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 최형우 등 삼성 선수들이 지난해 안방에서 열린 2013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두산을 꺾고 사상 첫 3년 연속 통합 우승을 일군 뒤 팀 마스코트인 사자 앞에서 환호하고 있다. 대구/연합뉴스
[뉴스 쏙] 삼성 야구 전성시대, 어떻게 열었나
한국프로야구에는 올해도 사자후가 울려퍼진다. 삼성 라이온즈는 한국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정규리그 4연패를 이뤘다. 여세를 몰아 한국시리즈 4연패까지 할 기세다. 2000년대 삼성도 강했지만 2010년대 삼성은 더 강하다. 그리고 체질 자체가 달라 더 무섭다.
삼성은 한때 ‘돈성’, 혹은 미국프로야구 뉴욕 양키스에 빗대 ‘악의 제국’으로 불렸다. 모그룹의 엄청난 자금력을 앞세워 다른 팀 선수들을 사재기하며 프로야구판을 흔들었다. 90년대 삼성의 ‘선수 구매’ 목록에는 임창용(해태), 김기태, 김현욱(이상 쌍방울) 등이 있었다. 99년 말부터 자유계약(FA) 제도가 시행된 이후에는 더욱 공격적으로 선수들을 끌어모았다. 김동수(LG), 이강철(해태)에게 8억원을 안겨줬고, 2000년 말에는 소속팀 선수 김기태와 18억원에 재계약을 했다. 엘지 소속이던 양준혁에게는 27억2000만원(2001년 말)을, 현대 소속이던 박종호에게는 22억원(2003년 말)을 투자했다.
압권은 2004년 말이었다. 심정수를 60억원(4년), 박진만(이상 현대)을 39억원(4년)에 영입했다. 2004년 삼성 선수단의 연봉 총액(39억3500만원, 외국인선수·신인선수 제외)을 고려하면 입이 쩍 벌어지는 액수였다. 이전까지 에프에이 계약 총액에서 30억원이 넘는 선수는 정수근(롯데·40억6000만원)이 유일했다. 삼성은 코칭스태프가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매물, 즉 레이더망에 걸린 선수를 놓치는 경우가 절대 없었다. 에프에이로 삼성에 이적했던 한 은퇴 선수는 “삼성이 처음 협상 테이블에 앉았을 때 깜짝 놀랄 정도로 거액을 제시했다. 다른 팀에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정말 거부할 수 없는 액수였다”고 했다. 한때 에프에이 선수들의 로망은 삼성의 부름을 받는 것이었다.
삼성의 ‘돈질’은 궁극적으로 우승에 대한 목마름 때문이었다. ‘일등주의’를 부르짖는 삼성 그룹 문화에서 ‘우승 없는 야구단’은 결코 용납될 수 없었다. 우승이 간절할수록 삼성은 더더욱 외부 선수 수급에 매달렸다. 2000년대 이전까지 거듭된 감독 경질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허구연 <문화방송> 해설위원은 “1980~90년대만 해도 삼성은 야구를 제조업처럼 접근했다. 투자를 하면 당연히 그만큼의 결과가 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계속 실패를 했고 프런트와 현장의 골이 깊어지면서 안팎으로 시끄러운 구단이 됐다. 감독·코치의 신분이 바람 앞에 등불이니 선수들도 흔들리는 경향이 많았다”고 꼬집었다.
2004년까지 천문학적 돈 투입
외부선수 영입 우승에만 목매
2000년대 중반 2년 연속 우승 뒤
‘넘버원’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2·3군 선수 육성 등 기본 충실
류중일 ‘엄마 리더십’으로 만개
“삼성 따라잡을 팀, 아직은 없다” 삼성 야구의 기류가 바뀌기 시작한 것은 2000년 신필렬 사장 취임 이후부터다. 삼성의료원 부원장 출신의 신 사장은 ‘귀는 열려 있되 입은 닫는’ 식으로 현장과 거리를 두었다. 설익은 말 한마디가 현장의 자존심을 짓밟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우승 청부사’ 김응용 전 해태 감독을 영입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적어도 당시에는 김응용 감독보다 야구에 대해 더 잘 아는 야구인은 없었다. 신 사장 취임 이후 프런트와 현장의 잡음은 상당 부분 상쇄됐고 2002년 한국시리즈 첫 우승에 이어 2005년 선동열 감독 취임 뒤 연거푸 우승(2005년, 2006년)하면서 ‘넘버원’을 향한 지나친 강박관념도 사라졌다.
