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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의 교과서’가 묻는다…당신은 프로입니까

등록 2016-09-02 19:16수정 2016-09-02 19:42

[토요판] 김양희의 야구광
롯데 자이언츠 타격 코치 훌리오 프랑코
훌리오 프랑코 롯데 자이언츠 타격 코치는 2008년 멕시칸리그를 끝으로 은퇴한 뒤 잠시 뉴욕 메츠 산하 마이너리그 팀 감독(2009년)을 맡기도 했으나 선수로서의 갈증이 너무 커서 2014년 미국 독립리그 팀(포트워스 캐츠)과 계약해 7경기를 ‘선수’로 뛰기도 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훌리오 프랑코 롯데 자이언츠 타격 코치는 2008년 멕시칸리그를 끝으로 은퇴한 뒤 잠시 뉴욕 메츠 산하 마이너리그 팀 감독(2009년)을 맡기도 했으나 선수로서의 갈증이 너무 커서 2014년 미국 독립리그 팀(포트워스 캐츠)과 계약해 7경기를 ‘선수’로 뛰기도 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똘배!”

지난달 20일 부산 사직구장. 멀리서 누군가 정경배 에스케이(SK) 와이번스 타격 코치를 불렀다. ‘똘배’는 선수 때부터 불린 그의 별칭이다. 뒤를 돌아봤을 때, 머리는 희끗희끗하지만 온몸의 근육은 아직도 울퉁불퉁한 ‘그’가 서 있었다. 정 코치는 “같은 팀(삼성 라이온즈)에 있던 게 16년 전인데 아직까지 내 별명을 기억하고 있는 게 놀라웠다”며 웃었다. 그리고 “그때(2000년) 그는 완전 획기적인 선수였다”고 돌아봤다.

훌리오 프랑코 롯데 자이언츠 타격 코치. 2000년 삼성 라이온즈 시절 1961년생(당시에도 ‘프랑코가 나이를 속인 것 같다’고 쑥덕이는 야구 관계자가 많았다)이라고 했으나 그에게 직접 확인한 실제 출생연도는 1958년이다. 메이저리그(MLB) 공식 누리집 등에도 프랑코 코치의 생년월일은 ‘1958년 8월23일’이라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한국야구위원회(KBO) 공식 누리집에 등록된 그의 생년월일은 1961년생. 야구위에서 공식 확인한 결과 그의 여권에는 1961년생으로 표기돼 있다. 사실, 도미니카공화국 출신 선수들의 진짜 나이는 ‘비밀’에 가깝다. ‘야구광’은 그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메이저리그 기준(1958년생)으로 한다.

메이저리그 통산타율 0.298

프랑코 코치는 삼성 시절 42살의 나이에 한 경기를 빼고 전 경기에 출장(132경기)해 타율 0.327(477타수 156안타), 22홈런 110타점을 기록했다. 프랑코 코치가 세운 삼성 외국인선수 최다 타점 기록은 지난해(야마이코 나바로)에야 비로소 깨졌다. 이승엽(삼성)조차도 “내가 지금까지 현역 생활을 이어가는 데 큰 영향을 준 사람”이라고 말하는 프랑코 코치. 그는 왜, 그리고 어떻게 ‘자기 관리의 교과서’로 불리게 됐을까. 그리고 지도자로 한국 야구에 돌아온 그는 선수들에게 무슨 말을 해주고 싶을까.

