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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야구·MLB

도루왕 디 고든은 왜 선택을 받지 못했나

등록 2015-01-16 15:38수정 2015-01-16 20:32

[토요판] 김양희의 야구광
국내서 뛰는 외국인 선수들
▶ 김양희 맨 처음 야구를 좋아했던 이유는 딱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쓴 일기장을 보면 꼭 그날의 야구 스코어가 적혀 있다. 대학교에 진학하면서 제주도에서 서울로 왔을 때도 맨 먼저 가고팠던 곳이 잠실야구장이었다. 혼자서 잠실야구장 구석에 앉아 캔맥주 들이켜면서 경기를 보곤 했다. 지금은 휴일에 아이들과 같이 야구장을 찾고는 한다. 어쩌다 아들 이름을 주인공으로 한 야구 동화도 썼다. ‘김창금의 축구광’과 함께 한달에 한번씩 번갈아 연재된다.

미국프로야구 엘에이(LA) 다저스 류현진이 등판할 때마다 등 뒤에 서 있던 남자가 있다. 지난해 연말 마이애미 말린스로 트레이드된 2루수 디 고든(27)이다. 고든은 든든한 2루 수비와 빼어난 주루 플레이(도루 64개·1위)를 선보이곤 했다. “고든이 국내에서 뛴다면 도루 80개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하는 야구팬들도 더러 있다. 실제로 고든은 복수의 국내 구단 외국인 선수 영입리스트에 올라 있었다. 하지만 고든의 등급은 ‘A’가 아닌 ‘B’였다. 최우선 영입 대상은 아니었다는 뜻이다.

2012년 도미니카 윈터리그에서 고든을 처음 봤다는 A구단 스카우트는 “당시 고든은 다저스 백업 요원으로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를 오가고 있었는데 발이 빠르고 수비는 잘하는 한국에 없는 외국인 선수 유형이었다. 매력은 있다고 느꼈지만 위험도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B구단 스카우트는 “고든이 지금 리스트에 있다고 해도 뽑지는 않을 것”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국내 프로구단이 원하는 외국인 타자의 기본 전제조건은 ‘파워’(힘)이기 때문이다. 고든이 작년 다저스에서 친 홈런 수는 2개에 불과하다.

외국인 타자의 기본 전제조건은 ‘파워’

삼성의 통합 4연패에 기여한 야마이코 나바로 또한 ‘파워’ 면에서 의구심을 낳으며 영입 당시 코치진이나 팬 반응이 썩 좋지는 않았다. 내야 수비 실력은 둘째 치고 메이저리그 4년 경력 동안 때려낸 홈런이 겨우 2개(79경기)뿐이었다. 마이너리그에서도 20개 이상 홈런을 때려낸 시즌이 없었다. 더군다나 당시 삼성과 재계약을 끝낸 릭 밴덴헐크(현재 일본 소프트뱅크 호크스)가 “(나바로에 대해) 잘 조사해봐라”고 언질을 줄 정도로 성실, 근면성에서 물음표가 붙었다. 하지만 삼성은 나바로와 계약을 했고, 나바로는 정규리그 때 타율 0.308, 31홈런 98타점 25도루를 기록했다.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MVP)로도 뽑혔다.

박재영 삼성 스카우트 2팀장은 “나바로는 활동 무대였던 트리플A 구장이 우타자에게 아주 불리한 구장이었는데도 두자릿수 홈런을 쳐냈다. 당시 윈터리그 홈런왕에도 올라 있었고 삼진/볼넷 비율이 좋아서 포크볼, 체인지업 등 유인구에는 속지 않을 것 같아서 뽑게 됐다”고 했다. 나바로는 삼성 이전에 다른 한국 구단과 인터뷰를 두차례 했지만 “멘탈이나 인성이 우려스럽다”는 이유로 뽑히지 않았다.

