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라이온즈 이승엽이 지난 9월12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 앞에 걸린 자신의 대형 그림 앞에서 타격자세를 시연해 보이고 있다. 대구/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국민타자’가 은퇴한다. 오늘(3일)이 그의 생애 마지막 프로 경기가 된다. 36번 유니폼이 걸려 있던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라팍) 라커룸도 이제 깨끗하게 비워진다. “눈물 흘릴 것 같다”는 주위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니 그는 야구 선수로도, 한 명의 인격체로도 잘 살아왔구나 싶다.
이승엽(41·삼성 라이온즈)은 프로 23년 동안 ‘프로’다운 모습을 보여줬다. “하고 또 해도 정말 재미 있는”(이승엽) 야구를 위해 온갖 유혹을 이겨내며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왔다. 기록적으로 기복이 있는 해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변화를 주저하지 않으며 스스로의 노력으로 위기를 극복해 왔다. 2000 시드니올림픽 때나, 2006 세계야구클래식(WBC), 2008 베이징올림픽 때는 대표팀이 꼭 필요한 순간에 ‘한 방’을 쳐줬다. 800만명을 넘어 역대 최다 관중을 향해 가는 케이비오(KBO)리그의 인기에는 온 국민의 가슴을 후련하게 했던 그의 ‘한 방’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사실 2015년 말 삼성과 재계약을 하면서 “2년 뒤 은퇴 하겠다”고 선언한 순간부터가 이별의 과정이었다. “초라하게 은퇴하지 않겠다”는 신념으로 그는 야구 인생의 마지막 페이지를 하나씩 하나씩 채워왔다. 2016년 타율 0.303, 27홈런 118타점, 2017년 타율 0.278, 22홈런 84타점(2일 현재)을 기록하면서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냈다. 2016시즌에는 “은퇴 시즌 직전의 성적이 중요하다”면서, 2017시즌에는 “팀에 짐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박수 받으며 은퇴 하고 싶다”면서 매 타석에 집중했던 그였다. 그가 전날(2일)까지 때려낸 시즌 22홈런은 삼성 팀 내에서 외국인 타자(러프) 다음으로 많은 홈런 수다. 이승엽은 은퇴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도 방망이에 테이핑을 하는 등의 변화를 주면서 ‘노력하는 선수’다운 모습을 보여줬다.
동시대를 살아온 한 사람으로 돌이켜보면 우리도 한때는 ‘이승엽’이었다. 여러 경쟁을 뚫고 사회에 진출해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찬란한 시절을 꿈꾸며 땀 흘리고 견디며 달려왔다. 그러나 ‘개천에서 더 이상 용이 나오지 않는’ 사회 시스템에 막혀 프로야구로 치면 주전은 커녕 1.5군, 2군에 머물러 있는 ‘그대로의 현실’에 좌절했다.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 ‘진실한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에 배신만 당해왔던 터다.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라 ‘아프기만 한 청춘’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던 것은, 일말의 희망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내일은 그래도 나아질 것이라는…’ 2008 베이징올림픽 때 1할대 타율에 전전하다가 일본전서 극적인 홈런을 터뜨렸던 이승엽처럼 말이다.
왼손투수로 입단했다가 왼손타자로 변신하고, 아시아 최고 홈런왕에서 일본 명문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70대 4번 타자까지…데뷔부터 은퇴투어까지 이승엽의 야구 인생은 한 편의 동화 같았다. 그의 땀은, 그의 노력은 ‘프로야구’라는 시스템이 응답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진실한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 시스템은 스포츠에서만 가능할까. ‘이승엽 시대’의 끝을 보면서 진실되게 흘린 땀이 온전히 보상받는 사회의 도래를 꿈꿔보는 하루다.
PS. 고마웠습니다, 국민타자. 굿바이, 이승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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