프랑코 코치와 같은 도미니카공화국 출신의 선수들은 그에 대해 “메이저리그에서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한 레전드급 선수”(한화 이글스 윌린 로사리오)라거나 “도미니카에서 굉장히 유명한 선수 중 한 명에 속할 정도로 훌륭한 선수”(LG 트윈스 루이스 히메네스)라고 표현한다. 도미니카에서 프랑코 코치와 10분 거리에 살았다는 헥터 고메즈(SK 와이번스)는 “프랑코 코치는 믿기 힘들 정도로 훌륭한 사람”이라며 “모두가 그를 존중하며 그 또한 모두를 존중한다. 자기 주변 사람들과 어린이를 챙길 줄 아는 사람이고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만한 훌륭한 야구 선수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1999년 말 프랑코를 영입했던 이문한 전 삼성·롯데 운영팀장은 “애리조나 스프링캠프 때는 마이너리그 선수들이 삼성 캠프로 프랑코를 찾아와서 타격 기술 등을 전수해 달라고 줄을 섰다. 당시 삼성 코치들도 있어서 프랑코는 화장실 뒤쪽으로 가서 도미니카 출신 야구 후배들에게 자신의 타격 기술 등을 가르쳐줬다”고 회상했다. 그만큼 프랑코 코치는 도미니카공화국 출신의 야구 선수로 메이저리그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프랑코 코치는 일단 도미니카공화국 출신 선수들 중 메이저리그 최다 시즌(23시즌), 최다 경기(2527경기), 최다 타석(9731타석)에 출장했다. 2011년 블라디미르 게레로(2590개)에 의해 깨질 때까지 도미니카 출신 선수 통산 최다 안타 기록(2586개)도 보유 중이었다. 1991년 아메리칸리그 타격 1위(0.341), 최다 안타 1위(201개)에 올랐고,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에도 3차례 출전해 최우수선수(MVP)에 뽑힌 적도 있다. 1978년 20살에 마이너리그 루키리그를 통해 미국 야구에 데뷔한 뒤 메이저리그(2586개), 마이너리그(618개), 멕시칸리그(316개), 일본프로야구(286개), 도미니카 윈터리그(267개), 케이비오(KBO)리그(156개) 등에서 프로 26년 동안 4000개가 넘는 안타(4279개)를 때려내기도 했다. 멕시칸리그에서는 1999년(0.423)과 2000년(0.437)에 4할 이상의 타율을 기록했다. 2007 시즌까지 메이저리그 구단에 몸담으며 그는 메이저리그 최고령 만루홈런 기록(2005년·47살)도 세웠다. 최고령 홈런 기록(2007년·48살254일) 또한 그가 보유 중이다. 2006년 9월에는 나이가 무색(당시 만 47살)하게 한 경기에서 5타점을 쓸어담기도 했다. 메이저리그 통산 타율은 3할에 약간 못 미치는 0.298.

메이저리그 23시즌 동안 가장 기뻤던 경기는 1990년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이었다. 당시 웨이드 보그스, 호세 칸세코, 켄 그리피 주니어, 마크 맥과이어, 리키 헨더슨 등과 함께 아메리칸리그 올스타로 출전해 7회 신시내티 레즈 소속의 롭 디블의 101마일(162.61㎞) 속구를 받아쳐 2타점 우중간 2루타를 때려냈다. 0-0의 균형을 깨는 안타로 당시 유일한 타점 기록으로 그는 최우수선수에 뽑혔다. 프랑코 코치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어머니가 직접 경기장을 찾아 관전했던 경기라서 더욱 뜻깊었다”고 회상했다. 타격왕(1991년)에 오른 다음해 무릎 부상으로 35경기에밖에 출장하지 못한 것은 두고두고 아쉽다. 일련의 경험들 때문에 부상 방지를 위해 몸 관리에 더욱 신경을 쓰게 됐다.

미국·일본·한국 프로야구 두루 섭렵

프랑코 코치는 2008년 멕시칸리그를 끝으로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 뒤 잠시 뉴욕 메츠 산하 마이너리그팀 감독(2009년)을 맡기도 했으나 선수로서의 갈증이 너무 커서 2014년 5월, 미국 독립리그 팀(포트워스 캐츠)과 계약해 7경기를 ‘선수’로 뛰었다. 5년 공백에도 그는 복귀 첫 경기에서 3타수 1안타 1볼넷 1득점의 성적을 올렸다. 7경기 성적은 22타수 6안타(0.222). 작년에는 일본 독립리그 이시카와 밀리언 스타스의 감독 겸 선수로 뛰었다. 그의 나이 57살이었다. 성적은? 14경기에 출전해 타율 0.333, 4타점 6득점을 기록했다. “50살까지 야구를 하겠다”는 일본인 타자 스즈키 이치로(마이애미 말린스)의 말에 프랑코 코치가 “일본, 미국에서 봤던 이치로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며 고개를 끄덕이는 이유라고 하겠다.

