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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야구·MLB

하체 힘쓸 수 없는 상황에서 기어코…
강한 엉덩관절은 방망이 폭발의 근원

등록 2014-01-17 19:52수정 2014-03-09 14:42

“타이어는 때려만 봤지, 이렇게 앉아보기는 처음이에요.” 15일 서울 서초구의 몽마르뜨공원에서 사진촬영 중인 김재현 <에스비에스 스포츠> 야구해설위원이 말했다. 김 위원은 “선수 시절을 떠올리면 나는 참 행복한 선수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좀더 잘할 수 있었다는 아쉬움도 남는다”며 17년 프로생활을 돌아봤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타이어는 때려만 봤지, 이렇게 앉아보기는 처음이에요.” 15일 서울 서초구의 몽마르뜨공원에서 사진촬영 중인 김재현 <에스비에스 스포츠> 야구해설위원이 말했다. 김 위원은 “선수 시절을 떠올리면 나는 참 행복한 선수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좀더 잘할 수 있었다는 아쉬움도 남는다”며 17년 프로생활을 돌아봤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나의 몸
(17) 야구인 김재현의 관절
▶ “31년 프로야구를 통틀어 최고의 레전드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엘지 7번 김재현!” 김재현 <에스비에스(SBS) 스포츠> 야구해설위원을 만나러 간다는 말에 한 엘지 팬은 흥분했습니다. 그가 에스케이(SK) 와이번스로 팀을 옮기자 많은 팬들이 따라갔던 건 야구계에서 유명한 일이죠. 김 위원에게 물었습니다. 측면운동을 하는 야구 선수의 몸은 어떤 변화를 겪나요? 어깨, 팔꿈치, 허리, 고관절, 무릎 등 모든 관절이 아프지만 정열 또한 이 관절을 타고 흐른다네요.

작은 뗏목들을 이어 바다에 길을 만든 듯하다. 우리 몸의 뼈는 서로 그렇게 이어져 있다. 두개 이상의 뼈가 이어진 부분, 즉 구부리거나 회전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곳을 ‘관절’이라고 한다. 정밀하고 교묘하게 연결된 이음매다. 세밀한 운동이 필요한 팔과 굳건하게 몸의 체중을 지탱하는 다리는 언제나 관절의 생명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모든 스포츠가 그렇지만, 분절된 인체 모든 부분의 협조가 잘 이뤄질 때 육체의 숨어 있는 선이 태동한다. 야구 선수의 타격 동작도 그렇다. 뱅그르르 돌며 날아오는 공처럼 방망이를 든 몸이 크게 회전한다. 타석에 들어선 타자의 발끝에서 나온 어떤 에너지가 관절을 타고 올라와 온몸을 휘돌아 감은 뒤 손끝에 연결된 방망이에 전달되는 것일까. 선수의 몸과 방망이가 유연하고 질서있게 움직여야 배트의 스윙 속도를 가장 빠르게 올릴 수 있다. 관절은 몸의 에너지가 건너가는 다리(bridge)를 닮았다.

투수부터 포수까지 저마다 관절병 달고 살아

빠른 스윙, 호쾌한 장타력, 훈훈한 외모로 지금도 많은 팬을 거느린 김재현 <에스비에스(SBS) 스포츠> 야구해설위원을 15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선수 시절 아시아 최고 스윙 스피드(시속 약 170㎞)가 회자되었던 ‘캐넌히터’ 김재현. 그는 1994년 야구 명문고인 신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해 엘지(LG)에 입단했다. 유지현·서용빈 선수와 함께 신인 3인방으로 신바람 야구 열풍을 불러일으킨 주인공이다. 이후 16년간 변함없이 한국 프로야구의 인기 스타이자 대표선수로 팬들 곁에 머물렀다. 2010년 에스케이(SK) 와이번스의 한국시리즈 4연승 우승을 이끌고 은퇴한 그는 자비로 2011~2012년 엘에이(LA) 다저스 산하 마이너리그와 일본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코치 연수를 마쳤다. 지난해부터 케이블채널에서 야구 해설을 하고 있다.

30년 가까이 야구를 한 김 위원에게 야구 선수의 몸에 대해 물었다.