우승 갈증이 해소된 이후 삼성은 조급함을 버리고 내부로 눈을 돌렸다. 삼성은 90년대 중반부터 경산볼파크라는 훌륭한 2군 인프라를 갖추고 있었다. 이효봉 <엑스티엠> 해설위원은 “삼성이 우승을 못 했을 때는 우승을 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팀이었다. 하지만 우승을 하고 나서 틀을 갖춘 뒤에는 비싼 자유계약선수를 데려올 필요가 없어졌다. 2005년부터는 실질적으로 내부 선수들로만 운용하며 팀 전력이 두터워졌다”고 했다.
실제로 삼성은 2004년 말 심정수, 박진만과 에프에이 계약을 한 뒤 지금껏 10년 넘게 외부에서 에프에이 선수를 데려온 적이 없다. 거액의 현금 트레이드도 히어로즈에서 왼손 투수 장원삼을 데려온 게 전부다. 당시에는 히어로즈의 ‘선수 팔기’가 한창일 때라 삼성뿐만 아니라 엘지(이택근), 두산(이현승) 등이 현금을 주고 선수를 사갔다. 삼성은 외부 전력 수혈을 줄이면서 내부적으로는 2, 3군을 강화시키는 ‘팜 시스템’(신인을 조직적으로 육성·배출하는 시스템)을 서서히 정착시켜갔다.
김응용 사장-선동열 감독 체제(2005~2010년) 이후 짝꿍이 된 김인 사장-류중일 감독 체제(2011년~현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내부 경쟁 속에서 최형우, 채태인, 박석민, 김상수, 안지만이 컸다. 올해도 이흥련, 박해민 등 신인급 선수가 등장해 제 몫을 해냈다. 진갑용, 최형우, 채태인 등 주전급 선수들이 번갈아가며 다쳤는데도 팀 성적에 변화는 없었다. 한 주전 선수는 “내가 없어도 팀 성적이 떨어질 것 같지 않다.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삼성은 팀 성적에 관계없이 젊은 선수들을 순차적으로 군에 입대시켜 포지션 공백을 최소화했다.
삼성은 올해 비비아크(Baseball Building Ark)를 개관해 육성 시스템을 더욱 체계화했다. 비비아크는 전문적인 맨투맨 지도를 통해 유망주들의 잠재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시스템이다. 비비아크의 목적에 따라 삼성은 현재 1~3군 기술전담코치만 25명을 두고 있다. 다른 구단들의 코치 수는 20명 안팎이다. 1995년 삼성에 입단한 이승엽(38)은 “일본 진출(2003년 말) 전에는 구단이 성적을 내려고 무조건 1군에만 신경쓰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일본에서 돌아와서 보니 2군 어린 선수들에게 투자를 많이 하고 있었다. 팀의 기초가 많이 탄탄해지고 있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허구연 해설위원은 “삼성은 한국에서 팜 시스템을 가장 먼저 완성한 팀으로 스카우트를 잘해오면 전문적인 코칭스태프를 활용해 키워낸다. 기아, 한화 등 다른 팀들이 뒤늦게 2군 전용 경기장을 만들고 있으나 투자 효과가 나오려면 몇 년이 걸릴 것”이라고 했다.
선수들의 인식도 변했다. 이승엽은 “1990년대 후반만 해도 어떻게 해야만 우승을 하는지 몰랐고 우승에 대한 스트레스가 상당했다. 하지만 지금은 언제든지 우승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고 말했다. 삼성 선수 시절(1985~1993년) 한국시리즈 통산 16패의 뼈아픈 경험이 있는 김용국 삼성 수비코치는 “우리 때는 한국시리즈같이 중요한 경기 때 서로 책임을 떠넘기려는 경향이 있었다. 타석에 섰을 때 ‘내가 해결하겠다’거나 ‘뒤 타자한테 기회를 연결해줘야지’가 아니라 그냥 ‘○○○가 해주겠지’ 하는 마음만 강했다. 반면 우리와 맞붙는 해태는 서로 자신이 해결하려고 덤볐다. 결국 집중력의 차이라고 볼 수 있는데 최근 삼성 선수들을 보면 ‘내가 해결해야겠다’는 의지들이 엿보인다. 당시 해태 선수들의 눈빛이 보인다”고 했다. 삼성은 개인 성적에 대한 보상이 확실한 구단이다. 연봉이든 수당이든 어떤 식으로든 결과물에 대한 보상이 따른다. 한 야구단 관계자는 “삼성이 타 구단에 비해 보상이 아주 후한 것은 사실이다. 프로가 곧 실력이고, 실력은 돈이라고 볼 때 확실한 당근책이 되고 있는 셈”이라고 했다.
