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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마크’로 속죄의 기회를 준다고요?

등록 2017-01-04 17:37수정 2017-01-04 21:11

[김양희 기자의 맛있는 야구] 오승환 WBC 대표팀 발탁 여부 논란
김인식 세계야구클래식(WBC) 대표팀 감독이 4일 오전 서울 강남구 도곡동 한국야구회관에서 열린 기술위원회에서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김인식 세계야구클래식(WBC) 대표팀 감독이 4일 오전 서울 강남구 도곡동 한국야구회관에서 열린 기술위원회에서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 “야구로 보답하겠다.”

음주운전 사고 은폐 의혹을 받고 있는 강정호(피츠버그 파이리츠)가 지난해 말 경찰 조사를 받고 나오면서 한 말이다. 여차하면 인명 사고가 날 수도 있는 음주운전이었다. 게다가 운전자를 바꾸는 은폐 시도까지 있었다. 그런데 야구로 속죄하겠다고?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이 반성의 기간도 없이 “연기(혹은 개그)로 보답하겠다”거나, 구설에 오른 정치인이 “정치로 보답하겠다”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늦었지만 차라리 “오프시즌 동안 사회봉사로 자성의 시간을 갖겠다”는 식으로 말했다면 진정성 있어 보였을 것이다.

# “야구로 속죄할 기회를 주고 싶다.”

2017 세계야구클래식(WBC) 대표팀 사령탑인 김인식 감독이 오승환(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 대해서 하는 얘기다. “오승환이 대표팀에서 뛰고 싶어 한다”는 이유를 대지만, 수술 등으로 대표팀 이탈 선수가 많아지면서 선수 한 명이 아쉬운 김 감독이 더 절실하게 오승환을 원하고 있는 듯하다. 김 감독은 4일 기술위원회를 마친 뒤 강정호를 최종 명단에서 제외하면서 “오승환이 필요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해외 원정도박 물의를 일으킨 오승환은 지난해 1월 단순도박 혐의에서 인정되는 법정 최고형인 벌금 1000만원을 선고받았다. 더불어 한국야구위원회(KBO)는 ‘국내 리그 복귀 시’의 단서를 달아 정규시즌 경기 50%에 대한 출장정지 징계를 내렸다. 오승환과 같은 처벌을 받은 임창용은 삼성에서 방출된 뒤 기아에 입단해 리그 징계가 끝난 뒤 경기에 정상적으로 출전했다. 임창용은 세계야구클래식 최종 명단에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오승환은 해외 리그에서 뛰는 탓에 징계를 소화할 수 없었고 징계는 아직도 유효하다.

문제는 ‘출장정지’ 징계에 대표팀 경기가 포함되느냐의 여부인데 이에 대한 별도 조항이 야구위 규약에는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지 않다.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선수는 특정 기간 대표팀에 발탁될 수 없다’는 세부 조항이 있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야구위는 안일했고 지금도 오승환을 둘러싼 소모적인 논쟁을 그저 방관만 하고 있다. 별도 조항이 생기지 않는다면 징계 미이행 상태인 오승환은 앞으로도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는 한 대표팀 명단 구성 때마다 입길에 오를 것이다. 리그 명예를 실추한 선수에게 대표팀 태극마크로 면죄부를 준다는 것 자체도 난센스다. 일평생 ‘국가대표’를 목표로 매일같이 운동장에서 땀 흘리는 여타 아마추어 선수들에게 부끄럽지도 않은가. ‘국가대표’라는 무게감이 그저 병역특례의 수단으로만 인지된다면 더 이상 할 말은 없다. 참고로 오승환에 대한 법원 약식 판결이 내려진 지는 아직 1년도 채 지나지 않았다.

“야구로 보답하겠다”, “야구로 속죄할 기회를 주겠다”는 말 속에는 성적 지상주의가 짙게 깔려 있다. ‘어떤 일을 했든, 원칙이 어떻든 야구만 잘하면 되지 않느냐’는 인식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야구팬들에 대한 모독이고 팬들에게 용서를 강요하는 것밖에 안 된다. 그리고 원칙까지 깨가면서 성적을 내겠다는 것은 구시대적 발상이다. 원칙에 예외를 두는 순간 리그의 근간은 흔들린다. 특정 선수 때문에 박수 받아 마땅할 대표팀 코칭스태프와 나머지 선수들이 곤혹스러울 수도 있다. 지금은 오승환 발탁 여부를 고민할 것이 아니라 오승환을 대체할 국가대표 마무리 투수를 고민하는 게 더 생산적인 게 아닐까.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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