“쉬지 않고 반복해서 스윙을 하고 공을 던지는 훈련을 하다 보면 관절이 기계처럼 닳을 수밖에 없어요. 기계가 잘 돌아가라고 기름을 바르고 쉬어주잖아요. 관절도 그렇게 관리하고 쉬어야 하는데, 직업적으로 운동하는 선수들에게 그런 건 불가능하죠.”

야구 선수의 몸은 ‘걸어다니는 종합병동’이라고 불린다. 포지션별로 조금씩 다르지만 대부분 관절 관련 병을 달고 산다. 팔의 힘만으로 150㎞ 속도의 공을 던지는 투수의 괴력은 어깨와 팔꿈치, 허리에 무리를 주기 쉽다. 프로야구 원년 우승 멤버이자 22연승을 기록한 ‘불사조’ 오비(OB) 베어스의 전설적 투수 박철순을 괴롭힌 건 고질적인 허리디스크였다. 포수나 타자도 마찬가지다. 어깨, 팔꿈치, 손목, 허리, 엉덩관절(고관절), 무릎, 발목 등 몸에 있는 큰 관절들은 다 혹사당한다. 고정된 자세로 반복해서 공을 기다리고 받고 던지고 방망이를 휘두른다. 목은 뻣뻣하게 굳고 어깨는 빠지고 척추는 분리되거나 휘기 쉽다.

2011년 용인대학교 대학원 물리치료학 전공 문옥곤씨의 박사학위 논문 ‘축구 및 야구 선수와 일반 대학생의 척추 활동 패턴에 관한 연구’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찾을 수 있다.

“야구의 치기 동작과 던지기 동작은 한쪽 방향 움직임으로 나타나 근육의 불균형과 척추의 부상을 쉽게 야기시킬 수 있다. 특정 부위의 근육뼈대계에 장기간 부하를 주게 되면 이로 인해 운동종목의 특성에 따른 자세가 형성되며 일반인의 자세와는 다른 형태를 띠게 된다.”

과연 그럴까. 김 위원의 첫 대답이었다. “아마 모든 야구 선수들의 몸이 그럴 텐데, 한쪽 팔이 더 길어요.” 두 팔을 쭉 뻗었다. 좌타자인 김 위원 역시 왼쪽 팔이 좀 더 길었다. 어린 시절부터 왼손잡이였다. 지금도 밥 먹는 것만 빼고는 왼손으로 뭐든지 다 한다. 야구는 몸의 한쪽 근육을 많이 사용하는 비대칭 운동, 측면성 운동이기 때문에 야구 선수들은 몸의 한쪽 힘이 더 세질 수밖에 없다. 김 위원이 웃으며 말했다.

“선수들 뛰는 모습만 봐도 어느 손잡이란 걸 알아요. 주로 쓰는 쪽 어깨가 좀 더 내려가 있고 그 방향으로 기울어져서 뛰는 것 같아요. 뭐 그렇다고 서로 부딪힐 만큼 뒤뚱거리며 뛰진 않지만요.”

대부분의 사람은 오른손과 왼손, 오른발과 왼발이 견딜 수 있는 근력이 서로 다르다. 자주 쓰고 오래 쓴 근육이 발달할 수밖에 없다. 한쪽의 몸을 더 많이 쓸 수밖에 없는 야구 선수의 몸은 더욱 정도가 심하다. 깨어진 밸런스(균형)를 맞추며 끊임없이 보강훈련을 해야 부상을 입지 않는다. 김 위원이 말했다.

“야구는 미는 운동이에요. 좌타자라고 해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밀어치는 힘만 욕심내 키우면 몸이 아예 돌아가버려요. 반드시 오른쪽도 같이 힘을 올려줘야 몸의 밸런스가 맞지요. 선수 시절 하루 평균 스윙을 1000번 한다면 반대쪽으로도 50~60번은 스윙해서 몸을 풀어줘요. 그래도 차이가 워낙 심하니까 병이 오는 거죠.”

던지고 치고 달리는 야구는 팔과 다리, 허리의 유연함과 운동성이 중요하다. 사람의 관절은 동물의 것과 다르다. 선수가 빨랫줄 같은 송구를 하는 데 도움을 주는 어깨관절은 상하좌우 자유롭게 움직인다. 대신 매우 불안정적인 관절이다. 탈구되기가 가장 쉽다. 이와 비교해 개나 고양이 등 동물은 빗장뼈(쇄골)가 발달하지 않아 어깨관절이 흉곽에 접근해 있다. 어깨를 돌릴 수 없다. 사람처럼 팔과 다리를 쫙 편 ‘대’(大) 모양으로 누워 잘 수 없다.

