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승왕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두산베어스 유희관 투수가 최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인터뷰]
평균 구속 127km, 국내 ‘최고 완속’…보고도 못쳐
승률 1위, 평균 자책 4위…평균 이닝도 토종 1위
“느린공 투수 편견 깨 뿌듯…국가대표로 뛰고 싶어”
평균 구속 127km, 국내 ‘최고 완속’…보고도 못쳐
승률 1위, 평균 자책 4위…평균 이닝도 토종 1위
“느린공 투수 편견 깨 뿌듯…국가대표로 뛰고 싶어”
최일언 엔시(NC) 다이노스 투수코치가 기억하는 유희관(29·두산)은 이렇다. “유희관이 중앙대 시절에 처음 봤는데 에스케이 2군과 연습경기에서 5회까지 탈삼진 9개를 잡았다. 속구가 132㎞ 정도밖에 안 되는데도 제구가 좋았고 볼 끝에 힘이 있었다. 타이밍 싸움도 잘해서 ‘일본 스타일이구나’ 싶었다.” 그때 그 실력, 프로에서도 통한다. 유희관은 시속 107㎞ 몸 쪽 속구로 스탠딩 삼진을 잡고 시속 104㎞ 바깥쪽 체인지업으로 강타자를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운다. 속구 평균 구속 150㎞의 투수가 부럽지 않다.
올해 28차례 선발 등판에서 유희관은 18승4패 평균자책 3.40의 성적(23일 현재)을 올렸다. 다승 공동 1위, 평균자책 4위의 기록이다. 승률(0.818)은 당당히 1위다. 16일 잠실 롯데전 등판에서 5⅓이닝 9피안타 7실점한 게 못내 아쉽다. 7실점은 시즌 최다 실점이었다. 그래도 22일 사직 롯데전서 6이닝 4실점으로 설욕을 했다. 올해 투구 이닝은 188이닝. 유희관은 10개 구단 투수들 중 유일하게 등판 때마다 항상 5이닝 이상을 책임졌다. 평균 투구이닝이 6⅔이닝으로 토종 투수들 중 가장 많은 이닝 소화력을 보이고 있다. 피안타율(0.286)이 높은 것은 풀어야 할 숙제다.
유희관은 최근 잠실야구장에서 한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두 자릿수 승수만 해도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잘할 줄 몰랐다. ‘5이닝 이상은 무조건 책임지겠다’는 마음으로 마운드에 오르는데 그렇게 되고 있어서 자부심을 느낀다”고 밝혔다. 엔시 외국인 투수 에릭 해커와 벌이는 다승왕 경쟁에 대해서는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 한다는 마음은 있지만 욕심을 내다가 역효과가 날까 두렵기도 하다. 지금은 개인 성적보다 팀이 이기는 게 더 중요하다”라고 했다. 내심 20승, 200이닝 투구도 바라보지만 팀 성적에 따라 유희관은 앞으로 등판 기회가 한 번밖에 없을 수도 있다. 두산이 4위가 될 경우 마지막 등판을 거르고 와일드카드 결정전에 나서야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유희관의 속구 평균 구속은 시속 127㎞다. 국내 풀타임 선발 투수들 중 구속이 가장 느리다. 최저구속(107㎞)과 최고구속(137㎞) 차이는 무려 30㎞가 난다. 같은 속구인데도 구속 차이가 상당하다. 커브의 경우는 93㎞까지 구속이 떨어진다. 같은 투구 폼에서 여러 가지 구질로 구속 차이까지 주면서 타자를 상대하니 타자들이 헷갈리는 것은 당연하다. 유희관은 “최근 상대 타자들이 ‘공이 더 느려졌다’고 하더라”면서 “시즌 막판이어서 체력 싸움 때문에 주자가 없을 때는 공을 더 느리게 던지려고 한다”고 했다. 일견 낮은 듯 하면서도 스트라이크 존에 정확히 꽂히는 제구는 가히 일품이다. “캐치볼 때부터 상대 가슴에 던져주기 위해 노력하면서 훈련할 때 기본기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그의 제구력의 비밀이다.
너무 느린 공 때문에 유희관을 올해 처음 열리는 프리미어 12 대표로 뽑는 데 우려를 표하는 전문가들도 더러 있다. 그러나 토종 투수들 중 가장 많은 승수를 올리는 선수를 국가대표에서 배제하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다. 유희관의 생각은 어떨까. “느린 공으로 국제무대에서 통할지는 나도 궁금하다. 개인적 영광이고 가문의 영광이기 때문에 태극마크는 달고 싶다. 국제 무대 경험을 통해 시야가 넓어지고 배울 것도 많을 것이다. 그래도 예비 엔트리에 든 것만 해도 (빠른 공 투수를 선호하는) 지금의 트렌드에 변화를 준 게 아닌가도 싶다. 빠른 공 투수만 성공할 수 있다는 편견을 깬 것 같아 뿌듯하기도 하다.”
개리 레스가 2004년 작성한 두산 왼손 투수 최다승 기록(17승)을 경신하며 다승왕에도 근접해 있지만 그는 ‘팀 에이스’나 ‘1선발’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저 “선발 5명 중 한 명일뿐”이라고 생각한다. 유희관은 “두산은 내가 나가서 지더라도 다음날 등판하는 투수가 이길 수 있는 팀이다. 그래도 은퇴 시점에는 ‘두산 왼손 투수라면 유희관’이라는 말을 듣고 싶다. 이천 베어스파크에 있는 야구 박물관에 내 유니폼을 거는 것이 내 꿈이었는데 꼭 이뤄졌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밝혔다. ‘느림의 미학’이 뭔지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는 그는 이미 두산 최고 왼손 투수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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