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타이 빠툼타니의 퀸 시리낏 스포츠센터에서 이효근(왼쪽) 청소년야구대표팀 감독이 던져준 공을 파키스탄 선수 무함마드 모신 자밀이 치고 있다.
아시아청소년선수권 파키스탄 22-0 꺾고 준결승 진출
파키스탄 “5분이라도” 요청해 성사
타격자세 등 가르쳐…“오케이” 연발
파키스탄 “5분이라도” 요청해 성사
타격자세 등 가르쳐…“오케이” 연발
“그라운드볼 투 핸드 캐치! 플라이볼 원 핸드 캐치! 오케이?”
이효근(46) 청소년야구대표팀 감독은 조금 당황스러웠다. 자신 앞에 두 줄로 서서 캐치볼을 하는 파키스탄 선수들의 공을 잡는 자세가 엉망이었기 때문이다. 공을 던지는 방법도 잘 몰랐다. “노 원 스텝. 투 스텝 피칭! 한 걸음이 아니고 두 걸음 나가면서 던져야 해!” 그는 알고 있는 영어 단어를 총동원해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선수들의 자세를 고쳐줬다.
3일(한국시각) 한국 대표팀은 타이 빠툼타니의 퀸 시리낏 스포츠센터 야구장에서 열린 아시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예선 3차전에서 파키스탄을 22-0으로 꺾고 B조 1위로 준결승에 진출했다. 이 감독은 경기 뒤 파키스탄 선수들에게 원포인트 강습을 했다. 파키스탄 선수들이 며칠 전 숙소에서 만난 이 감독에게 “단 5분이라도 지도해 줄 수 없느냐”고 졸랐고, 그는 흔쾌히 승낙했다.
크리켓에 익숙한 파키스탄 선수들은 공을 가슴 앞에서 받아야 한다는 기본도 잘 모르고 있었다. 방망이를 퍼올리듯 공을 쳤고, 팔을 휘두르듯 공을 던졌다. 이 감독은 그들의 잘못된 자세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파키스탄의 1루수이자 1번 타자인 아프라즈 아마드 말리크는 이 감독이 그의 팔과 방망이를 잡고 문제점을 지적하자 “오케이, 오케이”를 연발하며 자세를 고쳐나갔다. “생각보다 습득이 빠른데?” 이 감독도 그의 스윙이 금방 좋아지자 미소를 지었다.
이 감독은 직접 공을 던져주며 배팅 연습도 시켰다. 유격수이자 3번 타자인 무함마드 모신 자밀이 날카로운 타구를 연속해서 날리자 “좋은 타자가 될 재능을 지녔다”며 엄지손가락을 세우기도 했다. 파키스탄의 투수코치 무함마드 사지드 라시드는 투수들의 구속을 높이는 방법을 물었다. 한국 투수들이 시속 140㎞가 넘는 공을 던지는 반면 파키스탄 투수들의 공은 시속 100㎞를 밑돌았다. 이 감독은 선수들의 체격을 지적했다. “무조건 많이 먹고 근육량을 늘려야 해요. 이렇게 마른 몸, 특히 하체가 부실한 상태에서는 공이 빠를 수가 없습니다.”
그들에겐 제대로 된 야구장비도 부족했다. 단 한 명의 선수도 배팅장갑을 끼고 있지 않았고, 스파이크도 없어 실전에서 일반 운동화를 신고 뛰었다. 포수 미트는 경기 때마다 빌려 쓰는 형편이다. 이날 몇몇 타자들은 한국 투수들의 공이 무서워 타격 구역 밖에서 멍하니 서 있기도 했다. 라오 무함마드 아시프 자바르 파키스탄 단장은 “단 1개의 피칭머신도 없어 빠른 공을 접할 기회가 없다. 정부는 오로지 크리켓만 지원한다. 제발 후원기업이 나타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국은 아시아야구연맹 회장국이던 2006년부터 8년간 야구를 접하기 어려운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지도자를 파견했다. 파키스탄에서도 대한야구협회 기술위원이던 황동훈 전 동국대 감독이 2010년부터 4년간 대표팀 감독으로 선수들을 가르쳤다. 파키스탄 선수들은 미국, 일본 등 야구 선진국에서 지도자들을 초빙한 적이 있었지만, 빅볼과 스몰볼이 결합된 ‘한국식 야구’가 가장 잘 맞았다고 했다.
파키스탄엔 9개의 야구팀이 있다. 정부, 경찰, 군, 공기업과 지방자치단체 소속이다. 각 팀은 1년에 3개 대회에 참가해 10~15경기밖에 치르지 않고, 120여명의 선수들은 1년 연봉으로 약 3000달러를 받는다. 전체 선수들의 30%는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병행한다. 12살 때 야구를 시작한 중견수 무바시르 사이드는 “파키스탄 국민 중 0.1%만 야구를 알고 있다. 시합도 크리켓 경기장에서 하는데 관중은 500~1000명에 불과하다. 그래도 야구가 정말 좋아 프로선수가 꼭 되고 싶다”고 꿈을 밝혔다.
빠툼타니(타이)/글·사진 이재만 기자 appletre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