류중일 감독을 빼고 현재의 삼성을 설명할 수는 없다. 류 감독은 초보답지 않은 리더십으로 삼성을 최강의 반열에 올려놨다. 부임 1~2년 동안은 소통을 강조한 ‘형님 리더십’을 내세웠지만 최근에는 ‘엄마 리더십’으로 바뀌었다. “자식 입장에서 가장 좋으면서도 무서운 존재가 엄마다. 지도자는 이처럼 양면성이 있어야만 한다고 믿기 때문”(류중일 감독)이다. 선수 13년, 코치 11년 등 프로 생활을 오로지 삼성에서만 해오며 구단의 생리를 가장 잘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 제일 큰 장점이다. 김성근 신임 한화 이글스 감독은 “유격수 출신의 감독들은 팀 플레이에 대해 잘 안다. 선수 때 경험이 감독을 해나가면서 도움이 많이 되고 있을 것”이라며 “삼성이라는 브랜드는 우승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무거운 압박감 속에 4년 연속 정규리그 우승을 이끈 것은 대단한 일이다. 선수층 변동이 있고 몇 차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지도자로서 더 성장해가는 게 보인다”고 했다. 김 감독은 이어 “류 감독은 시련을 겪으면서 ‘류중일 야구’를 설계해왔다. 이승엽, 임창용 등 베테랑을 잡으려고 한 게 아니라 조직 속에서 융화되도록 이끈 힘도 높이 살 만하다”고 평가했다.
잘나가는 1위에 대한 거부감은 물론 있다. 나머지 8개 구단과 팬들을 적으로 만든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삼성그룹 자체가 일등주의를 내세운다. 한 전문가는 “에스케이가 2000년대 후반 1위를 달릴 때는 그룹 차원에서 적이 많아지는 것을 좋게 안 봤다. 하지만 삼성은 적을 만들면서 1등을 해가는 게 기업 문화이고 이를 용납한다”고 했다. 팀 전력상으로 삼성을 뛰어넘을 만한 구단은 현재로서는 보이지 않는다. 김정준 <에스비에스스포츠> 해설위원은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다. 야구팀들 중 프런트, 코칭스태프, 선수 구성 및 훈련 환경 등 온전한 구슬 서말이 있는 곳은 삼성밖에 없다. 현재 가장 시스템이 안정된 구단이 삼성이고, 삼성은 기본대로 가고 있다. 그 기본을 따라잡을 팀들은 아직까지 없다”고 했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외부선수 영입 우승에만 목매
2000년대 중반 2년 연속 우승 뒤
‘넘버원’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2·3군 선수 육성 등 기본 충실
류중일 ‘엄마 리더십’으로 만개
“삼성 따라잡을 팀, 아직은 없다” 삼성 야구의 기류가 바뀌기 시작한 것은 2000년 신필렬 사장 취임 이후부터다. 삼성의료원 부원장 출신의 신 사장은 ‘귀는 열려 있되 입은 닫는’ 식으로 현장과 거리를 두었다. 설익은 말 한마디가 현장의 자존심을 짓밟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우승 청부사’ 김응용 전 해태 감독을 영입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적어도 당시에는 김응용 감독보다 야구에 대해 더 잘 아는 야구인은 없었다. 신 사장 취임 이후 프런트와 현장의 잡음은 상당 부분 상쇄됐고 2002년 한국시리즈 첫 우승에 이어 2005년 선동열 감독 취임 뒤 연거푸 우승(2005년, 2006년)하면서 ‘넘버원’을 향한 지나친 강박관념도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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