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희 기자의 맛있는 야구
대학 후배가 골수 한화팬이다. 예비신부가 대전구장 포수 바로 뒤 관중석에 앉아 ‘○○○ 결혼하자’라는 오렌지색(한화 고유의 색) 티셔츠를 입고 프러포즈 이벤트를 할 정도로 한화 야구라면 사족을 못 쓴다. 지난 주말 결혼식장에서도 ‘한화’라는 말이 등장했다. 신부가 결혼서약서를 읽을 때였다. “한화의 서울 원정경기 때마다 신랑이 야구장을 찾아도 절대 구박하지 않겠습니다.” 순간 여기저기서 웃음보가 터졌다.
8위→8위→7위→8위→9위.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한화의 최종순위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하건만 한화는 2011년을 제외하고는 ‘꿈틀’조차 하지 못했다. 꼴찌의 반란이 일어난 2011 시즌 당시에는 한대화 감독이 ‘야왕’이라고까지 불렸다. 엷은 선수층으로 이뤄낸 성과에 응원의 박수가 쏟아졌다. 그래도 최종순위는 7위였다. 2012 시즌, 그리고 9구단 체제가 된 작년에 도로 꼴찌가 됐다. 프로야구 역사상 최초의 9위라는 멍에도 썼다. 올해는 다를까.
한화의 8월 반격은 분명 희망적이다. 19경기에서 12승7패(승률 0.632)를 거뒀다. 넥센 히어로즈(14승8패·승률 0.636) 다음으로 높은 승률이다. 팀 월간 평균자책(4.78)은 조금 높았지만 공격력(0.306)으로 극복해냈다. 3~4월(8승14패·승률 0.364), 5월(8승15패1무·0.348), 6월(7승13패·0.350), 7월(9승11패·0.450)과 비교하면 괄목상대할 기록이다. 이기는 법을 알아가면서 슬슬 이기는 맛에 취해가는 듯하다. 직장 후배인 또다른 한화팬은 지금이 제일 행복하다고 했다.
가끔은 수년 동안 꼴찌를 도맡아 하는 구단을 응원하는 그들의 심정이 궁금하기도 했다. 직장 후배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가장 오랜 기간 좋아하는 게 유일하게 한화 야구이기 때문”이라는 답을 내놨다. 초등학교 때 그의 삶에 스며들었고, 이젠 생활이 되어버린 게 한화 야구란다. 하긴 작년 중국에서 사업을 하는 엘지팬인 지인도 그랬다. “낯선 땅에서 유일하게 기쁨을 주는 게 엘지 야구”라고. 작금의 한화팬이나 작년의 엘지팬(혹은 올해도)이나 심정은 비슷할 것 같다. 서툴고 엉성하고 모자라도 마침내는 해피엔딩. 그런 결말을 보고 싶은 것이다.
한화의 2014년 여정이 어떻게 끝을 맺을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여느 해처럼 “그래도 희망을 본 한 해였다”로 끝난 뒤 다음 시즌 또다시 “역시나 한화 같은 야구”라는 말을 듣는다면 계속 도돌이표만 반복될 뿐이다. 더군다나 내년에는 10구단 케이티(KT)가 참가한다. 휴식기간은 없어지고 경쟁은 더욱 치열해진다. 만년 꼴찌였던 한화의 올 시즌 뒤 행보가 정말 중요하다. 과거를 답습하는 지도자가 아닌 맞춤형의 지도자가 한화에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팬들이 목 놓아 부르짖는 ‘최강 한화’가 다시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결혼식 피로연 때 “한화팬으로 올 시즌 남은 소원이 무엇이냐”고 후배에게 물었다. “4위요! 절대 불가능하지 않다니까요.” 한복을 입고 해맑게 웃는 후배에게 잔인하게 “꿈도 야무지다”는 말을 해줬다. 하지만 찬찬히 생각해보면 1%의 가능성도 가능성이다. 이젠 탈꼴찌가 아닌 4강을 꿈꿀 수 있는 상황 자체가 기적이 아닌가도 싶다. 만날 얻어터져도 비틀비틀 일어나 마지막 반전을 꿈꾸며 꿈틀대는 한화를 응원한다. 삶과 현실의 축소판인 그라운드 위 한화의 모습 뒤로 누군가의 모습이 겹쳐지기에 더욱 그렇다. 나도, 그들도 어쩌면 ‘한화’일 수 있으니까.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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