지난해 시즌 20승 투수 반열에 오른 앤디 밴헤켄도 메이저리그 경력은 5경기 등판(2002년 디트로이트, 1승3패 평균자책 3.00)에 불과하다. 10년 넘게 마이너리그 더블A와 트리플A를 오가다가 2011년 말 넥센 히어로즈와 계약했고 3시즌 동안 43승24패 평균자책 3.51의 빼어난 성적을 올렸다. 국내 데뷔 첫해 계약금 포함 25만달러였던 그의 ‘몸값’은 올 시즌 80만달러까지 올랐다. B구단 스카우트는 “밴헤켄은 마이너리그와 윈터리그를 전전하며 1년 내내 공을 던지는 생계형 투수였다. 한국에 온 뒤 겨울에는 쉬게 되면서 오히려 구속이 좋아졌다”고 했다.

한국프로야구 외국인선수 시장은 올해 2000만달러(216억원) 시대를 열었지만 투자의 결과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복불복’이다. 스카우트들도 “외국인 선수 성적은 어느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고 말한다. ‘B’ 평가를 받았던 고든이 한국 무대에서 뛰었다면 과연 어떤 성적을 냈을까.

한국프로야구에 외국인 선수가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98년이다. “1995년을 정점으로 관중 수가 줄어들며 침체기에 접어든 국내 프로야구에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고 경기력 향상을 위한 선택”(양해영 한국야구위원회 사무총장)이었다. 제도 도입 뒤 첫 2년간은 현지 트라이아웃으로 외국인 선수를 뽑았다.

98년 첫해에 그라운드를 누빈 외국인 선수 12명 중 메이저리그 경력이 있던 선수는 마이클 앤더슨, 주니어 펠릭스(이상 LG), 에드가 캐세레스(두산), 마이크 부시(한화) 등 4명뿐이었다. 외국인 선수 연봉 상한선이 12만달러(당시 환율로 약 1억6770만원)인 상황에서 가장 몸값이 높은 선수는 51경기 출전, 타율 0.220, 7홈런의 메이저리그 통산 성적을 보유 중이던 부시(총액 11만5000달러)였다.

98년 국내 선수 최고 연봉(양준혁·1억4000만원)과 평균 연봉(3384만원)을 고려하면 몸값에 비례한 기대치는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부시는 국내 투수들의 변화구에 고전하면서 타율 0.213, 10홈런 28타점의 저조한 성적을 남겼다. 오히려 몸값 총액이 외국인 선수 평균치(9만4000달러)였던, 메이저리그에서 뛴 적은 단 한 번도 없던 타이론 우즈(두산)가 ‘검은 돌풍’을 일으키면서 외국인 타자 시대를 활짝 열었다.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42개)을 세우며 정규리그 최우수선수에 뽑히기도 했다. 우즈는 이후 올스타전, 한국시리즈(이상 2001년) 최우수선수에도 뽑혔다. 잠실구장 야구왕 등의 강렬한 인상 때문인지 김성근 한화 감독 등은 우즈를 역대 최고 외국인 타자로 꼽는다.

2000년부터 자율적 영입이 가능해지면서 외국인 선수의 ‘질’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 2000 시즌을 뛴 외국인 선수 28명 중 14명이 메이저리그 경력이 있었다. 우승에 한참 목말랐던 삼성은 아메리칸리그 타격왕(91년·0.341)까지 했던 훌리오 프랑코를 영입했다. 나이(39살)는 많았지만 올스타전 3차례 출전, 실버슬러거상 5차례 수상 등 경력 면에서 최고를 자랑했다. 2000년 당시 프랑코의 연봉은 18만달러로 발표됐으나 이를 믿는 사람들은 드물었다.

