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최우수선수 엄상백이 12일 서울 행당동 덕수고교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대만·일본전 146㎞ 속구 앞세워
2경기 14이닝 1실점 승리 이끌어
KT서 1차 지명…내년 프로 활약
“두렵지만 부딪히면서 배우겠다”
2경기 14이닝 1실점 승리 이끌어
KT서 1차 지명…내년 프로 활약
“두렵지만 부딪히면서 배우겠다”
“롤모델이요? 임창용 선배님이죠.”
지난 12일 서울 행당동 덕수고에서 만난 엄상백(18·덕수고3)은 잠시의 망설임도 없었다. 한국 청소년야구를 아시아 정상으로 이끈 그는 어떤 선수처럼 성장하고 싶냐는 질문에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의 마무리 투수 임창용을 꼽았다. 그는 “파워 피칭과 공격적으로 승부하는 모습이 정말 멋있다”고 이유를 밝혔다. 임창용처럼 엄상백도 유인구보다 스트라이크로 승부하길 즐기는 투수다. 그는 지난 1~6일 태국 빠툼타니에서 열린 아시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서 대만전과 일본전 승리투수가 되며 대회 최우수선수와 최우수투수 2관왕을 차지했다.
두 경기에서 14이닝 1실점으로 호투한 엄상백은 대회 내내 자신감이 넘쳤다. 그는 예선 1차전 대만과의 경기가 끝난 뒤 상대 선수들로부터 “정말 대단했다”는 칭찬을 들었고, 경기를 관전한 일본 선수들도 그를 볼 때마다 “나이스 피처!”라고 말하며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엄상백은 결승에서 만날 일본의 전력이 한국보다 한 수 위라며 모두가 경계할 때도 “충분히 이길 수 있다”며 큰소리쳤다. 김경환(김해고 감독) 투수코치로부터 일본전에 등판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땐 “제가 팀에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올라가겠습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얼굴 표정의 변화가 크게 없는 엄상백은 마운드에서 상대 타자를 압도한다. 길게 끌고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더그아웃의 사인과 자신의 뜻이 일치하지 않을 때 스스로의 판단대로 공을 던진 경우도 몇차례 있었다. 그런 승부들은 모두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감독님과 코치님이 모두 흐뭇해하셨어요. 지시를 따르는 게 기본이지만 마운드 위의 투수가 100% 확신하는 공이 있다면 던져도 된다고 언질을 받았었거든요.” 코치진은 그를 신뢰했다. 일본전을 앞두고 이효근(마산고 감독) 대표팀 감독에게 선발투수가 누구냐고 묻자 이렇게 말했다. “우리 팀 에이스가 누굽니까? 엄상백이죠. 그럼 누가 선발로 나갈지 아시겠죠?”
위기관리 능력도 엄상백의 강점이다. 대만전에서 주자 2명을 출루시켰던 고비를 2차례나 넘겼고 일본전에선 경기 초반 위기에서 병살타를 유도했다. “현지 환경이 열악해 컨디션이 안 좋았지만 위기가 닥치자 이상하게도 힘이 더 났어요.” 퀸 시리낏 스포츠센터의 숙소는 모기와 개미가 들끓었고, 타이 음식 위주의 식사는 선수들의 입맛에 맞지 않았다. 경기장 외에 선수들이 훈련할 장소가 없어 제대로 된 조명도 없는 숙소 앞에서 모기 떼에게 몸을 뜯기며 야간연습을 해야 했다. 그런데도 엄상백은 본인의 최고 구속인 시속 148㎞에 육박하는 146㎞의 속구를 던졌다. 제구력을 바탕으로 한 변화구도 일본 타선을 무력화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는 “속구, 커브, 슬라이더, 스플리터를 주로 던졌는데 오른손 타자에겐 슬라이더, 왼손 타자에겐 스플리터를 결정구로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엄상백의 키는 188㎝다. 큰 키에서 내리꽂는 속구가 일품일 것 같지만 오버핸드 정통파 투수는 아니다. 사이드암과 스리쿼터의 중간 위치에서 팔을 돌려 공을 던진다. “역삼초등학교 시절부터 사이드암으로 던졌어요. 마른 몸에 힘이 없어 감독님이 이 폼으로 투구하라고 지도하신 것 같아요.” 호리호리한 체형의 엄상백은 언북중 재학 시절까지만 해도 구속이 빠르지 않아 컨트롤이 좋은 투수로만 평가받았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입학해 몸무게가 불으며 힘이 붙었다. 그는 “현재의 75㎏에서 10㎏ 이상 더 찌울 계획이다. 웨이트 트레이닝도 열심히 하고 밥도 더 많이 먹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10구단 케이티(KT) 위즈의 1차 지명을 받아 내년부터 프로 선수로 활약할 엄상백은 지난 11일 메디컬 테스트를 받은 뒤 15일부터 팀 훈련에 합류했다. 입단을 앞두고 설렘보다 두려움이 조금 더 크다는 엄상백은 “부딪히면서 배우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이재만 기자 appletr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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