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 김단비가 3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 사옥 스튜디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서른둘. 대졸 직장인 첫 취업 연령이 30대에 접어든 한국에서 아직은 ‘앳된’ 나이다. 하지만 운동선수는 다르다. 30대면 노장, 40대면 전설이 되는 게 프로 세계다. 여자프로농구 우리은행 김단비(33)는 바로 그 나이에 15년을 몸담았던 정든 둥지를 떠났다. 새로운 도전을 위해서였다. 결과는 우승, 그리고 생애 첫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 수상이었다.
결말이 나와 있는 지금 와서 보면, 올 시즌 김단비가 이룬 성공은 당연해 보일지도 모른다. 그는 이전 소속팀 신한은행을 넘어 한국 여자농구를 대표하는 선수였다. 그가 새롭게 몸담은 우리은행은 리그 최고 명장으로 꼽히는 위성우 감독이 사령탑으로 있었고, 언제나 ‘우승 후보’로 손꼽히는 명문이었다. 리그를 대표하는 팀, 감독, 선수의 만남은 지금 와서 보면 뻔한 드라마처럼 보인다.
하지만 스포츠에 정해진 결말 따위는 없다. 더욱이 커다란 기대감은 오히려 당사자들을 몇배의 부담감으로 짓누른다. 김단비 역시 그랬다. 김단비는 챔프전 뒤 “솔직히 부담이 많이 됐다”라며 “우리은행에 왔을 때, 사람들이 ‘쟤, 왜 저랬어? 프랜차이즈 스타로 남을 수 있었는데 왜?’”라는 말을 들을까 봐 두려웠다고 했다. “잘못된 선택이 아닐까”하는 걱정을 떨치기 어려웠다. 그는 돌이켜 보면 “남의 시선을 많이 신경 썼던 것 같다”고 했다. “인터뷰 도중 한 번도 눈물을 흘린 적이 없었다”는 그는 챔피언 자리에 오른 뒤 부담과 고마움을 털어내며 울먹였다.
우리은행 위성우 감독(왼쪽)과 김단비가 3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 사옥 스튜디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새로운 걸 싫어해서 “먹는 것도 먹던 것만 먹는다”는 그에게 이적은 크나큰 결심이었다. 왜 그는 그런 결정을 했을까. 김단비는 “몇년 전부터 편한 것에 익숙해진 내 모습이 보였다”라며 “사람이 한 자리에 있다 보면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안 좋은 행동이 나와도 그게 잘못된 줄 모를 때도 있다”고 했다. 그는 “너무 현재에 만족하며 살았던 것 같았고, 은퇴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변화를 줄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고 돌아봤다.
익숙했던 알을 깨고 훨훨 날아오른 김단비. 그는 “사실 인터뷰를 할 때 ‘엠브이피가 없네요’라는 말씀을 많이 들었다”라며 “그럴 때면 ‘그게 뭐가 중요하다고, 괜찮아요’하며 넘겼다. 제가 진짜 괜찮은 줄 알았다”고 했다. 하지만 사실 마음 속에선 최고의 선수라는 자리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단지 그 마음을 “못나오게 눌러뒀을 뿐”이었다. 그는 “이렇게 상을 받고 나니 ‘농구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해피엔딩’으로 마친 새 직장에서의 첫해. 다음 시즌 김단비와 우리은행은 이런 성공을 또 한 번 거둘 수 있을까. 아직은 알 수 없다. 강력한 맞수로 꼽혔던 팀들이 올 시즌 부상 등 변수로 흔들렸던 만큼, 위성우 감독 말처럼 다가올 시즌은 “역대급으로 치열한” 시즌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제 김단비는 예전처럼 걱정하지 않는다. 그에겐 팀과 동료가 있고,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이 있다.
김단비는 삶과 목표를 두고 자신처럼 고민하고 있을 친구들에게도 응원을 건넸다. “저에게도 이번 도전은 정말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목표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목표를 위해 우리은행에 왔고 목표를 이뤘습니다. 도전은 좋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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