외국인 선수 눈높이는 구단들 간의 순위 경쟁과 맞물리면서 더욱 높아져 갔다. 2003 시즌에는 외국인 선수 24명 중 19명이 메이저리그 유경험자들이었다. 남은 5명 중 2명이 일본프로야구 출신의 일본인 선수였다는 것을 고려하면 꽤 높은 수치다. 오히려 마이너리그 더블A(AA)에서만 뛰었던 에밀리아노 기론(99~2001년 롯데·2003년 한화)의 존재가 더 신기해 보인다. 작년에는 9개 구단(KT 제외)에서 영입한 외국인 선수는 모두 34명이었는데 이들 중 찰리 쉬렉(NC) 등을 제외하고 30명이 빅리그 경험이 있다. 표준 계약서상 이들의 평균 몸값은 30만9118달러(계약금 포함)였다. 하지만 이 또한 ‘허수’일 가능성이 짙다. 계약 내용 그대로 발표하는 구단은 거의 없다.

조쉬 린드블럼, 잭 한나한 등
이름있는 선수들 올 시즌 첫선
최고연봉 선수는 더스틴 니퍼트
전체 31명 몸값총액 2053만달러
메이저리그 최저연봉 넘어서

한명당 20만달러서 200만달러까지
투자해도 결과는 장담할 수 없다
루크 스캇, 루이스 히메네스처럼
‘부도수표’가 될 수도, 밴헤켄이나
나바로처럼 ‘로또’가 될 수도

30대 전후 기혼의 쿼드러플A 선수 집중공략

올 시즌에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21번째 퍼펙트게임을 기록(2012년 4월22일)했던 필립 험버(KIA), 빅리그 등판 경험이 110차례나 되는 조쉬 린드블럼(롯데), 3년 동안 추신수(텍사스)와 한솥밥을 먹었던 잭 한나한(LG) 등 ‘이름값’ 있는 외국인 선수들이 국내 무대에 첫선을 보인다. 최고 연봉 선수는 5시즌 연속 두산에서 뛰는 더스틴 니퍼트로, 150만달러를 받는다. 전체 31명 중 50만달러 이상(총액 기준) 받는 선수는 25명이나 된다. 총액은 2053만달러. 평균 연봉(66만2258달러)은 메이저리그 최저연봉(2015 시즌 50만7500달러)을 넘어섰다.

외국인 선수 스카우트 담당자들은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트리플A 선수만 봤는데 이젠 트리플A에만 머물러 있는 선수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요즘에는 트리플A와 메이저리그를 오가는 일명 쿼드러플A(AAAA) 선수가 영입 대상이 되고 있어 덩달아 몸값도 올랐다”고 말한다. B구단 스카우트는 “연봉이 올라가면서 영입 연령층도 점점 낮아지고 있다. 올 시즌이 끝나면 87년생도 충분히 영입 가능하리라고 본다”고 밝혔다.

외국인 선수 영입을 위해 담당 스카우트는 1년에 3~4차례씩 장기 해외출장을 간다. 3월에는 메이저리그 시범경기를, 6~7월에는 트리플A 경기를, 11월에는 도미니카 윈터리그를 지켜본다. A구단 스카우트는 “경기를 직접 보면서 불펜 부근에서 직접 접촉하는 선수도 있고 에이전트의 소개로 만나는 선수도 있다. 외국인 선수를 소개해주는 브로커들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고 했다. 모든 경기를 따라다닐 수는 없어 후보 선수들의 경기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따로 돈을 주고 사기도 한다. 타자들의 경우 삼진/볼넷 비율을, 투수들의 경우는 구속과 구질이 우선 체크 목록이다. 약물, 부상 경력 등의 ‘고급’ 정보는 미국 구단 직원과의 사적인 친분을 이용한다.

스카우트들의 집중 공략 대상은 30대 전후의 결혼을 한 쿼드러플A 선수다. 이들은 주변 여건상 ‘꿈’보다는 ‘현실’을 좇는 경우가 많다. 최근 들어 국내 구단이 제시하는 연봉이 많아지면서 한국행에 호의적인 선수들이 늘어났다.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당시 미국으로 돌아갔다가 귀국하지 않아 물의를 일으켰던 전 요코하마 외국인 선수 브렌트 리치(33)는 한국 스카우트에게 “○○○(외국인 선수)와 아주 친하다. 나도 한국에서 뛰고 싶다”는 전자우편을 보내기도 했다.

