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팀 운영이 주먹구구식이었던 게 모두 드러났다.”
2017 세계야구클래식(WBC)을 지켜본 야구 전문가들의 말이다. 일본 야구처럼 중장기적인 로드맵 없이 대회 때마다 대표팀을 급조해 소집한 것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안경현 <에스비에스스포츠> 해설위원은 “실력의 문제라기보단 과정의 문제가 많았다. 일본은 도쿄올림픽까지 대표팀이 체계적으로 운영되지만 한국은 그때그때 코치진부터 선수까지 급조되니 (이번처럼) 문제가 생긴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야구 전문가도 “국제대회를 앞두고 우리만의 준비 과정을 찾아보기 어렵다. 선발 과정이나 전력 분석, 장기 육성 등 플랜 자체가 아예 없다. 한국 야구 전체의 각성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이효봉 <스카이스포츠> 해설위원은 “한국이 야구 강국으로서의 지위를 지키는 게 쉽지 않아졌다. 계속 발전, 성장하는 유럽 나라 등의 도전을 받는 상황이어서 앞으로 내실을 다져 최정예 멤버를 구성하지 않으면 국제 무대에서 쉽지 않을 듯하다”고 내다봤다. 세계 야구 순위에서 한국은 3위, 한국에 일격을 가한 이스라엘은 41위다.
상대 전력 분석이 미흡했다는 점도 지적됐다. 송재우 <엠비시스포츠> 해설위원은 “준비가 완료된 상황에서 비교한다면 한국 선수들과 1라운드에서 맞붙은 선수들 간의 실력 차이는 거의 없었다. 다만 네덜란드와 이스라엘은 상대에 대한 전력 분석을 철저히 해 왔는데 우리는 상대적으로 그러지 못했다”고 곱씹었다. 이 해설위원은 “첫 경기 때 이스라엘이 초반 만만찮은 전력을 보이니까 대표팀이 당황했던 것 같다. 이스라엘은 경기를 치를수록 의욕이 살아났고 한국은 더 긴장했다”고 분석했다. 한국은 대회에 앞서 전·현직 메이저리거가 대거 포함된 네덜란드만 경계했을 뿐 이스라엘, 대만은 한 수 아래로 평가했다.
대표팀 선수들의 컨디션이 예상외로 좋지 않았다는 점도 패착으로 꼽혔다. 안 해설위원은 “프리미어12(2015년 11월)는 시즌을 마친 뒤 대회가 열렸으나 이번 대회는 봄에 시작했다”며 “연습도 2월1일부터 시작해 한 달밖에 시간이 없었다. 몸이 충분히 만들어지지 않았던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고 했다. 송 해설위원은 “한두명의 문제가 아니라 선수들 전체가 몸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며 “투수들만 봐도 오승환을 제외하고 대부분 자신의 구속보다 5㎞가량 떨어진 모습이었다. 속구에 자신이 없어서 변화구 승부를 고집하다 위기를 만들었다”고 돌아봤다. 막힌 타선을 뚫어줄 해결사와 강력한 선발 투수가 없었다는 점도 ‘고척돔 참사’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벤치 작전 부재의 아쉬움을 드러낸 전문가도 꽤 있었다. 박재홍 <엠비시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이스라엘전 5회 무사 1·2루에서 이용규가 삼진아웃 된 것이 가장 아쉬웠다”며 “이용규가 좌타자라는 점을 고려하면 3루수의 움직임을 보고 번트 동작을 하다가 수비수의 움직임에 맞춰 강공 전환 등의 작전이 나왔다면 어땠을까 싶다”고 했다. 그는 이어 “단기전인데 선수에게 너무 맡겼다. 선수가 망설일 때 코칭스태프가 정확한 결단을 내려줬어야 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세계야구클래식 부진이 한국 야구에 미칠 파장을 우려하기도 했다. 송 해설위원은 “한국에서 홈런 30~40개를 쳐도 인정받지 못하는 등 한국 리그가 거품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외부에서 한국 야구를 평가절하하는 시각이 생겨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를 참관중인 허구연 <문화방송> 해설위원은 “미국에서도 한국의 부진을 아주 의외라고 생각하고 있다. 대안 제시, 대책 마련에 야구계가 진심으로 고민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김양희 권승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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