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 몇몇 타이거즈 팬들(그들은 절대 기아 팬이라고 하지 않는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올해도 기아 어렵겠죠?”, “기아 야구, 이제 끊어야 할까요?” 그들의 말은 선동열 기아 감독에 대한 원망으로 끝났다. 달리 적절한 대답을 찾기 어려웠다. “그래도 선 감독은 타이거즈의 ‘전설’인데 지켜봐야 하지 않을까요?”
선동열이 누구던가. ‘해태 왕조’를 이끌었던 빛고을 광주의 ‘태양’이었다. 한국 프로야구사에 한 획을 그은 국보급 투수이기도 했다. 삼성 사령탑 시절(2005~2010년)만 해도 그의 지도력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취임 전 영입한 자유계약선수(심정수·박진만)의 영향력이 꽤 크기는 했으나, 2005년·2006년 연속으로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고 2010년에도 준우승을 했다. 권오준, 권혁 등을 꾸준하게 조련시키며 강력한 불펜진을 구축한 것도 그였다. 삼성의 전설 양준혁을 은퇴시키고 나이 많은 박진만(현 SK)을 자유계약으로 풀어줘 자연스레 삼성의 세대교체를 이끌었다. 선동열 감독이 다진 토양 위에서 ‘류중일호’는 탄탄하게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선 감독은 정작 텃밭이라고 할 수 있는 광주에서 길을 잃고 말았다. 이방인 처지였던 삼성 시절의 긴장감을 잃은 탓일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었으나 2012년 5위, 2013년 8위, 2014년 8위의 아쉬운 성적표를 남겼다. 자유계약선수로 김주찬(2013년), 이대형(2014년)을 수혈했지만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팀 ‘체질개선’에도 실패했다. 허약한 2군 탓에 주전 선수가 한두 명 부상당하면 팀 전체가 휘청거렸다. 기아의 고질병인 취약한 불펜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다. 기아의 올 시즌 불펜 평균자책은 5.71(8위)이었다. 2012시즌에는 4.82(8위), 2013시즌에는 5.32(9위)였다. 선 감독은 또다른 광주의 전설 이종범(현 한화 코치)을 반강제적으로 은퇴시키면서 팬들과 반목하기도 했다.
선동열 감독이 3년 동안 기아에서 올린 성적은 167승213패9무(승률 0.439)로 역대 타이거즈 감독들 가운데 최악에 가깝다. 하지만 재계약에는 성공했다. 모그룹 최고위층의 결단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애초부터 ‘3년+2년’의 계약이 아니었냐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삼성 시절 선 감독은 승률 0.551(417승340패13무)의 성적을 냈다. 2년의 기회를 더 갖게 된 선 감독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선수 때와는 다른 절실함과 절박함이 아닐까.
선동열 감독을 바라보며 가장 안타까운 점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해태 출신 지도자들의 몰락이다. 앞서 김성한(KIA), 이순철(LG), 한대화(한화) 감독 등이 이미 쓴잔을 마셨다. 선수 시절 성적이 너무 화려해서 기대치가 높았던 탓일까, 아니면 지도자 수업이 모자랐던 것일까.
분명 ‘해태 왕조’는 있었다. 하지만, ‘왕조 이후’가 없다. 김응용 전 해태 감독의 불행일 수도 있겠다. 그는 선수는 키웠지만 지도자는 키우지 못했다. 삼성 프랜차이즈 출신 류중일 감독이 4년 연속 통합 우승에 도전하고, 김성근 전 고양 원더스 감독의 애제자 조범현 케이티(kt) 감독은 2009년 기아를 맡아 우승시켰다. 그는 10구단을 이끌고 내년 1군 무대에 모습을 드러낸다. 해태 출신 사령탑은 상처받은 선 감독 외에는 아무도 없다. 해태의 비극이고, 한국 야구의 비극이다.
김양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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