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환 서울대 야구부 감독
이광환 서울대 야구부 감독
만년꼴찌 야구팀서 자율야구 전파
여자연맹 부회장·KBO 육성위원장 등
프로판 떠난 뒤에도 저변확대 노력
“한길 걸었던 곳서 황혼기 보내 행복”
만년꼴찌 야구팀서 자율야구 전파
여자연맹 부회장·KBO 육성위원장 등
프로판 떠난 뒤에도 저변확대 노력
“한길 걸었던 곳서 황혼기 보내 행복”
추운 날씨에 외투에 장갑을 낀 여학생 서포터가 던져주는 야구공을 왼손으로 받아, 공중에 띄운 뒤 강하게 배트를 휘두른다. 3루수에 있던 야구 선수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공을 잡아 1루에 던진다.
“야! 너 오늘 컨디션 좋아 보인다. 무슨 좋은 일 있냐? 하하하.” 홈 베이스에서 공을 쳐주던 이광환(65·사진) 서울대 야구부 감독의 큰 목소리가 웃음소리와 함께 운동장에 퍼진다. 칭찬받은 야구 선수는 얼굴이 붉어진 채 대답을 못한다. 그런데 운동장에서 이 감독의 공을 받으며 훈련하는 선수는 고작 4명. 오늘따라 개인 사정으로 훈련에 참가한 서울대 야구부원이 적다. 그러나 이 감독은 개의치 않는다. 오후 4시부터 가장 먼저 운동장에 나와 물을 뿌리며 학생들을 기다리던 이 감독이기에 그나마 함께 운동하는 4명이 기특하기만 하다.
한때 한국 프로야구 엘지(LG)를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게 만들고, ‘자율야구’ ‘신바람 야구’ 바람을 일으켰던 명장 이 감독은 프로야구판을 떠난 뒤 더 바쁜 야구 인생을 살고 있다. 서울대 야구부 감독 이외에도 한국야구위원회(KBO) 육성위원장, 베이스볼아카데미 원장, 한국여자야구연맹 수석부회장, 한국티볼협회 고문 등 한국 야구의 저변을 넓히는 데 주력하고 있다.
특히 이기면 기사가 되는 서울대 야구부를 맡아 열정을 쏟고 있다. 이 감독은 서울대 야구부가 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한다. 취미로 하는 야구팀이 어릴 때부터 야구만 한 선수들을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목표는 5회 콜드패가 아닌 6회 콜드패.
‘신바람 야구’, 이광환 서울대 야구부 감독 [#199 스포츠IN]
“대부분이 공부에서는 1등을 했던 영재고, 과학고 출신 학생들이라 야구 실력이 없으면서도 지면 굉장히 억울해합니다. 열정은 대단해요. 공부도 저렇게 했기에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선수들은 매주 초 자신이 훈련할 수 있는 일정표를 내 훈련에 참가한다. 공부가 우선이다. 서울대 야구부에 한해 학교에서 지원되는 예산은 겨우 한 학기에 75만원씩 모두 150만원. 공, 배트, 글러브, 유니폼 등은 이리저리 도움을 받아야 한다. “한해에 한두번 공식대회에서 9회까지 경기를 하기도 합니다. 성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야구를 통해 협동심과 인내심을 배우게 합니다. 그게 제가 야구부를 맡은 이유입니다.”
이 감독은 한국 여자 야구에도 애착이 많다. 현재 사회인 여자 야구팀은 42개 팀. 한해에 모두 4개 대회가 있다. 여자야구연맹 부회장인 이 감독은 가능한 한 매 경기에 꼭 참석해 선수들을 격려한다. 때로는 기술 지도도 한다. “농구, 배구, 심지어 권투도 여자들이 진출했는데 유독 야구만은 뒤처져 있습니다. 워낙 남자 프로야구에 집중했기 때문입니다. 머지않아 한국 여자 야구도 일본,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국, 일본의 여자 야구는 역사가 100년이지만 한국 여자 야구는 8년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학교 야구부에 배급되는 옥수수빵을 먹고 싶어 야구를 시작한 이 감독은 자신이 1980년대 중반 일본과 미국에서 연수하며 배운 선진 야구를 ‘자율 야구’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접목시켰다. 그리고 이제 54년째 되는 야구 인생에서 유소년, 여성, 지도자, 대학생 등을 키우는 데 정성을 쏟고 있다.
“은퇴요? 은퇴는 죽을 때 하는 겁니다. 자신이 한길을 걸었던 곳에서 봉사하면서 인생의 황혼기를 보내 행복합니다.” 해가 지면서 운동장은 어두워졌지만 이 감독과 서울대 야구부원들의 열정은 운동장을 환하게 밝힌다. 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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