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이한 ‘라이언 킹’ 이승엽은 올 시즌 방망이 무게를 10~20g 낮추는 대신 정밀한 타격으로 후배들과의 홈런왕 경쟁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경북 경산의 라이온스 볼파크는 웅크린 사자의 야망을 담금질하는 대장간이다. 경산/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2012년은 나의 해 ① 9년만의 삼성 복귀 ‘라이언킹’ 이승엽
일본 생활은 60점 못할 땐 화장실 찾아 자책 집에서 TV볼땐 미칠 것만
도전받는 입장서 도전자로 류현진·윤석민 대결 설레 찬호형에도 지지 않을 것
용띠생 포부는 홈런보다 100타점 목표로 승천하는 용, 사자후 보라
한국 야구가 기억하는 이승엽(36)의 마지막 모습은 ‘눈물’이었다. 2003년 말 100억원 가까운 파격적인 몸값을 뿌리치고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다”며 떠날 때, 그는 눈물을 훔쳤다. 시간은 총알처럼 지나 8시즌이 지났고, 지난 12월5일 연봉 8억원(옵션 3억원 등 총액 11억원)에 삼성으로 복귀했다. 까다로운 일본 생활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달리기, 배팅, 웨이트 트레이닝 맹훈련에도 표정이 밝다. 2012년 한국 야구 최고의 흥행카드인 이승엽을 경북 경산 삼성 라이온스 볼파크에서 만나 새해 포부를 들어봤다.
-복귀 소감이 궁금하다.
“설레기도 하고 조심스럽기도 하다. 류현진(한화), 윤석민(KIA), 김광현(SK) 등 좋은 투수들과 빨리 상대해보고 싶다. 대표팀에선 동지였지만 이젠 적으로 만나기 때문에 물러설 수 없다. 내가 지면 패배자가 되기 때문에 더 열심히 할 것이다. 지는 것은 내 자신이 용납할 수 없다.”
-8년간 일본 선수 생활에 점수를 매긴다면? “60점이다. (너무 박하다고 다시 묻자) 프로는 성적이다. 8시즌 중에 3시즌만 성적이 좋았고, 2군 생활이 길었다. 한국에서는 나보다 잘하는 야구선수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일본에서는 뭔가 보여줘야 할 저녁 시간에 집에서 티브이만 보고 있을 때가 있었다. 정말 미칠 것만 같았다.” 이승엽은 중요한 순간에 삼진을 당하거나 빈타로 물러났을 때 혼자 라커룸 화장실에 가 분노를 터뜨렸다. “바보야”, “등신아”라고 자책하며 자신을 꾸짖었다. 어떤 날은 혼자서 방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눈물을 삼키기도 했다. “서러워서”, “화가 나” 미칠 것 같았다. 한국에서 뛰던 9년 동안 한 번도 2군에 간 적 없다가 2군을 수차례 오갔으니 그럴 만도 했다. 일본 생활 동안 입맛까지 달라져서 매운 음식만 찾았다고 한다. 고향에 오니 용케도 8년 전 ‘싱거운 입맛’으로 돌아가고 있다.
-일본에서 ‘용병’으로 사는 것은 어땠나?
“맨 처음에는 내가 웬 고생이냐 싶었다. 언어 문제도 있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체념도 했다. 그러다가 조금씩 적응이 됐다. 그렇다고 일본 야구에 완전히 젖어들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류중일 감독이 지난 시즌 중에 ‘이승엽이 필요하다’고 말해 결정적으로 마음을 정했다. 아이들에게 야구 잘하는 아빠의 모습을 꼭 보여주고 싶었다.”
지난 8년 동안 모든 게 바뀌었다. 8개 구단 사령탑과 홈런왕을 다툴 경쟁자, 마주해야 할 각 팀 에이스가 달라졌다. 신인 시절 같은 방을 썼던 이만수 선배는 에스케이 감독이 됐고, 함께 우승의 기쁨을 나눴던 양준혁 선배는 은퇴했다. 야구보다는 축구를 좋아하는 첫째 아들 은혁이는 9살이 됐고, 둘째 아들 은엽이는 지난해 태어났다. 변하지 않은 것은 딱 하나. 그가 여전히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홈런왕, ‘라이언 킹’이라는 사실이다.
