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여자골프 하이트진로 챔피언십에서 후원사의 대형 맥주 광고판이 놓인 17번홀에서 이보미가 티샷을 하고 있다.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 제공
선수들 샷 연습장 갖춘 곳 드물어
인근 실내골프장서 몸 풀고 이동
대회 코스 지나친 광고판 눈살
“협회, 선수 처우개선 배려해야”
인근 실내골프장서 몸 풀고 이동
대회 코스 지나친 광고판 눈살
“협회, 선수 처우개선 배려해야”
“대한민국에서 프로골프 선수는 뒷전입니다. 스폰서만 우선이고, 선수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어요. 기대도 안 합니다. 협회 사람들 너무해요.” 남자대회인 한국프로골프투어(KGT)에서 20년 남짓 선수생활을 한 정아무개 골퍼의 푸념이다.
“골프대회 열면서 선수들이 연습할 수 있는 ‘드라이빙 레인지’ 하나 없는 게 말이 됩니까? 연습볼도 몇개 안 주고…. 협회가 골퍼들에게 그런 것 하나 못 해주면서 국장급 간부는 연봉을 1억원씩 받고….” 미국프로골프(PGA) 투어를 주요 무대로 삼는 한 골퍼도 이렇게 한국 투어의 열악한 현실에 직격탄을 날린다.
국내 남녀프로골프 투어는 과연 누굴 위한 대회인가? 투어 대회를 열려면 굴지의 기업들이 타이틀스폰서로 나서야 하고, 대회에 적합한 골프장도 물색해야 하는 등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프로골프협회가 선수에 대한 배려와 서비스보다는 스폰서에만 끌려다닌다는 불만이 선수들 사이에서 나온 지 오래다.
■ 연습장 없는 투어 대회 지난해 국내에서 열린 한국 남녀프로골프 투어는 모두 34개. 이 가운데 선수들이 충분히 몸을 푼 뒤 곧바로 경기에 나갈 수 있는 드라이빙 레인지를 제대로 갖춘 골프장에서 열린 대회는 얼마 되지 않았다. 신한동해오픈과 한국여자오픈이 열린 인천 송도의 ‘잭니클라우스골프클럽코리아’ 정도로, 벙커 연습장까지 있다. 최경주 씨제이(CJ) 인비테이셔널이 열린 경기도 여주 해슬리나인브릿지컨트리클럽이나 한국오픈이 개최된 천안 우정힐스컨트리클럽도 완벽하지는 않지만 샷 연습장을 갖췄다.
그렇지 못한 곳에서 대회가 열리면, 선수들은 인근 실내골프연습장에서 몸을 푼 뒤 대회 코스로 이동해야 하는 등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차로 20~30분 거리에 있는 연습장을 협회가 준비해놓고 볼 한 박스 정도 지원해주는데, 누가 거기서 치고 오겠어요. 귀찮아서 안 가는 경우가 많아요. 대회 골프장에서 충분히 워밍업하고 출전해야 하는데….” 한 골퍼는 이렇게 한숨을 쉰다.
한국프로골프협회(KPGA)도 이를 인정한다. “미국 투어에서는 대회 코스에 반드시 잔디로 만들어진 드라이빙 레인지가 있어야 하고, 연습볼도 무상으로 지급한다. 우리나라 골프장들은 투어 대회를 개최할 만한 골프장이 몇개 없다. 골프장을 빌리기 어려운 현실에서 연습장 유무를 따지기도 힘들다. 협회의 노력만으론 해결될 일이 아니다.” 박호윤 한국프로골프협회 사업국장의 말이다.
김동욱 대한골프협회 부회장은 이에 대해 “선수들의 그런 불만이 있을 수 있다. 대회 주최 쪽도 이를 고려해야 한다. 프로투어는 선수들을 위한 경연장이다. 따라서 선수들에게 최대한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선수들에게 아침이나 점심을 무료로 제공하는 골프대회도 얼마 되지 않는다.
■ 도를 넘어선 대회 코스 광고 선수들에게는 인색하면서도 협회는 메인스폰서에는 최대한 배려를 해준다. 이를 놓고 “갑과 을이 바뀌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일부 스폰서들은 대회 코스에 도가 지나친 광고판 설치로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지난해 10월 한국여자프로골프 투어 하이트진로 챔피언십에서는 대형 병맥주와 캔맥주가 그려진 광고판이 홀은 물론 선수들이 타고 다니는 카트 위에까지 등장했다. 주방기기업체인 넵스는 홀 티박스 뒤에 아예 주방기기를 배치했다.
대회 운영을 맡았던 김평기 스포티즌 부사장은 “하이트진로의 경우 대회 개최 비용으로 25억원을 낸다. 그 돈으로 텔레비전 광고를 하면 엄청 많이 할 수 있다. 선수들의 시야나 경기 때 멘털에 지장을 주지 않는 한 협회도 상관이 없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김동욱 대한골프협회 부회장은 “스폰서들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려고 광고를 하는 것은 맞지만 기업의 공익성 면에서 절제도 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은행 등 일부 스폰서들은 대회 자체 후원보다는, 자체 고객(VIP)을 출전 선수들과 붙여 라운딩하게 하는 ‘프로암대회’를 중시하는 행태도 보인다. “프로암만 잘 치르면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른 것”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지난해 11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에이디티(ADT) 캡스 챔피언십에서는 브이아이피 초청을 위해 토요일 대회를 마친 뒤 일요일 프로암을 열었다.
골프 전문가들은 협회가 스폰서십에만 치우치지 말고 선수들 처우 개선에도 적극 나서줄 것을 바라고 있다.
김경무 선임기자 kkm10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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