푸에르토리코 출신으로 메이저리그 타격왕에 4차례나 올랐던 로베르토 클레멘테를 우상으로 삼아 야구를 하면서(사실 그는 농구선수가 되고 싶었지만 주변에서 야구만 해서 야구선수가 됐다) 그는 미국, 일본, 한국 프로야구를 두루 섭렵했다.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상태에서 미국에 홀로 건너가 마이너리그 생활을 할 때는 몇 개월 동안 향수병에 걸려 있기도 했다. 프랑코 코치는 “당시 너무 외로워서 집에 가고만 싶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그러셨다. ‘네가 선택한 일이니 중도에 포기하지 마라’라고. 어머니가 동기 부여를 많이 해줬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에서 첫 목표는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는 것이었다. 필라델피아 필리스 소속으로 빅리그에 데뷔(1982년 4월23일)한 뒤에는 ‘10년만 꾸준히 하자’ 싶었다. 그리고 10년이 흘렀을 때는 ‘5년만 더’를 생각했다”고 돌아봤다. 1995년과 1998년에는 일본프로리그(지바 롯데 마린스)도 경험했다. 프랑코 코치가 말하는 한국, 미국, 일본 야구의 차이점은 ‘열정’이다. “예를 들어 주자 1·3루 때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악착같이 점수를 내기 위해서 2루에서 주저 없이 슬라이딩을 한다. 하지만 한국이나 일본 선수들은 서서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외야 수비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펜스에 부딪히는 것을 꺼려하는 모습이 보일 때가 종종 있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한 경기에 모든 열정을 쏟아붓는다.”

메이저리그에서 49살 가까이 현역으로 뛰고, 57살의 나이에도 타석에서 20대 투수를 상대로 안타를 기록할 수 있던 데 대해 프랑코 코치는 “그저 신이 나에게 야구재능을 선물(gift)로 줬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를 곁에서 지켜본 사람들은 그의 철저한 자기관리에 혀를 내두른다. 선수 시절 삼성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신동주 현 삼성 코치는 “당시 한국 선수들은 웨이트트레이닝을 잘 안할 때였는데 프랑코는 체계적으로 진짜 열심히 했다. 한국 선수들은 경기 전에만 웨이트트레이닝을 했는데 프랑코는 경기 뒤에도 했다. 아주 생소했는데 일종의 회복 운동이었던 셈”이라며 “그는 경기에 맞는 몸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사고방식이 진짜 프로였다”고 했다. 정경배 코치 또한 “당시에는 다친다고 오히려 웨이트트레이닝을 말릴 때였고 선수들도 형식적으로만 할 때였다. 그런데 프랑코는 언제 웨이트트레이닝을 해야 하는지, 1주일에 적어도 몇 번은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며 “예를 들어 프랑코는 캠프와 봄 때 웨이트트레이닝을 미리 해놓으라고 조언했는데 그 이유가 ‘여름이 되면 투수들의 구속이 2~3㎞ 떨어지는데 웨이트트레이닝을 열심히 해놓으면 이런 투수들을 상대로 타율을 올리기 쉽다’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웨이트트레이닝뿐만이 아니다. 프랑코 코치는 식사나 생활 습관도 엄격히 관리했다. 정경배 코치는 “프랑코는 운동하는 것부터 먹는 것, 자는 것 전부 온 생활이 야구에 맞춰져 있었다. 하루는 김치찌개를 먹는데 ‘그것 먹지 말고 고기를 먹으라’고 타박까지 했다. 간식은 무조건 닭가슴살이었고 경기가 끝나면 꼭 스테이크 등 고기를 먹었는데 저녁값이 당시에 매일 10만원 이상 나온 걸로 안다”고 했다. 당시 삼성 선수들이나 관계자들이 지켜본 프랑코의 식단은 아침식사로 달걀흰자로만 만든 팬케이크 5~10장(달걀노른자에는 콜레스테롤이 많다고 안 먹었다)을 먹고 탄산음료나 스포츠음료, 그리고 찬 음료는 절대 마시지 않았다. 단백질 보충제 또한 자다가도 일어나서 꼭 챙겨 먹었다. 매 끼니 정확했고 잠자는 시간도 일정했다. 진짜 ‘프로의 생활’이었다.

