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비와 강풍을 동반한 ‘악마’로 돌변할 지 모르는 거친 자연과의 싸움.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그 사나운 자연과 맞서는 자신과의 힘겨운 내부 투쟁. 그것에서 이겨내야만 정상에 오를 수 있는 게 바로 브리티시 여자오픈이다.
그런데 신지애(24·미래에셋)은 둘과의 힘겨운 싸움에서 겉으로는 한껏 여유를 부리는 모습이었다. 라운드 내내 실실 웃었다. 버디를 잡으면 기분이 좋아서, 보기나 트리플보기를 범해도 마냥 웃었다. ‘멘붕’(멘탈 붕괴)과는 전혀 무관해 보였다. 한때 한국 무대에서 ‘미소천사’란 별명을 얻은 적도 있지만, 140여명의 세계적 강호들이 총출동한 시즌 마지막 메이저대회에서 그런 모습은 뜻밖이었다. 그러고는 유일하게 언더파 스코어를 적어내며 ‘지존’으로 우뚝 섰다.
경기 뒤 신지애는 이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지난 2년 동안 우승으로부터 멀어져 있었더니, 사람들이 나에 대해 수근대는 것을 수도 없이 들었다. 사람들이 물었다. ‘너 문제가 뭐니, 문제가 뭐냐고? 그래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고, 심리치료사를 고용했다. 일본인인 그가 말했다. ‘너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을 걱정하지 말고 너 자신만 믿어라!’ 그래서 이후 나 자신에 집중하고 나 자신을 믿고 웃으려 했다.” 남들이 평생 한번 하기도 힘든 브리티시여자오픈을 두번씩이나 제패한 신지애 우승 비결은 바로 그 미소에 있었다.
16일(현지시각) 영국 위럴의 로열 리버풀 골프클럽(파72·6657야드)에서 열린 2012 리코 브리티시여자오픈(총상금 275만달러) 3~4라운드. 2라운드가 악천후로 순연되는 바람에 이날 하루 36홀을 치르는 강행군 속에서 신지애는 최종합계 9언더파 279타(71+64+71+73)로 우승했다. 사나운 날씨 속에 언더파를 기록한 선수는 그가 유일했다. 이븐파 288타(72+68+72+76)로 2위를 차지한 박인비(24)를 무려 9타 차로 따돌렸다. 이 대회 사상 최다 타수 차이 우승이었다. 그가 4라운드 11번홀에 들어서기 전 몰아닥친 강풍과 비도 그의 상승세를 막을 수는 없었다.
바로 지난주 킹스밀 챔피언십에서 ‘핑크 공주’ 폴라 크리머(미국)와 1박2일 9차례 연장 혈투 끝에 1년10개월 만의 미국 투어 우승(통산 9승)을 일궈낸 데 이은 쾌거다. 2주 연속 우승으로 완전 재기도 알렸다. 어떤 압박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심장과 강철체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2년 만에 다시 세계 최강 자리에 다시 섰다.
“골프를 통하여 인생을 배워가고, 인생을 알아가며, 인생을 채우고 있는 중….” 신지애의 트위터에 최근 올라 있는 이런 글귀는 지난 2년간 부진 속에서 그가 터한 지혜를 읽을 수 있다.
세계랭킹 10위 신지애는 2008년 서닝데일에서 열린 브리티시여자오픈 우승 이후 4년 만에 다시 이 대회 정상에 섰다. 미국 투어 통산 10승째. 우승상금 42만8650달러로 시즌 상금도 100만달러를 돌파했다. 116만8932달러. 무리한 스윙 교정, 허리와 손등 부상 등으로 잠시 추락했던 그는 완전 재기에도 성공했다. 특히 2라운드에서 절정의 샷 감각을 뽐내며 이글 1개와 버디 6개로 8타를 줄이며 단독선두로 나섰고, 그것이 우승 원동력이었다. 18홀 동안 단 한번도 그린을 놓치지 않을 정도로 완벽한 가까운 아이언샷을 선보였다.
한국 선수들은 올해 4대 메이저대회 중 크라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유선영), 유에스여자오픈(최나연)에 이어 브리티시여자오픈까지 3개 대회를 제패하며 기세를 올렸다. 중국의 펑산샨이 웨그먼스 엘피지에이 챔피언십에서 우승해 아시아 선수들이 모두 4대 메이저대회를 제패한 형국이 됐다.
김경무 선임기자 kkm10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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