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비(25·KB금융그룹) 선수
귀국한 박인비 인터뷰
“결과만큼 과정도 즐겼기에 행복
약혼자 믿음·희생이 나를 만들어
자선재단 설립해 좋은 일 하고파”
“결과만큼 과정도 즐겼기에 행복
약혼자 믿음·희생이 나를 만들어
자선재단 설립해 좋은 일 하고파”
“무리한 욕심을 내니 목표는 도망갔어요. 그래서 알았어요. 초심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을…”
메이저 대회를 모두 우승하는 기적 같은 목표를 달성하리라고 다들 기대했다. 평소엔 가능하다고 생각치도 않았던 목표였다. 결국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아쉽지는 않다. “왜냐구요? 앞으로 이룰 목표가 생생하게 생겼으니까요.”
지난 29일 매니지먼트사인 서울 논현동 아이비(IB)월드와이드 사옥에서 만난 박인비(25·사진·KB금융그룹)는 오히려 ‘행복’했다. 2013년은 정말 특별하다. 몇년간의 슬럼프를 훌쩍 벗어던졌고, 63년 만에 메이저대회 3연승 대기록을 세웠다.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고, 2년 연속 상금왕을 차지했다. 그랜드슬램을 해내지 못했어도 괜찮다. “너무 부담이 됐어요. 제가 별명이 ‘침묵의 살인자’일 정도로 멘탈엔 자신있었는데, 감당하기 어려웠어요. 이제 다시 그런 상황이 오면 자신있어요.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박인비에게 의미가 깊은 것은 지난 23일 미국 네이플스의 리츠칼튼호텔에서 열린 ‘올해의 선수상’ 시상식장에서 한 연설. 박인비는 수상 소감을 10분 동안 멋진 영어로 연설했다. 마이클 완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커미셔너가 “내가 들어본 연설 중에서 최고”라고 격찬한 연설은 4일간 하루 1~2시간씩 직접 쓰고 다듬으며 연습했다.
“골프라는 운동을 하면서 느낀, 느껴야 하는 행복이라는 느낌을 전달해주고 싶었어요.” 박인비는 “프로선수의 행복은 무조건 운동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해야 하는 데서 출발한다”고 말했다. “재미를 모르고 즐기지 못하면 행복해질 수 없어요.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행복해질 방법을 스스로 찾아야 해요.” 그래서 코치이자 약혼자인 ‘오빠’ 남기협(32)씨와 내년 10월에 ‘편안한 분위기’에서 결혼식을 하기로 했다. “오빠는 영어도 잘 못했는데, 저를 믿고 미국에 왔어요. 많은 희생을 하며 오늘의 저를 만들었어요. 골프장에서 결혼식을 갖고 싶어요. 그게 꿈이었어요.”
올해 박인비를 더욱 행복하게 만든 것은 ‘봉사’였다. 난치병을 앓고 있는 어린이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메이크 어 위시’(Make a wish)재단의 홍보대사인 박인비는 이미 7000만원을 기부했다. 지난여름 인천 스카이72 골프장에서 림프종을 앓고 있는 서민서(13)군과 식사도 같이 하고 라운딩도 같이 했다. 박인비는 “최경주 선배님처럼 자선활동을 하는 재단을 만들어 좋은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주니어 골퍼들을 실질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모색중이다.
박인비의 골퍼로서 남아 있는 꿈은 두가지. 그 한가지는 올해 코앞에까지 다가왔다 멀어져 간 그랜드슬램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2016년 브라질 올림픽에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하는 것이다. “국가대표 골퍼가 되면 출전만으로도 행복할 거예요.” 이미 ‘살아 있는 전설’이 된 박인비가 포근하게 웃는다.
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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