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을 짧게 자른 엘지 트윈스 선수들이 24일 대구시민운동장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 앞서 굳은 표정으로 더그아웃 앞에 줄지어 서 있다. 대구/연합뉴스
LG 김기태, 17경기만에 사퇴
재작년 김시진·작년엔 김진욱…
최근 ‘3년 감독’ 극히 드물어
재작년 김시진·작년엔 김진욱…
최근 ‘3년 감독’ 극히 드물어
김기태 엘지(LG) 트윈스 감독이 23일 스스로 옷을 벗었다. 엘지 구단 쪽은 일단 사표 수리를 하지 않고 끝까지 설득하겠다는 입장이다. 엘지를 11년 만에 가을야구로 이끈 사령탑이 개막 17경기 만에 자진 사퇴한 ‘사건’을 바라보는 야구계 시선도 당혹스럽기만 하다.
김기태 감독의 사퇴는 부임 2년6개월 만이다. 김 감독 이전에 박종훈 감독도 두 시즌 만에 경질됐다. 류중일 삼성 감독이나 김경문 엔씨 감독, 선동열 기아 감독을 제외하면 최근 3년 이상 한 구단을 이끌고 있는 사령탑이 없다. 경질 시기도 대중없다. 2012년 김시진 넥센 감독(현 롯데 감독)은 시즌 종료 2주 전에 전격 경질됐고, 김진욱 두산 감독은 지난해 한국시리즈가 끝나고 한달 뒤 해고 통보를 받았다. 선동열 감독은 2010년 12월 말 삼성그룹의 인사 시기와 맞물려 갑자기 옷을 벗었다. 선수단에 미칠 파장을 고려해 올스타 휴식기(7월 중순) 혹은 시즌 종료 직후에 사령탑 경질이 이뤄졌던 예전과는 달라진 모습이다. 때문에 감독들은 언제든 잘릴 수 있다는 위기의식 속에 시즌을 끌고 갈 수밖에 없다. 계약 마지막 해는 특히 그렇다. 성적이 부진했던 지난해 5월 경질설이 나돌았던 김기태 감독은 올해가 계약 마지막 해였다. “야구가 뜻대로 안 되는 상황에서 자존심 강한 김기태 감독이 먼저 지휘봉을 놨을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오는 이유다.
모그룹의 지나친 관심도 입길에 올랐다. 넥센을 제외한 모든 야구단은 연간 100억원 이상 모그룹의 지원을 받는다. 구장 광고권 등을 해당 지방자치단체가 가져가면서 국내 야구단은 사실상 자립 경영이 어렵다. 운영자금이 그룹에서 나오니 구단주나 그룹 고위층의 입김이 셀 수밖에 없다. 오래된 일이지만 구단주가 야구를 보러 왔다가 경기 도중 더그아웃의 감독에게 선수 교체 지시 쪽지를 전해줬던 일도 있다. 한 야구 전문가는 “모그룹에 야구단 실적을 보여주는 것은 오로지 성적밖에 없다. 조급한 성과주의가 야구판에 비상식을 가져오고 있다”고 꼬집었다. 총재 구단이기도 한 엘지는 구본준 구단주와 그룹 최고위층의 야구 사랑이 지극한 곳으로 유명하다. 높아진 기대치 때문인지 올해는 구단주를 비롯해 그룹 최고위층이 수차례 야구장을 찾았고 이는 고스란히 김 감독에게 부담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김기태 감독이 너무 성급한 결단을 내렸다는 견해도 일부 있다. 세월호 침몰 참사에 빗대 “가라앉는 배에서 선장이 먼저 탈출한 격”이라는 표현을 쓰는 전문가도 있다. 엘지는 23일까지 꼴찌를 전전하고 있었다. 한 야구계 원로는 “선수들이 삭발(22일)을 했을 때 김기태 감독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이겼어야만 했다. 팀을 정상 궤도 위에 올려놓고 결단을 내렸으면 모를까 팀이 방향성을 잃고 어수선한 가운데 지휘권을 놔버린 것은 무책임한 행위”라고 했다.
김기태 감독 외에도 올 시즌 뒤 임기가 만료되는 사령탑은 김응용 한화 감독, 선동열 기아 감독, 이만수 에스케이 감독이 있다. 성적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이들의 운명도 장담할 수 없다. ‘감독 살생부’는 이미 존재하고, 거기서 이름을 지울 수 있는 길은 오로지 성적뿐이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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