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투수 한 명을 계속 보고 있었는데 메이저리그 구단에서 (보류를) 안 풀어준다고 했다. 그래서 2순위 외국인선수와 접촉하고 있는데, 해당 구단이 마음을 바꿨고 그 사이 다른 국내 구단이 접근해서 계약해 버렸다.”
외국인투수 최고 몸값(190만달러)을 기록했던 한화 에스밀 로저스. 그는 팔꿈치 인대 수술로 6월24일 중도 퇴출됐으나 190만달러 연봉은 다 받았다. 한화 이글스 제공
한 수도권 구단 감독의 한숨이다. 놓친 외국인투수에 대한 짙은 아쉬움이 묻어난다. 프로야구 오프시즌 ‘쩐의 전쟁’은 자유계약(FA)에만 있지 않다. 외국인선수 영입 전쟁도 ‘헬게이트’가 열린 지 오래다. 2014년 외국인선수 연봉상한제(30만달러)마저 풀리면서 브레이크 또한 없어졌다. 가뜩이나 올해 외국인투수 활약 유무에 따라 포스트시즌 진출이 결정되다 보니 구단들의 씀씀이가 더욱 커졌다. 메이저리그 구단들과 에이전트가 이런 국내 사정을 집요하게 파고들면서 한국 프로야구 시장은 ‘봉’이 됐다.
2016 시즌 10개 구단은 외국인선수 계약금 및 연봉으로 총 41명에게 2884만달러(337억원·KBO 등록기준)를 썼다. 한화가 405만달러로 가장 많은 돈을 썼고, 넥센이 160만달러로 가장 적게 썼다. 외국인선수 농사를 망쳤다는 삼성도 올해 310만달러나 썼다. 2015년(215만달러)보다 오히려 금액은 늘었지만 선수들이 국내 무대에 적응을 하지 못했다. 2016 시즌 전체 외국인선수 평균연봉(계약금 포함)은 70만3415달러(8억2314만원)였다. 작년(56만7683달러)보다 19.3%가 증가했고, 내년에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2884만달러에는 각 구단이 지급한 바이아웃(이적료) 비용이나 기록 관련 옵션은 포함되지 않는다. 주로 트리플A에서 뛰던 선수들은 많게는 연봉의 절반까지도 옵션으로 받는다. 메이저리그 경력이 많은 선수는 옵션보다 보장액이 더 큰 편이다. 젊고 유망한 일부 선수의 경우 40만~50만달러 안팎까지 바이아웃 비용을 메이저리그 구단에 치른다. A선수의 경우 100만달러에 가까운 바이아웃 비용이 발생했다는 설도 있다.
바이아웃 비용을 댔다고 해당 외국인선수 보유권이 국내 구단에 있는 것은 아니다. 1년 뒤 선수가 미국이나 일본 구단으로 이적할 때 국내 구단은 단 한 푼도 받을 수 없다. 가뜩이나 영입되는 외국인선수 연령이 1988~90년대생으로 낮춰지는 상황에서 국내 구단은 외국인선수의 자유로운 이적까지 책임져주는 꼴이다. ㄱ 스카우트는 “바이아웃 비용이 점점 많아지다 보니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직접 국내 구단을 상대로 선수 세일즈에 나서는 경우도 있다. 일부러 선수를 40인 로스터로 묶어 바이아웃 비용을 받는다”며 “바이아웃이 메이저리그 구단들의 또다른 수익원이 됐다”고 한탄했다. ㄴ 스카우트는 “괜찮은 투수가 마이너리그에서 던질 때 한국, 일본 스카우트들이 대거 몰리는데 요즘에는 일본 스카우트들이 한국 스카우트가 나타나면 굉장히 힘들어한다”며 “이제는 돈 경쟁에서 일본이 한국에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안다”고 했다.
일본은 검증되지 않은 외국인선수들에게는 첫해 연봉을 많이 주지 않는다. 1~2년 일본 무대에서 검증이 끝난 뒤에야 연봉을 올려준다. 하지만 한국은 검증되지 않은 외국인선수라도 메이저리그 경력이나 이름값이 있으면 기본 100만달러를 안겨준다. ‘묻지마 투자’가 반복된다고 하겠다. 한 야구계 관계자는 “A급 자유계약(FA) 선수들의 몸값이 연 20억~25억원을 호가하는 상황에서 외국인선수에게 투자되는 연 10억~20억 손실은 구단들이 기꺼이 감수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스카우트들은 외국인선수 몸값 폭등이 몇년간 지속된 타고투저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실제 외국인타자에 비해 외국인투수 몸값이 올랐고, 영입 수준 또한 올라갔다. 웬만한 외국인투수들이 국내 타자들의 공격력을 못 당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미국야구도 투수 기근에 시달리고 있어 지금은 부르는 게 값인 시대가 됐다. ㄷ 스카우트는 “어차피 각 구단이 갖고 있는 외국인선수 목록은 비슷하다. 복수의 구단이 한 선수에 달려들 경우 연봉이 10만~20만달러는 금방 오르는데 이럴 경우 에이전트들이 정보를 공유하면서 다른 외국인선수들의 몸값도 덩달아 오르게 된다. 진짜 죽을 맛”이라고 했다.
‘봉’이 된 외국인선수 시장 현실에 일본처럼 육성형 외국인선수 제도나 프로농구·프로배구와 같은 트라이아웃 실시에 대한 목소리도 나오지만 회의적인 반응이 많다. 육성형 외국인선수 제도를 운영한다고 해도 즉시전력감을 원하는 구단들의 투자액만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한다. 트라이아웃을 하기에는 국내 야구 수준이 너무 올라 “외국인선수가 벤치에 앉아 있을 것”이라고까지 전망한다.
정금조 야구위 육성운영부장은 “육성형 외국인선수 제도나 트라이아웃 실시, 그리고 연봉 70만달러 상한제까지 얘기가 나오고 있으나 구단들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여러 각도로 접근해봐도 현 상황을 벗어날 방법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ㄱ 스카우트는 “외국인선수 영입할 돈으로 차라리 시설이나 트레이닝 시스템에 투자하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며 “구단들 스스로가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모색하지 않으면 한국 야구는 계속 ‘봉’이 될 것”이라고 했다.
김양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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