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오, 맨~.”

한동안 감탄사만 흘러나왔다. 스스로도 믿기지 않는 표정이었다. 검은 턱수염 사이로 하얀 이가 연신 드러났다. 타석에서 한없이 매서웠던 눈은 감동의 빛을 내뿜었다. 2015년 케이비오(KBO)리그 별 중의 최고 별, 에릭 테임즈(29·NC 다이노스)였다.

테임즈, 외국인 3번째 MVP
박병호에 6표 앞선 50표 획득
“내년엔 50홈런에 도전할 것
50-50 달성? 누가 알겠는가”

24일 서울 양재동 더케이호텔에서 열린 2015 케이비오리그 시상식. 정규리그 4관왕(타율·득점·장타율·출루율) 테임즈는 최우수선수(MVP)로 호명됐다. 유효 99표 중 50표를 획득했다. 리그 사상 최초로 2년 연속 50홈런을 때려낸 박병호(넥센·44표)를 6표 차로 꺾었다. 외국인 선수가 정규리그 최우수선수에 뽑힌 것은 타이론 우즈(OB·1998년), 다니엘 리오스(두산·2007년) 이후 3번째. 트로피와 함께 부상으로 받은 올 뉴 쏘렌토(3700만원 상당) 자동차로 “한국에서 처음 갖는 차다. 마산에서 부산, 서울로 드라이브를 가겠다”고 말하는 그다. 박병호는 지난해 사상 첫 200안타를 때려낸 팀 동료 서건창에게 밀린 데 이어 올해는 리그 최초 ‘40(홈런)-40(도루) 클럽’에 가입한 테임즈에게 밀렸다.

수상을 예상할 만한 성적이었으나 테임즈는 “며칠간 긴장해서 잠을 못 잤다”고 했다. 2010년 미국 마이너리그 더블A 시절 흡족할 만한 성적을 냈으나 시즌 도중(7월) 내려온 트리플A 선수에게 ‘올해의 선수상’을 내줬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테임즈는 “그때 당시 상을 못 받아서 울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기대를 안 하고 있었는데 받게 돼 굉장히 기쁘다”고 했다. 포스트시즌이 끝난 뒤 미국 라스베이거스로 돌아갔던 그는 시상식 참석을 위해 22일 귀국했다.

2014년 프로야구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테임즈는 타율 0.343, 37홈런, 121타점을 올리며 ‘한국형 용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메이저리그 두 시즌(2011~2012년) 동안 성적이 타율 0.250, 21홈런, 62타점에 그쳤지만 한국 무대에서는 펄펄 날았기 때문이다. 올해는 타율 0.381, 47홈런, 140타점, 40도루, 130득점의 성적을 올리면서 엔씨와 계약을 연장(연봉 150만달러)했다.

테임즈는 “미국에서는 단장, 감독, 팬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서 불면증에도 시달렸다. 하지만 한국에 와서 고정적으로 선발로 기용되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고 밝혔다. 팀 동료들도 칭찬할 정도로 연습벌레인 테임즈는 야구장 밖에서도 지역 소외 아동을 돕는 등 모범적인 행실을 보여왔다. 세월호 참사 1주기 때는 자신의 에스엔에스(SNS)에 노란 리본을 달고 추모의 글을 남기기도 했다.

인터뷰 때 간간이 “친구”, “울었다” 등의 한국말을 쓴 테임즈는 “한국어 공부 책 3권을 더 샀다. 이제까지 어린이처럼 단어만 말했는데 이제 문장으로 말하고 싶다”며 “영어와 문법이 달라서 어렵기는 하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아쉽게도 골든글러브 시상식(12월8일) 때는 그를 볼 수 없을 전망이다. “12월에 시즌 동안 못 봤던 라스베이거스 콘서트 관람 예약을 다 했기 때문”이다. 25일 출국하는 테임즈는 “첫해(2014년)에는 30홈런, 올해는 40홈런을 쳤다. 내년에는 최우수선수와 함께 50홈런에 도전하겠다”는 도전 목표를 밝혔다. ‘50(홈런)-50(도루) 클럽’에 대한 그의 답은 “누가 알겠느냐”(Who knows?)였다.

한편 정규리그 부문별 수상도 함께 한 이번 시상식에는 군 훈련소 입소(차우찬), 해외원정도박 파문(임창용, 안지만), 예비군 훈련(조평호) 등으로 일부 선수들이 불참했다. 이들에 대한 대리 수상은 없었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