교체되면서도 환한 미소, 그 뒤 7개월 재활치료

안타를 친 타자가 베이스로 달려나갈 때 필요한 관절은 엉덩관절이다. 골반과 다리를 연결하는 뼈다. 네발로 걷는 동물은 달릴 때 허리를 굽혀 엉덩관절의 위치를 움직인다. 뒷다리로 강하게 지면을 쳐서 보폭을 크게 한다. 직립보행을 하는 인간의 엉덩관절은 동물의 것과 달리 애초에 쭉 펴져 있다. 육상 100m 경기장에서 모든 선수가 골반과 무릎을 구부린 준비자세를 취하는 것은 동물의 달리는 방식을 흉내낸 것이다.

김재현과 그를 사랑하는 팬에게는 잊을 수 없는 한 장면이 있다. 그날은 2002년 11월11일 한국시리즈 6차전이었다. 당시 엘지는 삼성과 우승을 다퉜다. 2승3패로 뒤진 엘지는 배수의 진을 쳤다. 6회초 5-5 동점까지 따라붙은 엘지는 주자 2명이 진루해 좋은 흐름을 타고 있었다. 대타로 김재현의 이름이 불렸다. 문제는 그의 몸이었다. 그는 대퇴골두 무혈성 괴사증을 앓고 있었다.

“2002년 초여름 에스케이랑 시합을 하는데 슬라이딩을 할 때 오른쪽 골반이 아픈 거예요. 그러다 말겠지 했는데 계속 아프길래 이상하다 해서 병원에 가보니 선생님이 그러더군요. 야구를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때죠.”

무혈성 괴사증은 뼈 안으로 들어가는 혈관이 막혀 피가 통하지 않아 뼈가 썩는 병이다. 매년 2500명 정도가 이 병을 앓는데, 90% 이상이 엉덩관절에 발생한다. 엉덩관절이 연결돼 있는 골반뼈는 뇌를 제외하고는 유일하게 둥글게 생긴 뼈다. 상체 체중을 받아내고 몸통을 좌우로 움직이게 한다. 우리 몸을 하나의 기계로 보는 근대의학의 관점에 빗대어 보면, 엉덩관절은 베어링처럼 회전과 직선운동을 하는 축을 지지하는 구실을 하면서 정교하게 움직인다. 우리 몸에서 가장 큰 관절이기도 하다.

2001년 7월 엘지 트윈스 선수 시절 김재현 해설위원의 타격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2001년 7월 엘지 트윈스 선수 시절 김재현 해설위원의 타격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대퇴골두 무혈성 괴사증을
앓으며 2002년 한국시리즈의
중요한 순간 대타로 나갔다
하체에 힘쓸 수 없는 상황에서
그는 기어코 적시타를 때렸다

골반뼈는 상체 체중 받아내고
몸통을 좌우로 움직이게 해
골반뼈와 연결된 엉덩관절은
베어링처럼 정교히 움직이며
회전과 직선운동 하는 축 지지

유명철 강동경희대학교병원 석좌교수의 설명이다. 유 교수는 그해 겨울 김 위원의 양쪽 엉덩관절 수술을 집도한 고관절 수술 전문가이다.

“그쪽에 골괴사가 많은 이유는 뼛속으로 가는 혈관이 특수하게 생겨서 그래요. 다른 관절로 가는 혈관은 샛길이 많은데 엉덩관절은 공같이 생겨서 외길이거든요. 그게 막히면 골괴사가 오는 거예요. 원인은 다양해요. 스테로이드 성분 또는 술, 잠수병 등이 꼽히는데 김재현 선수는 해당되는 게 하나도 없었어요. 원인을 알 수 없는 희귀병이었죠.”

그런 아픔에도 캐넌히터의 방망이는 무섭게 돌아갔다. 좌중간 펜스까지 굴러가는 2루타로 엘지의 역전. 2루타성 타구를 치고도 절뚝거리며 힘겹게 1루까지만 걸어갔다. 교체되어 그라운드를 빠져나오던 김 위원의 환한 미소는 팬들의 마음에 깊이 박혀 있다.

