은?

“무조건 최선을 다하자는 얘기보다 상대 인격을 먼저 존중해주는 지도자가 되고자 한다. 선수들을 인격적으로 존중해주고, 대화로 풀어나가다 보면 나도 모르는 보이지 않는 길이 생기는 것 같더라.”

윤정환 감독
윤정환 감독

-어떤 지도자가 되고 싶은가?

“과거 유공을 맡았던 발레리 니폼니시와 거스 히딩크 감독을 가장 존경한다. 니폼니시 감독은 프로 초년생 때 만나 나에게 축구가 무엇인지 철학적으로 고민을 안겨다 준 분이다. 공은 발로 차지만 공이 나아가는 방향은 상상력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그분을 만나 처음 알게 됐다. 히딩크 감독은 지도자로서의 카리스마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보여준 분이다.”

-평소 지향하는 축구 스타일은?

“스페인 축구를 좋아하고, 그중에서도 FC바르셀로나의 스타일을 롤모델로 삼고 있다.”

-한국 국가대표팀은 어떤가?

“조광래 감독께서 젊은 선수를 많이 기용하는 게 눈에 띈다. 당장 눈앞의 성과보다는 무언가 큰 그림을 그리고 계신다는 느낌을 받았다.”

-감독으로서 자신에서 몇점을 줄 수 있을까?

“이제 20~30점 정도 되려나. 100점에 다다르려면 아직 멀었다. 무엇보다 경험이 필요하다. 이번에 작은 성공을 이루긴 했지만, 작은 성공보다는 커다란 실패를 거듭해야 결국에는 더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한국 구단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온다면?

“당연히 감사하고 기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몸담은 팀에서 해야 할 일이 많다. 이제 막 1부리그에 올라간 팀을 안정적으로 1부리그에 남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급선무다.”

김연기 기자 ykkim@hani.co.kr

사진 J리그 누리집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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