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은 경기시작 2시간 전 벗겨졌다.
허 감독은 12일(현지시각) 그리스전 선발 골키퍼에 이운재 대신 정성룡을 선택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 8년 동안 대표팀 붙박이 수문장 이운재의 시대가 지는 순간이었다. 반면 차세대 거미손 정성룡으로서는 왕세자에 책봉된 것처럼 자신감과 책임감이 커졌다.
허정무 감독은 5월 대표팀 소집부터 이운재와 정성룡을 번갈아 투입하며 저울질했다. 일부에서는 “관록으로 보나 이운재가 낫다. 이운재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도 했다. 그러나 실용주의 허 감독은 경쟁체제로 전략을 바꿨다. 이운재가 이상적인 몸 상태가 아니라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다만 경기 직전까지 팀내 최고 선배로서 예우하고,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 애쓰기는 했다.
이운재 시대의 막내림은 2002년 김병지의 일선 후퇴 장면과 비슷하다.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김병지는 2002년 월드컵 첫 경기 폴란드전 직전 벤치 통보를 받았다. 대신 1994년 미국월드컵부터 만년 후보였던 이운재가 기회를 잡았고, 이후 한국 골문의 터줏대감 노릇을 해왔다.
프로 세계는 냉정하다. 2002년 첫 경기 직전 거스 히딩크 감독에게 “(김병지보다) 이운재가 나은 것 같다”고 말했던 김현태 골키퍼 코치. 이번에는 ‘정성룡이 나은 것 같다’는 조언을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아꼈고 직접 발탁한 이운재를 뒤로 앉혀야 하는 악역이 여간 힘들지 않았을 것이다.
최종 결정은 감독의 몫이다. 감독은 경기력으로 선발과 후보의 기준을 삼는다. 하지만 ‘감’도 매우 중요하다. 차범근 <에스비에스> 해설위원은 “아무리 밖에서 얘기해도 시합이 다가오면 감독의 필링(느낌)은 달라진다”고 했다. 문지기는 어느 자리보다 중요해, 이때의 육감은 승패를 좌우하는 도박이기도 하다.
정성룡 카드는 일단 성공했다. 정성룡은 중천의 해를 정면으로 마주보고 경기한 악전고투의 전반 45분을 잘 넘겼고, 후반 그리스의 빈발한 공격을 무난하게 처리했다. 월드컵 큰 무대의 경험은 대성하기 위한 자산으로 남았다.
언제나 음지인 곳은 없고, 언제나 떠 있는 해는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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