최근에는 메이저리그 구단까지 한국 구단을 상대로 한 선수 세일즈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분위기다. 예전과 달리 챙기는 이적료(바이아웃 비용)가 꽤 쏠쏠해졌기 때문이다. 복수의 구단 스카우트 관계자들은 “2013년 말 엔씨가 에릭 테임즈를 영입하면서 휴스턴 애스트로스에 90만달러 안팎의 이적료를 지급했다. 미국 구단들이 이런 정보를 공유하면서 40인 로스터 전후에 낀 선수들에 대한 이적료가 큰 폭으로 올랐다”고 전했다. C구단 스카우트는 “테임즈 이전에는 40인 로스터 안 선수들은 40만~50만달러, 40인 로스터 밖 선수들은 10만달러 이하의 이적료가 오갔다. 하지만 지금은 40인 로스터 밖 선수에게도 상당한 이적료를 지급했다는 소문이 있다. 앤드류 앨버스(한화), 브렛 필(KIA) 등도 70만~80만달러의 이적료를 지불한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그는 이어 “2013년 말 한국행이 점쳐졌던 크리스 콜라벨로도 미네소타 트윈스가 매물로 내놔서 국내 4개 구단이 관심을 보였지만 계약 막판에 선수가 틀었다. 미네소타 이외에도 시카고 화이트삭스, 신시내티 등은 담당자가 선수 영입 의사를 타진하기 위해 메일을 보내온다”고 했다. 일부 선수들은 걸림돌을 없애기 위해 메이저리그 구단들과 계약할 때 ‘아시아 바이아웃 없음’의 단서조항을 붙이기도 한다.

일본보다 더 많은 연봉 주고 쪽박 찰라

외국인 선수 한 명에게 적게는 20만달러, 많게는 200만달러(이적료 포함)까지도 투자하지만 결과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루크 스캇(SK)이나 루이스 히메네스(롯데)처럼 ‘부도수표’가 될 수도, 밴헤켄이나 나바로처럼 ‘로또’가 될 수도 있다. 위험부담을 줄이고자 확실하게 검증된 선수만 영입하려다 보니 시장 규모가 큰 일본보다 연봉을 더 주는 기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A구단 스카우트는 “일본리그에 진출한 첫해 외국인 선수는 보통 4000만~5000만엔을 받는다. 하지만 한국은 과잉 경쟁 속에 100만달러까지 치솟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시장이 비정상적이고 기형적으로 바뀌었다”고 우려했다. 연봉상한제(30만달러)까지 없어지면서 사실상 외국인 선수 몸값을 제어할 장치는 없어졌다.

김양희 기자
김양희 기자
야구계 안팎에서는 외국인 선수 보유 한도를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 심심찮게 흘러나온다. 일본리그처럼 2군 무제한 보유에 1군 4명 등록까지는 아니더라도 5명 보유, 1군 3명 등록만 하더라도 성공 가능성이 반반인 선수에게 과다 투자하는 일은 지양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A구단 스카우트는 “수술 등으로 기회를 박탈당한 20~25살 유망주들을 윈터리그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이들은 월 250만~300만원만 줘도 국내에 올 것이고 1~2년 정도 육성하면 1군 전력감이 될 것”이라고 했다. 외국인 선수 영입을 위해 지난해 11월 도미니카까지 갔던 양상문 엘지 감독은 “현지에 가서 봐도 원하고 필요한 선수는 데려올 수가 없었다. 차라리 2군에 한두명 정도 더 영입해서 천천히 만들면서 써도 비용 면에서나 활용도 면에서 괜찮을 것 같다”고 했다. 김성근 한화 감독 또한 “이제는 일본처럼 제도화해서 육성형 외국인 선수를 데려와야 한다. 더 늦기 전에 머리를 맞대고 상의할 때”라고 밝혔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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