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토트넘 홋스퍼)이 18일(한국시각) 영국 런던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에서 열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8라운드 레스터시티와 안방 경기에서 시즌 첫 골을 넣은 뒤 팀 동료들에게 둘러싸여 축하받고 있다. 런던/EPA 연합뉴스
651분간 이어졌던 골가뭄을 해갈하는 데는 13분이 더 필요했다. 겹겹이 쌓인 부담감과 응어리를 걷어차듯 오른발을 크게 휘둘러 쏘아 올린 슛은 수비수 둘을 뚫고 골키퍼가 반응할 수 없는 골문 모서리에 꽂혔다. 마침내 시즌 첫 골을 신고한 손흥민(30·토트넘 홋스퍼)은 웃음도 질주도 없이 몇 걸음을 더 가다가 멈춰 서서 짧은 묵례로 세리머니를 대신했고, 동료들에게 둘러싸인 채 눈을 지그시 감았다.
“(득점한 일이) 믿기지 않았다. 그간 지녔던 모든 좌절과 실망, 부정적인 감정들이 그냥 그렇게 사라져 버렸다.
더 움직일 수가 없어서 가만히 섰다. 정말 행복했다.” 18일(한국시각) 영국 런던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에서 열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8라운드 레스터시티와 안방 경기에서 길었던 골 침묵을 깬 손흥민은 <비비시 스포츠>에 시즌 첫 득점의 순간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이날 손흥민은 올 시즌 처음으로 벤치에서 출발했다. 지난 시즌에는 출전한 35경기를 전부 선발로 치렀던 그였다. 예상 밖의 부진이 가져다준 예상보다 이른 로테이션은 그러나 전환의 계기가 됐다. 팀이 3-2로 앞선 후반 14분 교체 투입된 손흥민은
13분 만에 시즌 첫 골을 넣은 데 이어 39분과 41분 연속으로 골망을 뒤흔들며
구단 최초의 ‘교체 해트트릭’을 작렬했다.
손흥민이 18일(한국시각) 레스터시티전에서 해트트릭을 완성한 뒤 손가락 세 개를 펴 보이고 있다. 런던/AFP 연합뉴스
3골을 몰아치면서도 카메라에 환호하는 모습 한 번 보이지 않은 그는 경기 뒤 <스카이스포츠> 인터뷰에서 “(무득점 기간 동안)
팬들과 팀을 실망시켰다고 느꼈다”라며 부담 속에서도 “놀라운 응원”을 보내준 덕분에 강해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서 손흥민은 “하지만 나는 골(을 넣을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고 걱정하지 않았다. 해트트릭으로 팀을 돕게 돼 기쁘다”라고 덧붙였다.
손흥민은 이날 4개의 슈팅을 모두 골문 안으로 쏘았다. 기대득점(xG)은 0.67골이었는데 3골을 뽑았으니 극강의 결정력을 뽐낸 셈이다. 평점은 <풋볼런던> 10점, <
후스코어드닷컴> 9.32점. 이번 해트트릭은 손흥민의 프리미어리그
세 번째 해트트릭으로 그의 우상으로 알려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기록과 같다. 아울러 그는 리그 역사상 교체 출전해 해트트릭을 기록한
7번째 선수에 이름을 남기게 됐다.
손흥민의 활약을 지켜본 이들은 “내가 뭐랬어”를 연발했다. 앞서 <비티스포트> 방송에서 ‘손흥민을 선발 제외해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 “신성모독”이라고 했던 잉글랜드 국가대표 수비수 출신 방송인 리오 퍼디난드는 해당 발언이 담겼던
기사를 리트윗했다. 축구 해설가로 활동하는 토트넘 선배 제이미 레드냅은 “
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말이 있다. 손흥민은 정확한 방식으로 응수했다”고 평했다.
18일(한국시각) 레스터시티와 경기 종료 뒤 해트트릭 기념으로 공을 챙겨 든 손흥민이 팬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런던/EPA 연합뉴스
6-2 대승에 로테이션, 에이스의 부활까지 세 마리 토끼를 잡은 안토니오 콘테 토트넘 감독도 만면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는 경기 뒤 기자회견에서 “(손흥민이) 교체로 나서 경기를 바꿔냈기 때문에, 특히 팀이 필요로하던 일을 해냈기 때문에 기쁘다”라고 했다. 이어 손흥민의 해트트릭 덕에 “모든 선수가 ‘제발 벤치로 빼 주세요’라고 한 뒤 교체 출전해 3골을 넣을지도 모르겠다”며 농담을 했다.
극적인 부활을 알린 손흥민은 귀국 후 23일 코스타리카, 27일 카메룬을 상대로 A매치 평가전을 치른다. 이어지는 리그 복귀 첫 경기는 다음 달 1일 아스널과 숙명의 ‘북런던 더비’다.
박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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