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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충 리틀야구장을 살려주세요

등록 2012-03-07 20:15수정 2012-03-07 22:09

김양희 기자의 맛있는 야구
이승엽은 “야구를 시작하고 처음 전국대회 4강을 치른 곳”이라고 했다. 김태균은 “난생처음으로 제대로 된 야구시설에서 경기하면서 꿈을 펼쳤던 곳”이라고 했다. 안경현 프로야구 해설위원한테는 “정말 서보고 싶었는데 팀이 약해서 한번도 설 수 없었던 아쉬움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서울 중구 장충동 동국대 옆의 장충리틀야구장. 한국 야구의 전설들이 어린 시절 이상향으로 삼았던 이곳이 조만간 사라진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추진했던 ‘남산 르네상스’ 사업으로 3~4년 안에 강동구 고덕동으로 이사를 가게 돼 있다. 하지만 장소를 옮기는 순간 장충리틀야구장의 역사성은 사라져버린다. 어린 선수들이 뛰는 소담한 야구장이 왜 도심 공원의 쉼터로 여겨지지 않고 무너뜨리고 부숴야 하는 대상이 됐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그래야 남산의 생태계가 복원되는가.

서울시 관계자는 “에스에이치(SH)공사가 대체 야구장이 들어설 곳에 보금자리주택을 짓는데 야구장 두 면도 함께 만들기로 했다”며 “보금자리주택 완공에 앞서 야구장은 더 빨리 지어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장충리틀야구장을 폐쇄해도 새로운 야구장이 두개 더 생기는데 그것보다 더 좋은 게 무엇이냐는 말이다. 그러나 그 순간 이승엽과 김태균을 비롯한 수많은 선수들의 추억도 증발될 수밖에 없다. 이곳을 이용했던 많은 소프트볼 선수들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장충리틀야구장은 매우 상징적인 시설이다. 이웃한 테니스장과 함께 서울 도심의 한가운데 있는 녹색의 섬이다. 지하철 동국대역에서 그리 멀지 않다. 주차장이 좁지만 아담한 구장에서 학부모들이 겪는 경기 참관 경험도 짜릿하다. 1971년 개장 이래 박찬호, 양준혁, 이승엽 등 기라성 같은 스타들을 배출하며 한국 야구의 젖줄 역할을 해온 것을 생각하면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가치가 있다.

누군가는 2008 베이징올림픽 야구 금메달, 2009 세계야구클래식(WBC) 준우승의 성과가 장충리틀야구장에서 비롯됐다고 말했다. 과장된 표현이지만 야구인들의 정서를 그대로 보여주는 표현이다. 더욱이 장충리틀야구장은 2007년 10억원을 들여 인조잔디를 깔고 국제 규격에 맞는 어린이 야구장으로 탈바꿈했다. 그런 야구장을 철거하는 것은 낭비다.

르네상스 바람 때문에 동대문야구장은 이미 2007년에 사라졌다. 장충리틀야구장마저 없앤다면 한국 야구의 과거를 추억할 곳은 사라진다. 한 야구인은 “그렇게 반대했는데도 결국 동대문야구장이 사라졌다. 장충리틀야구장도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라고 자조했다. 하지만 희망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 서울시 관계자는 “장충리틀야구장이 철거되려면 3~4년 남았다. 그사이에 정책이 바뀔 수도 있다”며 여운을 남겼다. 야구인들의 지혜를 모을 때다.

김양희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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