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희 기자의 맛있는 야구
시즌초 ‘마리한화’ 열풍 불었지만
불펜진 혹사 논란속 PS진출 실패 그래도 공 하나에 아쉬움 곱씹는
눈빛 달라진 선수들을 보면
패배의식 씻어내 큰 소득 아닐지… 한화의 가을야구가 좌절된 지난 3일, 딸은 그저 “내 팀 졌어?”라고만 묻더군요. 가을야구와 상관없이 ‘독수리’는 그대로니까요. 동생과 후배에게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2015 한화 이글스에서 무엇을 봤느냐”고. 동생은 “시행착오”라고 답하더군요. 이유를 물으니 “5강 못 갔잖아”라고 합니다. 김성근 감독이 6년 동안 5차례나 최하위를 기록한 만년꼴찌 한화를 지휘하게 되면서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랐나 봅니다. 태평양, 쌍방울, 엘지(LG), 에스케이(SK) 어떤 팀이건 김성근 감독이 부임한 첫해에는 모두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았으니까요. 어찌 보면 김 감독에게는 첫 실패가 되겠네요. 한화의 승률(0.472, 68승76패)은 2008년(0.508) 이후 가장 좋았어도 말이죠. 뼛속까지 이글스 팬인 후배는 말하더군요. “올해 적어도 매 경기 쉽게 지진 않을 거란 믿음이 생겼어요. 아무리 지고 있어도 ‘곧 따라잡겠지’ 하는 믿음!” 작년까지 ‘1승’이 아닌 ‘1점’을 응원했던 보살팬이기에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 믿음이 대전구장 역대 최다 관중(65만7348명, 평균 9130명)을 이끌었고 8년 연속 원정 관중 동원 1위였던 ‘전국구 구단’ 기아를 밀어내고 처음으로 원정 관중 수 1위에 오른 디딤돌이 됐겠지요. 더불어 한화의 입장수입(약 76억원, 작년 대비 23억원 증가)은 잠실구장을 홈으로 하는 두산, 엘지 다음으로 가장 많았습니다. ‘마리한화’ 열풍을 설명해주는 지표겠지요. 물론 그 열풍은 감독, 선수, 프런트, 팬이 하나 되어 만든 것이겠고요. 기아 팬인 한 지인은 2015 한화 야구에서 “혹사를 봤다”고 하더군요. 불펜 투수 권혁, 박정진, 송창식이 많은 이닝을 던진 것을 빗댄 것이겠죠. 권혁은 78경기 112이닝 동안 2098개의 공을 던졌고 불혹의 나이인 박정진도 76경기에서 96이닝을 소화했으니까요. 일부 현장 감독들도 고개를 갸우뚱할 정도로 변칙적인 투수 기용도 많았습니다. 혹자는 전반기에 권혁 등의 등판 수를 조절했다면 후반기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라고도 합니다. 후반기에만 한화는 18차례나 역전패(1위)를 당했으니까요. 하지만 야구에 ‘만약’이라는 말은 소용없습니다. 밑바닥에서 몇년을 보낸 팀의 제1과제는 패배의식을 빨리 씻는 것인데 이때 가장 중요한 게 승리이고 4~6점 차이에서도 필승조의 등판은 부득이한 선택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요즘처럼 5~6점이 순식간에 뒤집힐 때는 더욱 그렇겠지요. 역전패가 쌓이고 쌓이면 야수들의 의지마저 꺾여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빚어질 수 있으니까요. 2015 시즌 한화는 시행착오로도, 믿음으로도, 혹사로도 다 설명될 수 있을 겁니다. 그래도 분명한 것은 올 시즌 한화 이글스 선수들의 눈빛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아마추어적인 실수를 남발하면서 ‘프로 맞느냐’는 비아냥에 시달렸지만 올해는 필사적으로 공을 쫓아 몸을 날렸고 프로다운 작전 수행 능력을 보여줬으며 공 하나에 아쉬움을 곱씹을 줄 알았습니다. 5년 연속 정규리그 1위 삼성을 상대로 9개 구단 중 가장 높은 상대 승률(0.625, 10승6패)을 올릴 수 있던 것도 최강팀을 상대로 악착같이 매달렸기 때문이겠죠. 그 과정 속에서 패배의식을 씻고 어느 팀도 만만하게 보지 않는 팀으로 거듭났고요. 김성근 감독은 평소 야구를 ‘물’로 표현하시더군요. 잔잔할 때도, 거친 파도가 몰아칠 때도 있지만 그래도 계속 흘러가는 그런 물. 아마 한화의 올 시즌이 그렇지 않았을까요. 나중에라도 한화 선수들을 만나면 얘기해주고 싶습니다. 올해 참 고생 많았다고, 그리고 올해의 그 눈빛 절대 잊지 말라고.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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