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투저의 한 원인으로 좁은 스트라이크존이 꼽히는데 중계 방송사의 스트라이크 존 표시(오른쪽 아래 부분)가 이를 부추긴다는 의견이 있다. YTN 화면 갈무리
3할 타자만 40명이다. 3점대 이하의 평균자책점 투수는 단 1명(두산 더스틴 니퍼트·2.95)밖에 없었다. 2014 시즌부터 이어온 케이비오(KBO)리그 타고투저 현상은 2016 시즌 정점을 찍었다. 10개 구단 감독들은 “안 아픈 투수가 없다”며 하소연한다. “타자들의 기술이 계속 발전하는 반면, 투수들의 성장은 더디다”는 게 가장 큰 이유로 꼽히는데 스스로 조정 능력을 상실했다면 제도적인 개입이 불가피하다. “스트라이크존이 한·미·일 통틀어 가장 좁다”는 투수코치들의 한탄이 나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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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화되는 타고투저 올 시즌 규정 타석을 채운 선수 55명 중 72.7%인 40명이 3할 이상의 타율을 기록했다. 정규리그 및 한국시리즈를 제패한 두산은 규정 타석을 채운 8명 중 6명이 3할대 타율을 채웠다. 부상으로 풀시즌을 소화하지 못한 포수 양의지까지 포함하면 선발라인업 9명 중 7명이 3할대 타자다. 올해 50타석 이상 타석에 들어선 선수로 접근해보면 총 61명(전체 182명)이나 3할대 타율을 기록했다. 3할 타자가 그만큼 흔해졌다.
외국인타자가 재영입된 2014년부터 올해까지 리그 전체 타율은 3년 연속 0.280 이상을 기록했다. 올 시즌에는 타율 0.290으로 역대 최고 타율을 보였다. 반면 평균자책점은 3년 동안 4.50을 계속 넘었다. 정금조 한국야구위원회 육성운영부장은 “프로 원년(1982년)부터 시작해서 3년 연속 평균자책점이 4.50을 넘은 것은 한번 정도뿐(1999~2001년)이었다. 이 기준으로 보면 타고투저가 맞다”고 했다. 평균자책점이 처음 4.50을 넘은 해는 1999년이었다. 외국인선수 제도 도입 이듬해로 당시 구단들은 외국인타자 영입의 중요성을 절감하며 수준급 외국인타자를 영입했었다. 2014년 분위기와 비슷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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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질 곳 없는 스트라이크존 각 구단 투수코치들은 좁디좁은 스트라이크존을 타고투저의 한 원인으로 지목한다. 좌우, 상하 폭이 모두 좁다보니 투수들이 투구수가 늘어나거나 공이 한복판으로 몰리는 실투가 되기 십상이다. 타자들도 이를 알기 때문에 웬만한 공에는 방망이를 휘두르지 않고 참고 기다렸다. 올해 의외의 성적(정규리그 3위)을 낸 넥센의 경우 이를 역이용해 득을 봤는데 염경엽 전 넥센 감독은 시즌 중 “투수들에게 처음부터 볼카운트 ‘3(볼)-0(스트라이크)’이라고 생각하고 공을 던지라고 했다. 공격적인 투구가 성공했다”고 밝힌 바 있다.
심판들은 “방송사가 야구 중계 때 사용하는 에스(S)존 등의 영향으로 스트라이크 존이 갈수록 좁아졌다”고 한목소리를 낸다. 자칫 여론재판을 받을 수 있어 스트라이크, 볼 판정이 애매할 경우에는 ‘볼’을 선언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현장에서는 막내구단 케이티(kt)가 1군에 합류한 2015년부터 하루 5경기가 열려 경험이 많지 않은 2군 심판들이 주심을 보다보니 스트라이크존이 더 좁아졌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한 감독은 “1군 리그 1~2년차 심판진 중 한 명이 주심을 보면 ‘오늘은 4시간 경기하겠구나’ 미리 생각한다. 볼넷이 기본 10개씩 나온다”고 토로했다. 아무래도 어린 심판들은 방송사가 내보내는 스트라이크존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 야구위도 이를 인지해 파울, 안타, 땅볼 등 타격 완료 시에만 화면에 스트라이크존을 보여줄 것을 중계 방송사에 건의하는 방안을 고려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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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터미팅 때 해결 방안 나올까 2017 세계야구클래식(WBC) 사령탑인 김인식 감독은 “대표팀으로 뽑을 투수가 없다”고 말한다. 더블유에이아르(WAR·Wins Above Replacement) 지표(스포츠투아이 기준)를 봐도 올해 투수 상위 10걸 안에 드는 토종 투수는 3명밖에 없다. 현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 한 야구가 올림픽 종목으로 부활하는 2020 도쿄올림픽 때도 사정은 비슷할 것으로 전망된다. 투수 품귀 현상으로 외국인투수 몸값이 적정가보다 20만~30만달러 이상 뛰는 현상마저 빚어지고 있다. 마운드를 높이거나 스트라이크존을 넓히는 등의 제도적 개입이 필요한 이유다.
한 현장 감독은 “마운드를 높이는 것도 한 방안이 될 수 있지만 스트라이크존이 지금과 같다면 별 소용이 없을 것이다. 작년부터 감독자회의에서 계속 스트라이크존 확대 논의를 해왔는데 시즌이 시작되고는 흐지부지됐다”며 “신인 투수들의 성장이 더딘 것은 선수 개인의 능력 저하도 있으나 자신감 문제도 있다. 좁은 스트라이크존에 기 죽어서 던질 곳도 없고 계속 얻어맞기만 하다보니 투구 밸런스까지 흐트러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 구단 아마추어 스카우트는 “현재 고등학교 1, 2학년 선수들 중에는 시속 150㎞ 이상을 던지는 수준급 투수들이 십여명쯤 있다. 이들이 프로에 와서 정상적으로 뿌리를 내리려면 현재의 환경에서 반드시 변화가 있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야구위는 14~15일(더케이호텔서울 컨벤션센터) 이틀 동안 열리는 윈터미팅을 통해 타고투저 현상 분석과 해결 방안을 논의한다. 올해는 과연 고개 숙인 투수들의 기를 살릴 수 있는 해결책이 나올지 지켜볼 일이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