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현이 21일 제주도 서귀포시 핀크스 골프클럽에서 열린 KPGA 코리안투어 SK텔레콤오픈 2023에서 생애 첫 우승을 차지한 뒤 동료들의 물세례를 받으며 포효하고 있다. KPGA 제공
한때 타수는 3타 차이로 벌어졌다. 한국 무대 첫 우승을 노리던 백석현(33)의 얼굴에 여유가 보였다. 하지만 14번 홀(파3)에서 그는 보기를 했고, 같은 조의 이태훈(33)은 버디를 했다. 순식간에 둘의 타수가 1개 차이로 좁혀졌다. 4개 홀이 남은 가운데 페어웨이에 다시금 긴장감이 감돌았다.
21일 제주도 서귀포시 핀크스 골프클럽(파71)에서 열린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 SK텔레콤 오픈 2023(총상금 13억원) 마지막 라운드. 잠시 느슨해졌던 우승 경쟁은 15번 홀부터 불꽃이 튀었다. 희비가 교차한 것은 16번 홀(파5)이었다. 이태훈의 두 번째 샷이 페널티 구역에 떨어졌고, 결국 보기로 마감됐다. 다시 2타 차이가 되자 백석현도 안도하는 듯했다.
그러나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었다. 마지막 18번 홀에서 백석현의 티샷은 연못에 빠졌고 벌타를 받고 친 세 번째 샷은 그만 그린 옆 벙커로 떨어졌다. 하지만 벙커 샷을 홀 컵 가까이 붙이면서 가까스로 연장 위기에서 벗어났다. 최종 합계 13언더파 271타, 이태훈(12언더파 272타)과는 1타 차이의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1라운드부터 4라운드까지 1위 유지). 경기 뒤 동료들의 축하를 받으면서 백석현은 왈칵 눈물을 쏟기도 했다.
중학생 때 타이로 건너간 그는 2008년 아시안투어에서 프로 데뷔해 주로 일본, 타이 무대에서 활약했다. 2014년 KPGA 코리안투어에 처음 모습을 보이기는 했으나 코로나19 여파로 2021년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했다. KPGA 코리안투어 역대 최고 성적이 공동 7위(2022년 아시아드CC 부산오픈)일 정도로 국내 무대에서는 무명에 가까웠다. 작년 제네시스 포인트도 53위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번 대회 우승으로 골프팬들에게 ‘백석현’이라는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우승 상금은 2억6000만원. 이번 대회 참가 전까지 48개 대회 참가로 벌어들인 상금(2억3051만원)보다 더 많다.
SK텔레콤 오픈 2023에서 우승한 백석현. KPGA 제공
백석현은 우승 뒤 인터뷰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복감이 느껴진다. 너무 즐겁고 재밌게 쳤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우승을 생각하지 않고 공격적으로 쳤는데 16번 홀부터는 우승을 인식해서 그런지 17번 홀부터 샷 실수가 났다”며 “마지막 홀 티 샷이 제일 아쉬웠고, 4번째 벙커 샷은 다시 치라고 해도 못 할 만큼 최고의 샷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이번 대회에서 퍼팅 때 공을 보지 않고 홀 컵을 바라보는 ‘노룩 퍼트’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백석현은 “오늘도 흔들릴 때마다 노룩 퍼트를 많이 했다”면서 “마지막 (챔피언) 퍼트 때는 너무 떨려서 공도, 홀 컵도 안 보고 내 손만 봤다”며 웃었다. 결혼 5개월 차의 그는 “골프가 안 되니까 아내가 그동안 내 눈치를 많이 봤다. 아마 집에서 울면서 TV를 봤을 텐데 이제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얘기해 주고 싶다”고 말했다. 우승 상금에 대해서는 “우승 공약을 많이 해왔다. 아내에게 차를 사줘야 하고, 캐디에게 시계도 선물해야 한다”며 “돈보다는 (우승으로) 4년이라는 시드가 생겨서 여유롭게 나쁜 것을 고치면서 조금 더 나은 선수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한편, ‘디펜딩 챔피언’ 김비오는 이날만 5타를 줄이면서 최종 합계 10언더파 274타로 이태희, 그리고 아마추어 국가대표 송민혁과 함께 공동 3위에 올랐다. 3라운드 공동 선두였던 최호성은 4타를 잃고 공동 11위(7언더파 277타)로 밀렸다. 최경주는 공동 19위(5언더파 279타).
서귀포/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