내색하지 않는 성격의 김 위원이 담담하게 그때를 회상했다. 그는 말을 아꼈다. 남자답고 멋진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어했다. 그가 어렵게 말을 이었다. 짧고 굵은 대답이었다.

“아팠죠. 왜 안 아팠겠어요. 하체의 힘 없이는 스윙을 할 수가 없어요. 상체만으로 스윙하면 무조건 삼진이에요. 감독님이 나를 믿어줬으니까, 그리고 치는 건 자신 있었으니까요. 한번 치기 위해서 통증을 견뎠어요.”

미국 뉴욕에 있는 특수병원에 가서 상담받기도 했지만, 인공관절로 교체하라는 말은 야구를 그만두라는 말과도 같았다. 그럴 수 없었다. 새로운 수술 방법으로 떠오르던 ‘표면치환술’을 선택했다. 괴사한 부분을 잘라 인공관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괴사한 부위만 긁어내고 캡을 씌우기로 했다. 야구에 대한 의지로 7개월 동안 재활치료에 전념했다. 주변 근육에 힘이 붙고 부드럽게 움직일 수 있도록 물속에서 재활훈련을 시작했다.

“이 병은 한번 발생하면 양쪽에서 다 발생할 수 있다고 해서 둘 다 수술을 받았죠. 수술 후에도 통증이 너무 심하니까 한번 받으면 6개월 내에 또 받는 사람이 없대요. 그런데 저는 세상에 보여줘야 하니까. 그러지 않으면 선수로서의 생명이 끊길 수밖에 없으니까 바로 수술 받겠다고 했죠.”

강한 정신력의 승리였다. 보란듯이 수술 후에도 3할대의 타율을 유지했다. 2004년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 나와 인천 에스케이 와이번스로 이적했다. 많은 엘지 팬들이 그를 따라 좋아하는 팀을 바꿨다. 2007년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MVP), 2010년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김재현은 자신의 노력으로 아픔을 지워냈다. 17년의 프로야구 선수생활 동안 4번의 우승과 4번의 준우승 등 행복한 기억이 많다. 그의 이름만으로도 마음이 설레는 팬들이 많다.

해설위원 된 요즘도 골프로 편측운동

야구는 타이밍 경기다. 공을 맞히는 찰나를 놓치지 않기 위해 선수들의 관절은 언제나 부드럽게 잘 돌아가야 한다. 그래서 야구 하기 좋은 자질은 감각적 센스와 타고난 유연성이다. 김 위원은 키 177㎝, 몸무게 80㎏ 정도의 크지 않은 체구에도 순간적으로 공에 전달하는 힘이 다른 선수들보다 강했다는 평을 들었다. 타고난 야구 감각에도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경기 후에도 연습장에 남아 날아오는 공을 상상하며 스윙을 했다.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며 경기를 복기해야 다음 경기에서 실수가 적었다.

몸에 대한 인터뷰는 어느새 한국 야구 해설로 이어졌다. 일본과 미국 선진야구를 보고 돌아온 이야기를 묻자 그는 한국 야구의 미래에 대해 고민을 털어놓았다. 10개 구단으로 늘었는데 여전히 선수층이 얇아 프로에 선수가 부족하다는 분석을 했다. 해설위원이 된 요즘도 김 위원은 여전히 편측운동을 한다. 골프다. 좌타자답게 왼손으로 친다. 빨간 옷, 빨간 안경, 빨간 신발, 엘지와 에스케이에서 입은 유니폼에 들어 있는 빨간색을 그는 여전히 좋아한다. “정열적”이기 때문이다.

“야구 선수 김재현에게 관절은 어떤 의미였나요?”

“앞으로 더는 나의 약한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아요. 힘을 모아뒀다가 발산하는 곳이랄까요. 선수들에게는 폭발적인 힘을 내는 곳이죠.”

관절의 협업으로 완벽한 타격폼이 완성된다. 2013년 체육과학연구에서 펴낸 ‘프로야구 선수 타격 동작의 운동학적 비교’ 논문은 “스윙은 하체를 이용한 허리회전으로 각 관절들에 운동량이 전이가 되어야 하며 각 분절들의 협응이 중요하다”고 전한다. 야구 선수의 역동적이고 유연한 몸놀림은, 강물처럼 흐르는 관절이 그들의 몸 안에서 꿈틀대기 때문이다. 물길 위에 촘촘하게 이어진 조각배가 관절이다. 관절은 흐르는 것이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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