-팬들이 홈런 기대를 많이 하고 있는데.
“예전에는 도전받는 입장이었지만 이젠 도전자의 입장이다. 따라가는 입장이니 부담이 덜하다. (최)형우든 (김)태균이든 선의의 경쟁을 하고 싶다. 사실 홈런도 중요하지만 팀을 생각하면 100타점 이상을 꼭 기록하고 싶다. 우승팀인데 내가 와서 우승 못 하면 안 된다.”
-한화 박찬호와의 대결도 벌써부터 관심이다.
“찬호 형과는 국가대표 청백전 등에서 3경기 정도 대결했다. 그때 안타를 하나도 못 때려냈는데 요즘 엄살을 피우고 있다. 시즌 시작되면 제대로 한번 붙어보겠다. 지지 않을 것이다.”
-유격수 김상수 등 ‘이승엽 키즈’와 한 팀에서 뛰게 됐는데.
“(김)상수가 고등학교 선수 때 같은 헬스클럽에서 운동한 인연이 있다. 이젠 같은 팀이니까 더 잘해줄 것이다. 선수단이 많이 바뀌어서 솔직히 4분의 1 정도밖에 모른다. 선수들보다 코치분들이 더 친근하다. 팀 분위기 해치지 않고 역할을 충실히 하면 후배들도 따라줄 것이다.”
이승엽은 일본 진출 전 324개의 홈런을 쳤다. 한국 최다 홈런 기록 351개(양준혁) 경신도 시야에 들어왔다.
그 이전에 한·일 통산 500홈런 돌파를 노린다. 현재 483개로, 앞으로 17개만 더 때리면 된다. 나이를 생각해 방망이 무게는 920g에서 900~910g 정도로 줄일 계획이다. 파워보다는 콘택트 능력으로 홈런을 노린다. 2003년 그의 방망이 무게는 960g이었다.
-1976년 용띠생인데, 2012년 각오를 밝혀달라.
“일본에서 뛰면서 내 약점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12월13일부터 개인훈련을 하고 있는데 정신 바짝 차리고 하고 있다. 시즌 초반에는 분명히 적응 문제로 어려울 것이다. 기대가 크니 실망이 클 수도 있다. 하지만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그동안은 땅 밑에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용띠해가 밝았으니 용이 승천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 멋지게 포효하는 사자후도 함께. 하하하.”
경산/글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8년간 일본 선수 생활에 점수를 매긴다면? “60점이다. (너무 박하다고 다시 묻자) 프로는 성적이다. 8시즌 중에 3시즌만 성적이 좋았고, 2군 생활이 길었다. 한국에서는 나보다 잘하는 야구선수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일본에서는 뭔가 보여줘야 할 저녁 시간에 집에서 티브이만 보고 있을 때가 있었다. 정말 미칠 것만 같았다.” 이승엽은 중요한 순간에 삼진을 당하거나 빈타로 물러났을 때 혼자 라커룸 화장실에 가 분노를 터뜨렸다. “바보야”, “등신아”라고 자책하며 자신을 꾸짖었다. 어떤 날은 혼자서 방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눈물을 삼키기도 했다. “서러워서”, “화가 나” 미칠 것 같았다. 한국에서 뛰던 9년 동안 한 번도 2군에 간 적 없다가 2군을 수차례 오갔으니 그럴 만도 했다. 일본 생활 동안 입맛까지 달라져서 매운 음식만 찾았다고 한다. 고향에 오니 용케도 8년 전 ‘싱거운 입맛’으로 돌아가고 있다.
고향에 돌아온 이승엽은 새해 각오를 말하면서 밝게 웃었다. 경산/이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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