훌리오 프랑코 코치가 잠실야구장에서 두산과의 경기를 앞두고 롯데 선수들에게 직접 배팅볼을 던져주며 타격 훈련을 시키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훌리오 프랑코 코치가 잠실야구장에서 두산과의 경기를 앞두고 롯데 선수들에게 직접 배팅볼을 던져주며 타격 훈련을 시키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몸은 최고의 투자 가치가 있다”

프랑코 코치는 지금도 “몸은 최고의 투자 가치가 있다”면서 허브차를 마시고 버섯, 하수오, 페루 마카 등 몸에 좋은 음식만 골라 먹는다. 술은 와인 정도만 마신다. 한국 음식으로 가장 좋아하는 것은 삼계탕. “삼계탕이라면 매일 먹을 수도 있다”고까지 말한다. 프랑코 코치는 “야구를 오래 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프로적인 생활을 해야 한다. 적합한 음식과 적합한 운동은 필수”라고 했다. 이문한 전 운영팀장은 “프랑코는 부족한 것이 있으면 항상 운동장에 먼저 나와서 팀 훈련 전에 개인 훈련을 하고는 했다. 메이저리그 생활을 오래 해서 그런지 자기 관리가 철두철미했다”며 “사생활 관리까지 삼성 선수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고 했다. 정 코치는 “프랑코는 옷 입는 것까지 센스가 있었다. ‘프로 선수가 이상하게 입지 말라’고 했다”며 웃었다.

현역 시절 프랑코 코치는 엉덩이는 뒤로 쭉 빼고 방망이를 쥔 채 오른쪽 팔꿈치는 오른쪽 귀 한참 위까지 올리는 이상한 타격폼을 선보였다. 지도자가 된 현재, 그는 타자들에게 어떤 점을 강조하고 있을까. “선수마다 타격 기술은 다 다를 수 있다. 하지만 하체 밸런스를 유지해야 하는 것은 똑같다. 롯데 선수들에게도 하체 이용의 중요성을 계속 강조하고 있다.” 그는 도미니카에 있을 때는 유소년 선수들을 상대로 타격 기술을 가르쳐준다. 이번 겨울에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프랑코 코치가 선수 시절 삼성 선수들에게 강조했던 말을 옮기면 이렇다. “프로 선수라면 한 경기를 뛰기 위해서라도 24시간 야구에 몰두하고 있어야만 한다. 그게 프로야구 선수로서 팬들에게 당연히 보여줘야만 하는 모습이고 프로야구의 가치 또한 높이는 일이다.” 당신은 진짜 프로인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증명했던 프랑코 코치가 지금의 선수들에게 묻고 싶은 말이 아닐까.

※ 훌리오 프랑코 프로필

▶출신: 1958년 8월23일 도미니카 태생

▶프로 경력
-메이저리그(1982~2007년)
23시즌 2527경기 출장, 통산 안타 2586개, 홈런 173개, 타율 0.298
-일본리그(1995·1998년)
2시즌 258경기 출장, 통산 안타 286개, 홈런 28개, 타율 0.298
-한국리그(2000년)
1시즌 132경기 출장, 안타 156개, 홈런 22개, 타율 0.327

▶주요 기록
-3차례 MLB 올스타전 출장(1989~1991년)
-MLB 올스타전 MVP(1990년)
-5차례 MLB 실버슬러거상 수상
-아메리칸리그 타격(0.341)·최다안타(201개) 1위(1991년)

김양희 기자
김양희 기자
▶ 김양희 맨 처음 야구를 좋아했던 이유는 딱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쓴 일기장을 보면 꼭 그날의 야구 스코어가 적혀 있다. 대학교에 진학하면서 제주도에서 서울로 왔을 때도 맨 먼저 가고팠던 곳이 잠실야구장이었다. 혼자서 잠실야구장 구석에 앉아 캔맥주 들이켜면서 경기를 보곤 했다. 지금은 휴일에 아이들과 같이 야구장을 찾고는 한다. 어쩌다 아들 이름을 주인공으로 한 야구 동화도 썼다. ‘김창금의 축구광’과 함께 한달에 한번씩 번갈아 연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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