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삿포로돔 0-5 굴욕의 패배. 설욕의 기회가 일찍 찾아왔다. 장소는 일본 야구의 심장부 도쿄돔이다.

한국은 16일 대만 타이중 인터콘티넨털 구장에서 열린 2015 세계야구소프트연맹(WBSC) 프리미어12 8강전에서 쿠바를 7-2로 꺾고 준결승전에 올랐다. 애초 한국은 타이베이 톈무 구장에서 8강전을 치를 예정이었으나 새벽에 화재가 발생하는 바람에 숙소에서 2시간가량 떨어진 인터콘티넨털 구장에서 쿠바와 맞대결을 벌여야 했다.

아마 야구 최강 쿠바 사냥에는 한국시리즈 우승팀 두산 베어스 선수들이 선봉에 섰다. 한국은 2회초 10명의 타자가 나와 장단 6안타를 집중시키면서 대거 5득점을 뽑았는데 민병헌, 양의지, 김현수(이상 두산)가 빅이닝의 디딤돌을 놨다. 조별예선 5경기 타율이 0.176(17타수 3안타)에 불과했던 박병호가 선두 타자로 나와 좌중간 담장을 직접 맞히는 3루타로 출루하자 민병헌이 중전안타로 박병호를 홈으로 불러들였다. 황재균의 안타로 만든 무사 1·3루에서는 양의지가 좌중간 적시타를 뽑아냈다. 김현수는 2사1루에서 볼넷을 골라 출루해 득점 기회를 이대호에게 연결했다. 양의지는 5-2로 쫓기던 8회초 1사 후 좌월 솔로포를 터뜨리는 등 3타수 3안타 2타점으로 맹활약했다. 김현수 또한 6-2로 앞선 8회초 2사 1·3루에서 적시타를 뿜어내는 등 멀티 히트(2안타)를 기록했다.

민병헌은 수비에서도 대표팀 선발이자 두산 팀 동료인 장원준의 어깨를 가볍게 해줬다. 5회말 무사 1·2루 에르난데스의 우전 안타 때 타구를 잡고 3루로 강하게 공을 뿌려 1루 주자 바스케스를 잡아냈다. 무사 1·3루 상황을 1사 1루로 만드는 총알 송구였다. 마운드에서는 김인식 대표팀 감독의 작두 탄 투수 교체가 8강전에서도 이어졌다. 장원준이 4⅔이닝 4피안타 2볼넷 2실점으로 마운드를 내려온 뒤 심창민, 차우찬, 정대현, 이현승이 이어던지며 추가 실점을 봉쇄했다.

19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리는 준결승전 상대는 이날 푸에르토리코를 9-3으로 꺾은 일본이다. 한국은 지난 8일 일본 삿포로돔에서 열린 일본과의 개막전에서 최고 시속 161㎞의 강속구와 시속 147㎞의 포크볼을 앞세운 ‘괴물’ 오타니 쇼헤이에게 막히면서 0-5, 영봉패를 당한 바 있다. 오타니가 4강전 일본 선발로 등판할 예정이라 오타니 공략이 일본전 최대 난제가 될 전망이다. 또다른 준결승전은 미국-멕시코(20일)의 대결로 펼쳐진다. 미국은 난적 네덜란드를 6-1로 꺾었고, 멕시코는 조별예선(A조)에서 5전 전승을 거둔 캐나다에 4-3 승리를 거두는 파란을 일으켰다. 멕시코의 세계 야구 순위는 12위로, 이번 대회에 참가한 국가들 중 꼴찌다. 한국, 일본, 미국, 멕시코는 모두 B조에 속했던 팀들이다.

한편 대회 주최국이나 다름없는 일본의 이기주의적 경기 일정 편성이 계속 빈축을 사고 있다. 애초 일본은 20일 4강전을 치르기로 돼 있었으나 대회조직위가 전날 일방적으로 19일로 일정을 당겼다. 21일 결승전을 고려해 일본에 휴식을 주기 위한 일정 변경이었다. 대회 후원사가 대부분 일본 기업이기 때문에 일본 쪽 요구를 거부할 수 없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이 탈락했다면 한국의 준결승전은 원래대로 20일 펼쳐질 예정이었다. 한국의 일본 이동 시간도 달라졌다. 김인식 감독은 “8강전에 승리하면 18일 오후(4시)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는 일정이었는데 갑자기 18일 오전(7시30분)으로 당겨졌다. 어떻게 일정이 이렇게 수시로 바뀌느냐”며 “세계야구클래식(WBC) 1회 대회(2006) 때도 이렇지는 않았다”며 졸속행정을 비판했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