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라운드까지 5타 열세 딛고 역전…최종합계 3언더파 281타
자신의 뒤를 따라오는 4개조 경기가 아직 남아 있었지만, 사실상 브리티시오픈 우승이 굳어지는 순간. 필 미켈슨(43·미국)은 18번홀 그린 근처에서 세딸과 부인을 얼싸 안은 채 떨어질 줄 몰랐다. 14살 큰딸 어맨다를 비롯해, 소피아, 에번, 그리고 2009년 유방암 진단을 받고 병마와 투병해온 아내 에이미. 지난 2주 동안 스코틀랜드에서 함께하며 아버지와 남편의 우승을 고대했던 가족들은 함박웃음을 떠뜨리며 좋아했다. 오랜 동안 생사고락을 함께 한 캐디도 눈물을 글썽이며 미켈슨보다 더 감격하는 모습이었다.
늘 “골프보다 가족이 먼저”라는 원칙을 지키며 세계골프팬들에게 탁월한 왼손골퍼(레프티)의 위력과 뜨거운 가족애를 동시에 전파했던 미켈슨. 2009년 브리티시오픈을 앞두고 아내가 유방암 진단을 받자 대회 출전을 포기하고 3개월 동안 극진하게 아내를 돌봤다. 지난 6월 두번째 메이저대회인 유에스(US)오픈 때는 큰딸의 졸업식에 참석하느라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자택에서 하루 자고 1라운드 경기 당일 새벽 비행기로 펜실베이니아주 아드모어로 이동하는 등 남다른 자식사랑을 보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마침내 생애 처음으로 ‘클라레 저그’(은으로 만든 술주전자)의 주인공이 됐다.
■ 13~18번홀 버디 4개 ‘우승 원동력’
21일(현지시각) 영국 스코틀랜드 걸레인의 뮤어필드 링크스(파71·7192야드)에서 열린 142회 브리티시오픈(공식 명칭 The open championship) 최종 4라운드. 미켈슨은 버디 6개와 보기 1개로 5타를 줄이며 최종합계 3언더파 281타(69+74+72+66)로 우승을 일궈냈다. 3라운드까지 공동선두이던 리 웨스트우드(잉글랜드)와 헌터 메이핸(미국)과 5타 차의 열세를 뒤집은 멋진 역전 드라마였다. 무엇보다 13번홀부터 18번홀까지 후반 6홀에서 보기 하나없이 버디만 4개 잡아낸 것이 우승 원동력이었다. 우승 상금 95만4000파운드(16억2000만원).
1992년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 데뷔해 무려 20차례의 도전 끝에 들어올린 클라레 저그였다. 메이저대회 통산 5승째. 이전까지 메이저대회에서는 마스터스에서 3승(2004, 2006, 2010년), 피지에이(PGA) 챔피언십에서 1승(2005년)을 올린 바 있다. 그러나 유에스오픈과 브리티시오픈과는 우승 인연이 없었다. 브리티시오픈 제패로 앞으로 유에스오픈만 우승하면 ‘커리어 그랜드슬램’의 위업을 달성하게 된다. 이번 우승으로 미국프로골프 투어 통산 42승 고지에 올랐다.
■ 후반 무너진 리웨스트우드·스콧
21년 만의 잉글랜드 챔피언 탄생으로 기대를 모았던 리 웨스트우드는 최종합계 1오버파 285타로 애덤 스콧(호주), 이언 폴터(잉글랜드)와 함께 공동 3위로 마쳤다. 웨스트우드는 보기 5개를 쏟아냈고 버디는 1개 밖에 잡지 못했다. 후반 한때 선두로 나섰던 스콧은 13번홀(파4)부터 4개홀 연속 보기를 적어내며 속절없이 무너졌다. 이븐파 284타를 기록한 헨리크 스텐손(스웨덴)이 2위에 올랐다. 통산 15번째 메이저대회 우승을 노렸던 타이거 우즈(미국)는 샷 난조로 고전하며 공동 6위(2오버파 286타)로 마쳤다. 버디 3개에 보기 6개로 들쭉날쭉했다.
■ 사상 첫 스코틀랜드오픈과 동시 제패
미켈슨은 그동안 유럽 징크스에 시달려왔다. 유러피언 투어에서 유독 약한 면모를 보였다. 그러나 지난주 스코틀랜드오픈에서 유러피언 투어 첫 우승을 차지한 데 이어 브리티시오픈까지 제패함으로써 명실상부한 세계 정상급 스타로 거듭났다. 두 대회를 한해 연속 제패한 것은 미켈슨이 처음이다.
미켈슨은 막판 더 빛났다. 17번홀(파5·575야드)에서 두번째 샷으로 공을 그린 위에 올린 뒤 2퍼트로 버디를 잡아내며 2위 그룹과의 격차를 2타로 벌렸다. 18번홀(파4·470야드)에서는 두번째 아이언샷이 환상적이었다. 공이 그린 왼쪽 벙커 쪽으로 러가는 듯 했으나 슬라이스 라인을 그리며 홀 뒤쪽 3m 지점에 멈춰 섰다. 그리고 마법같은 퍼트로 다시 버디를 잡아냈다. 2위와 3타 차 단독선두로 경기를 먼저 끝낸 미켈슨은 우승을 확신한 듯 주먹을 불끈 쥐었다. 미켈슨은 경기 뒤 “그동안 링크스코스에서 성적이 좋지 않았는데 오늘은 내 생애 최고의 샷을 날렸다”며 기뻐했다.
미켈슨은 브리티시오픈에서 2011년 공동 2위, 2004년 3위로 우승에 근접한 적이 있다. 그러나 16차례 도전에서는 톱10에 들지도 못했다. 지난해를 포함해 4차례나 컷 탈락의 수모도 당했다. 미국에서 열린 대회에서는 강했으나 바다에 인접한 링크스코스에서 벌어지는 브리티시오픈에서는 바람을 지배하지 못해 번번이 고배를 들었다.
미켈슨은 올해부터 로프트 2도짜리 오디세이 퍼터(캘러웨이골프)를 사용하고 있다. 보통 선수들이 4~5도의 퍼터를 쓰는 것과 달리 그는 그보다 작은 각도의 퍼터로 훨씬 안정감을 느낀다고 한다.
■ 한국 선수들 부진
브리티시오픈에 처음 출전한 일본의 신예 마쓰야마 히데키는 우즈 등과 함께 공동 6위에 이름을 올려 아시아 선수 중에는 가장 좋은 성적을 남겼다. 한국 선수들은 부진했다. 양용은(41·KB금융그룹) 공동 32위(9오버파), 최경주(43·SK텔레콤) 공동 44위(10오버파), 김경태(27·신한금융그룹) 공동 73위(15오버파).
김경무 선임기자 kkm10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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