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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경기일정

‘빙판위의 파이터’ 아시나요?

등록 2013-10-23 19:46수정 2013-10-23 21:10

박태환이 22일 아이스하키 아시아리그 출전을 준비하며 서 있다. 안양 한라 제공
박태환이 22일 아이스하키 아시아리그 출전을 준비하며 서 있다. 안양 한라 제공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박태환
거친 플레이로 상대선수 위협
국내 유일 ‘인포서’ 인기몰이
“몸싸움은 본능…NHL 도전”
이 사나이, 도대체 뭐라고 불러야 할까. 동그란 얼굴이 순해 보이고 방실방실 눈웃음을 짓는데, 몸으로 시선을 돌리면 살벌하다. 근육질의 몸에 문신이 상체를 타고 목까지 올라왔다. “좋아하는 아이스하키를 몸에 남기고 싶어 대학교 4학년 때부터 조금씩 하다 보니 이렇게 됐어요. 아마 계속 늘어날 거예요. 헤헤.” 몸과 얼굴의 이질감만큼 종잡을 수 없는 이는 아이스하키 안양 한라에서 몸싸움 최전선에 나서는 국가대표 공격수 박태환(25)이다.

22일 오후 안양빙상장에서 만난 박태환은 “국내 유일의 ‘인포서’로 자처한다”고 말했다. 인포서(enforcer)는 상대를 거친 플레이로 위협하고 길을 열며, 때로는 싸우기도 한다.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에서는 인포서가 득점왕 못잖게 인기가 많다. 우리나라는 주먹다짐이 허용되지 않아 인포서 역할을 하는 선수가 없다. 하지만 “보디체킹과 몸싸움이 내가 아이스하키를 하는 이유”라는 박태환은 거칠다. 규정이 허용하는 한도에서 상대를 제압해 득점을 돕는다.

22일 안양빙상장에서 열린 2013~2014 아시아리그 크레인스와의 경기에서도 상대 수비수를 위협하며 통로를 터줘 4-1 승리를 이끌었다. “멋지게 패스하고 슛을 날리는 것보다 상대를 쓰러뜨리고 싸움을 거는 게 더 재밌어요. 팬들이 열광하는 모습에 희열을 느껴요.” 매일 2시간씩 근육을 단련시키고, 복싱까지 배운 기술로 가하는 체킹은 가히 살인적이다. 박태환은 “이젠 아시아에서 날 아니까 굳이 강하게 하지 않아도 선수들이 알아서 피한다. 가는 척하면서 겁만 주고 상대가 피할 때 퍽을 뺏는 식으로 머리를 쓴다”며 웃었다.

그는 “싸움은 본능이다. 빙판에 서면 폭발할 것처럼 에너지가 넘친다”고 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시작한 아이스하키가 운명이라고 느낀 것도 “엔에이치엘 영상에서 나오는 선수들의 몸싸움이 너무 강했기 때문”이다. “골대에 공을 넣는 스포츠를 좋아하는데 몸싸움까지 허용되니 신이 내린 스포츠라고 생각했어요.” “격투기나 무예타이도 배우고 싶지만, 나도 모르게 빙상장에서 발이 올라가는 등 주체할 수 없을까봐 참고 있다”고 한다. 내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동료가 억울한 반칙을 당했을 때 응징하는 식의 스스로 정한 규정을 지킨다.

겉모습과 달리 온몸은 성한 데가 없다. 연세대 2학년 때부터 양쪽 다리에 피가 통하지 않아 조직이 괴사하는 구획증후군을 앓고 있다. 2년간 버티다 수술도 받았다. “이번 시즌이 끝나고 다시 수술을 할 수도 있어요. 힘을 많이 쓰고 뛰어다니면 다리에 무리가 와요.” 얼마 전엔 오른쪽 어깨를 수술했고 왼쪽 어깨도 수시로 빠진다. 허리 디스크에 목 디스크, 손목 연골도 파열된 상태고, 발목 인대도 약하다. 선수 생명이 줄어 들 우려가 있지만 “그렇더라도 원하는 하키를 하고 싶다. 자제할 생각은 없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규정이 바뀌어 싸움 등이 허용되면 경기가 더 재미있어질 것입니다.”

몸싸움만 아니라 기술도 좋은 그는 이번 시즌 뒤 북미아이스하키 도전을 고민하고 있다. “빠르고 골 잘 넣는 아시아 선수는 많았지만, 인포서는 없었어요. 성공한다 실패한다 그런 의미가 아니라 내가 해보고 싶은 하키를 원없이 해보고 싶어요.” 아이스하키 선수가 엔에이치엘에 입성하는 것도 어렵지만 성공하는 건 더 어렵다. “엔에이치엘에서 성공해도 류현진처럼 유명해지진 않겠지만, 도전은 해보고 싶어요.”

스틱만 잡으면 포효하지만 빙판을 벗어나면 수줍은 청년이다. 낯을 가리고 말도 별로 없다. 팬들이 붙잡고 사인을 요청하니 얼굴이 금세 붉어진다. 핑크색을 좋아해 장갑도 신발 끈도 휴대폰도 핑크색이다. “스틱도 핑크색으로 하고 싶었는데, 주문이 안 되더라”며 수줍게 웃는 이 남자가 한국 아이스하키 최고의 파이터다.

안양/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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