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국가 대항전 때 울려퍼지는 애국가는 경기의 성격과 잘 어우러져 뭉클한 감흥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축구, 야구, 농구, 배구 등의 국내 경기 때 애국가 의례는 과잉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지난달 30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06 독일월드컵 아시아 예선
국내 프로경기때마다 애국가‥ 선수·관중 모두 불만 의무조항도 아닌데 당연시‥ “관료문화 잔재”지적 “왜 축구하면서 애국가를 틀지요. 이래야 꼭 애국을 하게 되나요?”(전진형·26·유학 준비생) 3일 프로축구 FC서울과 부천 에스케이(SK) 경기가 열린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만난 한 축구팬은 으레하는 애국가 의례에 대해 퉁명스럽게 말했다. 대놓고 얘기는 못했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휴일 오후를 즐기러 왔는데, 애국가 때문에 분위기가 무거워졌다는 불만의 표정이 역력했다. 축구만이 아니다. 스포츠 현장에서는 늘 애국가가 첫 머리에 나온다. ◇ 스포츠 무대의 애국가 과잉=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의 월드컵 예선전이 열린 지난달 30일 서울월드컵경기장. ‘붉은 악마’ 응원단의 대형 태극기 물결을 바라보며 애국가를 듣는 관중의 표정에는 나라 대 나라의 싸움에 나서는 선수들에 대한 믿음과 승리에 대한 기대로 뿌듯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국가간 대항전이 아닌 국내 스포츠 무대로 눈을 돌리면, ‘애국가 인플레이션’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축구·야구·농구·배구 등 모든 스포츠 경기 도입부에 반드시 들어가는 애국가 때문에 흥겨웠던 경기장 분위기는 굳어진다. 프로축구 수원 삼성의 한 관계자는 “신나는 노래를 틀면서 분위기를 다 띄워놔도 애국가 나오면서 갑자기 엄숙해진다”며 “관료문화가 뿌리박은 것은 아닌가요?”라고 반문한다. ◇ 외국의 사례는?= ‘축구의 나라’ 브라질에서는 국내 프로리그 개막전 때만 국가를 연주한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독일 분데스리가 등 유럽 빅리그에서도 식전행사로 국가를 연주하지 않는다. 프로팀 경기 때는 단지 해당팀의 클럽 주제가를 연주한 뒤 선수들끼리 악수하고 심판의 시작 호루라기가 울린다. 다만, 미국에서는 프로농구(NBA)나 프로야구(MLB), 아메리칸풋볼(AFL) 등 주요 스포츠 경기 때 애국가 연주를 한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에는 짧은 역사 때문에 유난히 ‘애국주의’를 강조하는 풍토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 스포츠 지도자들의 생각은?= 브라질 출신의 세르지오 파리아스 포항 스틸러스 감독은 지난달 21일 “선수들이 워밍업을 끝내고 라커룸에서 옷을 갈아입으면 경기가 곧 시작해야 하는데 한국은 애국가 연주 등으로 선수들의 몸이 식어버린다”고 안타까워 했다. 몸을 데워 경기에 바로 들어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못내 걸렸던 것이다. 1997년 프로농구연맹 창립 과정에 관여했던 한 농구인은 “애초 프로농구 출범할 때도 애국가를 틀어야 하느냐는 문제를 놓고 고민을 했다”며 “선수한테는 의례적인 행사로 불필요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케이비엘 등 각 연맹의 규정에도 경기 전 애국가를 반드시 틀어야 한다는 의무조항은 없다. 영화관의 ‘대한뉴스’도 진작 없어진 2000년대. 한국 스포츠 현장의 팬들은 ‘애국가 과잉’의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다수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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