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이모저모]
비록 경기에서 큰 점수차로 지긴 했지만, 17일 전국에서는 156만7000명이 설레는 기대를 안고 짜릿한 90분의 축제를 즐겼다. 기다리는 시간도 즐거웠고, 오랜만에 너나 할 것 없이 같은 옷을 입고 같은 목소리를 내는 즐거움을 맛봤다.
11만여명의 인파가 모인 서울 광화문과 서울광장 주변 텔레비전 인심은 후했다. 인근 대부분의 상가가 텔레비전을 길거리 쪽으로 돌려놓았고, 시청광장과 광화문 주요 지점에 자리를 잡지 못한 사람들은 가게 앞 텔레비전으로 속속 몰려들었다. 서울광장 주변의 카페·편의점들은 응원객들에게 돗자리 사은품을 나눠줬고, 강남·신촌 등 젊은이들이 몰리는 대형 호프집 등에서도 ‘스크린 완비, 응원 함께 해요’ 등의 문구를 붙여 놓고 응원객을 유치했다.
붉은악마 머리띠와 붉은 셔츠, 수건과 ‘불기 쉬운 부부젤라’ 등 응원도구와 함께, 맥주와 생수, 버터구이 오징어 등을 파는 상인들도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노점상들이 워낙 많이 나오다보니, 서로 튀기 위한 전략도 각양각색이었다. 인터넷에서 파티용품을 파는 ‘엽기월드’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는 이건우(27)씨는 머리에 큰 붉은 리본을 달고, 태극기를 두르고 형광색 안경을 썼다. 이씨는 “월드컵 응원도 하고, 사이트 홍보도 하고 겸사겸사 나왔다”고 말했다.
국내 최대 영화체인인 씨지브이(CGV)에서는 아르헨티나전이 열리는 시간 동안 전체 580개관의 40%인 240개관에서 월드컵 경기를 중계했다. 용산 씨지브이 등 35개 관에서는 이번 경기부터 1만5000원을 받고 3차원 입체영상(3D) 중계도 시작했다. 이상규 씨지브이 홍보팀장은 “3디를 통한 월드컵 경기 중계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다음 나이지리아전은 심야 경기이기 때문에 관람료도 1만원으로 할인된다”고 말했다.
국내에 거주하는 아르헨티나인들은 서울 서초구 잠원동의 아르헨티나 식당인 ‘부에노스아이레스’ 등에 모여 아르헨티나의 선전을 기원했다.
앞서 낮부터 각 직장에서는 밤에 벌어질 ‘축제’를 기다리며 긴 기다림에 애를 태웠다. 오전부터 자신의 예상 스코어를 제시하며 한국팀의 선전을 기원했고, 각 사무실에서는 저마다 예상 스코어를 맞히는 ‘축구 토토’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우리나라에서 월드컵 경기 예측 결과에 따라 배당금을 지급할 수 있는 유일한 허가권자는 ‘스포츠토토’뿐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이날 보도자료를 내어 “불법 월드컵 내기 사이트 등은 접속 차단 등의 조처를 취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길윤형 황춘화 구본권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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