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희 기자의 맛있는 야구
몇년 지난 일이다. 예비 자유계약(FA) 신분이던 한 선수가 시즌 종료 두달여 전, 소속팀이 아닌 다른 팀과 미리 계약서를 작성했다. 당시로는 상당히 파격적인 액수여서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조건이었다. 시즌 뒤 이 선수의 진로가 국내가 아닌 해외로 바뀌면서 계약은 유야무야됐다. ‘해외 진출 시 예외로 하되 국내 복귀 때 우선협상 팀으로 한다’는 조건을 달았으나 이후 해당 팀의 자금사정이 나빠지면서 계약서는 휴짓조각이 됐다. 사전 접촉(탬퍼링) 금지를 어긴 사례였다.
야구규약 제17장 168조 ①항에는 에프에이 승인 선수는 공시 다음날부터 7일 동안 원 소속구단과 교섭을 하며, ②항에는 원 소속구단과의 교섭기간 동안 원 소속구단 외 모든 구단(외국 프로구단 포함)과 선수계약을 위한 교섭을 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176조에는 이에 대한 징계 조항이 있는데 해당 구단은 계약 무효와 함께 3년간 1차 지명권이 박탈되고, 해당 선수는 당해 연도 에프에이 신청자격이 박탈됨은 물론이고 1년간 임의탈퇴 신분이 된다.
하지만 사전 접촉 금지에 따른 징계가 내려진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심증만 있을 뿐 물증이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구단이 사전 접촉을 하는 상황에서 특정 구단만 제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선수나 해당 구단으로부터 양심고백을 바랄 수도 없다.
대형 선수가 예비 에프에이 자격을 갖추면 야구 판에는 시즌 중반부터 ‘○○○ 선수는 이미 계약을 끝냈다더라’, ‘△△구단이 □□□에게 얼마를 제시했다더라’라는 출처 불명의 소문이 돈다. 해당 선수의 에이전트까지 농간을 부리면 시장은 더욱 ‘깜깜이’가 된다. 우선협상 기간에 앞서 선수를 선점하려는 구단이 복수일 경우 입소문만으로도 계약액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불확실성 속에서 선계약은 이뤄진다. 이런 이유로 일부 선수는 여름께 소속팀이 미리 계약서를 내밀어주기를 원하기도 한다. 실제로 그런 사례가 꽤 있었다. 원 소속팀의 보유권을 인정해주려 만든 우선협상권이지만 오히려 시장의 왜곡만 더욱 부추기는 꼴이다.
지난해 에프에이 시장에는 경기침체를 비웃듯 역대 최고인 761억2000만원이 풀렸다. 해외파 선수, 외국인 선수 몸값에 우선협상 부작용까지 더해진 결과다. 단장단 회의인 실행위에서는 에프에이 우선협상 폐지가 긍정적으로 논의됐다고 한다. 이제 사장단 결단만 남았다. 2016년 첫 이사회(사장단 회의)는 12일 열린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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